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 있는 순간

한 사람의 존재 방식

님, 혼자만의 시간을 곧잘 보내시나요? 문득 홀로 서 있는 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 적 있습니다. 사전상의 의미로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혼자의 시간이 완성된다고 합니다만, 그건 겉면의 이야기 같아요. 안쪽에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상태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안온함이 스며들 수도, 또는 고독함이 몰씬 풍겨올 수도 있으니까요. 오로지 나를 위해 주어진 시간이라면 다른 존재를 갈구하기보다 시선을 안으로, 안으로 향하는 것이 바로 서는 법 아닐까 싶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곱씹어 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어라운드의 지난 기사에서 골라보았어요.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를 꿈꾸는 작가 김민정, 혼자 또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주는 에너지가 하나임을 말하는 작가 황혜원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두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님은 어떤 마음으로 홀로 서보고 싶을까요? 이번 레터를 통해 자신을 위한 고민 하나를 남겨두며, 후끈한 열기와 세찬 빗줄기로 기억될 7월의 매듭을 짓습니다.

그녀와 집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내용은 대체로 집구하기 참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점점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는 요즘, 자신의 집을 갖고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가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집 자체가 아니라 그 집 안에 사는 사람이었다. 홀로 있어도 그 공간을 꽉 채우는 사람. 김민정 작가는 여백이 많은 집에서 자신의 자유를 촘촘히 매듭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간은 곧 나를 위한 것이고 저만의 자유를 얻는 통로예요. 소비 습관도 예전에는 무엇이든 무작정 아꼈어요. 택시 한 번 안 타고, 치킨 먹고 싶으면 반 마리만 포장해서 먹고요. 너무 아득바득 살다 보니까 어느새 비관적인 생각으로 저 자신을 갉아먹고 있더라고요. 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내 시간, 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주저 않고 지출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어요. 정말 아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거죠. 정말 중요한 건 제 시간, 저 자신이에요.

 

건강한 생각이에요.

이렇게 변한 게 다행이죠. 과거에는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기에 앞서 자잘한 물욕이 정말 강했어요. 빈티지를 좋아해서 쇼핑몰을 열어 팔기까지 했으니까요(웃음). 옷과 신발, 가방을 5천 개 정도 팔았던 것 같네요. 한동안은 주방 용품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적도 있고요. 예전엔 작은 물건에 욕심이 있었다면 이젠 더 큰 집이나 좋은 차를 원하는 것으로 소비 욕구가 변한 것 같아요. 순간의 행복보다는 전체적인 삶을 바꿀 수 있는, 자유를 위한 욕구로 옮겨 간 거예요.

 

그렇게 달라진 계기는 뭘까요?

내 집을 만난 일이죠. 집은 큰 재산임과 동시에 노후 걱정을 덜어주었고 심리적인 안정감도 주었어요. 예전에는 지금 당장 먹고사는 일을 걱정했다면 이젠 저의 존재 방식에 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비혼으로서저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도 집중할 수 있고요. 책을 내는 기회도 생겼죠.

 

비혼 가치관은 중학교 때부터 생각했다고 들었어요. 그 배경은 어땠나요?

처음엔 친구들과 가볍게 장래를 이야기하면서 생각했어요. 구체적인 관점은 없는, 막연한 상상이었죠. 그때는 비혼이라는 단어도 낯설던 때였으니까요. 가사 노동과 경제 활동을 동시에 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권위적인 분은 아니었는데 당시엔 그런 생활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고, 아무도 이상하다고 알려주지 않았어요. 저는 불합리를 느끼며 홀로 생각을 정리하게 된 것 같아요. 혼자 살아가고 싶다고요.

 

혼자라서 좋지만 고독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책에서 ‘무언의 날’을 이야기하는 단락도 있었죠.

자취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외로움을 잘 느끼지는 않는데요. 버거운 일이 있을 때 매일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땐 고독해지기도 해요. 그럴수록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를 찾아가는 게 중요해요.

 

그런 연대가 작가님이 책에서 언급한 ‘느슨한 가족’일까요?

