재밌는 건 서울 지역에는 교동이 안 남아있다는 사실이에요. 이유는 간단해요. 서울에는 향교가 없었기 때문이죠. 향교는 ‘지방’ 공교육 기관이라 서울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향교라는 이름 자체도 시골 향자에 학교 교자예요.
대신 서울에서는 다른 이름의 학교가 있었어요. ‘4부 학당’이에요. 서울 동서남북에 하나씩 공교육 기관을 세운 거였죠. 향교가 지방국립대라면 학당은 서울 공립대학교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할 거예요. 성균관은 학당의 상위 기관으로 조선 최고의 엘리트들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기관이었죠.
조선 중기로 넘어가면서 향교의 교육에 만족하지 못한 학자들이 생겨났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각자의 교육기관을 세웠죠. 바로 서원이었어요. ‘명문 사립대’가 지방 곳곳에 세워진 셈.
호젓한 시골 마을에 살면서도 후학을 양성하려는 대학자들이 자신만의 교육 방침으로 각자의 학교를 세운 거였어요. 우리에게 유명한 퇴계 이황도 그 중 한 사람이고요. 이황 선생은 이렇게 말했어요. “성균관이나 향교는 번잡한 도시에 있어서 앞으로는 번거로운 학칙에 얽매이고 뒤로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기 쉬우니, 어찌 서원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서원은 빼어난 자연환경을 갖춘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오늘날 역사적으로도 건축적으로도 가치가 깊어요. 유네스코가 ‘한국의 서원’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삼은 이유기도 해요. 짬뽕으로 버무린 역사지식, 맛있게 드셨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