느슨한 가족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친구 같아요. 혈연 이외에 저를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해주는 존재들이죠. 함께 사는 고양이, 친한 친구, 동료, 유튜브에서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계속 소통하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으려 해요.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분들도 그 안에서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저도 비혼으로서 가족처럼 여기는 관계를 잘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립된 ‘점’으로서 비혼 생활이 아닌, ‘선’을 긋고 이어갈 수 있는 혼자의 삶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요르가즘》에서 먼저 만난 황혜원 작가는 거침없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고요함의 상징과도 같은 요가를 어떤 식으로 수련하는지 궁금증을 안은 채 그녀와 마주앉았는데, 대화를 이어가면서 내 좁은 시선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요가에 어울리는 형용사는 고요함보다는 솔직함이다. 그녀는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솔직하기 위해 매일 수련하고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해가 그녀의 곧은 등을 비출 때, 내 몸과 마음에 요가가 필요했던 순간들이 어렴풋이 스쳐갔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가요?

혼자 있을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나 에너지를 얻는 비중은 비슷하고, 똑같이 중요해요. 혼자 있는 시간은 수련하고 작업하고 영화 보고 글 쓰면서 에너지와 영감을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은 그걸 공유하고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죠. 두 가지가 연관되어 있어요. 스스로 충족하지 못하고 외부 요인으로 채우려고 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집에서 혼자 수련하는 걸 ‘셀프 수련’이라고 한다고요. 요즘은 어떤 셀프 수련을 어떻게 하고 계세요?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해요.

 

눈 감고 가만히 앉아 있는 그 명상이요?

네. 앉아서 숨쉬는 거요. 수업 때도 늘 하는 얘긴데, 떠오르는 생각을 구름이라고 생각하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들어가려고도 하지 말고 가만히 두면 돼요. 그럼 생각이 이어지지가 않아요. 막상 제가 하려고 하면 또 어렵긴 하지만요(웃음). 명상할 때는 가만히 있어야 하니까 몸이 되게 근질근질해요. 스스로 고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올라갈 때까지 10분 정도 명상을 하고, 자연스럽게 몸이 풀리도록 오전에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나면 오후에는 수련을 하고 싶어질 수밖에 없어요.

 

‘수련’이라고 하면 왠지 어려운 동작을 갈고닦는 모습이 떠올라요.

요가에서는 도전하면서 수련하는 걸 아주 중요하게 여겨요. 수업이 아니라 수련을 하는 강사의 세계가 있거든요. 그들은 새로운 아사나(Asana, 요가 동작)를 시도하고, 한 아사나를 더 깊게 들어가고, 고난도 아사나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뻐하고 좌절해요. 물론 창조적인 시도는 좋은 것 같아요.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뇌에 시냅스가 많이 생긴대요. 안 쓰던 근육도 쓸 수 있고요. 그런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승마도 하고 싶고 스쿠버다이빙도 하고 싶고, 되게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인간의 관절과 인대의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위험하게 도전해야 하는지, 그게 정말 고행의 수련인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못 내리겠어요. 7-8년 정도 더 수련해 봐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맹목적으로 따라 하고 싶지도 않고 부정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시점이에요.

 

무조건 따르지 않는 용기를 내는 것도 마음에 중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지금 여기, 타인은 없다. 오롯이 나뿐이다. 내가 해내건 못하건 상관없다. 나만이 알 수 있다.”는 구절이 떠올라요.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간 본성이 그런 것 같아요. 바로 옆에 타인이 있고, 누군가 자꾸 나를 평가하는 상황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죠. 다만, 그때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느냐가 중요해요. 스스로 주변 환경을 차단하고 호흡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난 숨 쉴 거야, 숨 쉴 거야.’ 하고요. 아쉬탕가를 할 때도 ‘이따 저녁에 뭐 먹지?’부터 시작해서 잡념이 계속 들어오는데, 호흡에 집중하면 정신이 다시 돌아와요. 이건 초보자와 숙련자 모두에게 해당돼요. 한 동작을 취하면서 잡념이 들어오면 못하는 사람만 호흡이 흐트러지는 게 아니라 잘하는 사람도 호흡이 흐트러져요. 자기가 잘한다고 느끼는 순간에 자만하면서 에고가 올라오면 그 감각에 취해서 잘못된 자세를 취하거나 통증이 오는 걸 잘 못 느끼거든요. 그 감각을 중간으로 맞추는 게 참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매 순간 스스로 집중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수련이라고 하나 봐요.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마음이라도 시달리는 날에는 훌쩍 무인도로 떠나는 상상을 합니다. 또는 어두컴컴한 동굴이나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는 산속이라도 좋을 듯한 기분이 되죠. 안팎의 이유로 지금 당장 중심을 잡기 어려울 때, 자신이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평화의 영역’이 필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본 날도 잠시나마 머물 무인도를 찾기 위해 헤매던 날이었어요. 어두컴컴한 상영관으로 들어가 휴대폰은 비행기 모드로 슬쩍 바꿔둔 채, 한 중년 남성의 반복되는 일상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상에 새겨지는 작은 균열까지도요.

Movie | 빔 벤더스 퍼펙트 데이즈(2023)


그 남자 그러니까 히라야마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됩니다.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지난밤 읽다 만 책의 페이지를 기억해 두죠. 양치질과 세수, 면도를 마치면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채 선반 위에 일렬로 놓인 소지품들을 차례로 주머니에 넣습니다. 밖으로 나가 커피를 뽑고 차에 올라타기까지, 홀로 선보이는 모든 행동이 관성처럼 느껴져 안정감을 풍깁니다. 그의 직업은 도쿄 공공화장실 청소부로, 주어진 일을 성실하고 또 노련하게 해내는 사람입니다. 점심시간에는 필름 카메라로 볕뉘를 찍고, 퇴근 후에는 단골 식당에서 술 한잔을 마신 후 귀가하는 그의 하루는, 고독하기에 오히려 특별해 보이죠. 물론 히라야마의 일상에도 ‘깜짝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엄마와 싸워 집을 나온 조카, 사랑과 꿈과 현실 안에서 헤매는 젊은 동료, 때로는 이름 모르는 이와의 작은 인연까지. 평온한 홀로의 일상에 불쑥 등장한 이들은 소란한 발걸음을 납깁니다만, 히라야마는 그들과 함께 웃기도 또 울기도 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보낸 하루가 (영화의 제목처럼) 완벽한 날일까요? 혼자든 함께든, 주어진 하루에 성실하게 행동하고 충실하게 감정을 표현했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하루 아닐까요? 평화의 영역을 만끽하다가도, 그 영역으로 걸음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히라야마에게서 배웁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하나의 주제로 어라운드가 지난 기사를 톺아보는 ‘Editor's Curation’이 홈페이지와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공개됩니다.

이번주는 ‘여름을 누리는 네 가지 방법’이라는 이름표 아래, 네 개의 기사를 골랐어요. 여러분에게 여름은 어떤 계절인가요? 덥고 습한 날씨가 얄궂기도 하지만, 낭만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설렘이 차오르죠. 사계의 한 조각을 더 즐겁게 누리기 위해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제철 채소, 선풍기 앞에 앉아 마시는 음료나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까지 어라운드가 포착한 찬란한 이 계절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특별히 네이버 포스트에서는 네 개의 기사를 전부 미리 볼 수 있으니. 아래 버튼을 눌러 큐레이션의 책장을 넘겨보세요.

쏟아지는 빗줄기에 무탈한 나날들을 보내고 계신가요? 무심하게 내리는 장맛비에 괜스레 마음이 닿은 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곤 합니다. 참, 레터를 닫기 전에 한 가지 소식을 전해요. 어라운드가 보낸 레터에 대해 이런저런 코멘트를 보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버튼을 클릭해 후기를 작성해 주세요. 감사한 마음 몇 개를 골라 오프라인 작업실 ‘발견담’ 하루 이용권을 드릴게요. 그럼, 다음 뉴스레터에는 어라운드 식구들의 취향을 안고 찾아올 테니 다다음주 목요일에 만나요!


Monday Point Day

AROUND Vol.55 Eat 배지 | 07.22 ― 07.28


월요일마다 어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굿즈를 공개하는 ‘Monday Point Day! 금주의 상품을 소개합니다. 동그란 마들렌이 접시에 나란히 놓인 이 조각은 55호 발행을 기념하며 제작한 배지입니다. 좋아하는 가방, 파우치에 꽂아 오늘의 귀여움을 더해보세요. 우리의 배지는 아담한 모습으로 언제 어디서나 반짝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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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 AUTUMN ─ 넉넉하고 풍요로운 시간


어라운드와 롯데백화점 문화센터가 계절마다 함께 발행하는 《LOTTE LIFESTYLE LAB》은 동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며 다채로운 취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거진입니다.

다음 계절에 먼저 도착한 이번 호는 가을의 풍요로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겨우내 길러낸 것들을 돌아보고, 어떤 결실을 수확하고 싶은지 생각해 봅니다.

《LOTTE LIFESTYLE LAB》은 전국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및 《AVENUEL》 8월호와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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