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트 전 총리의 유연함과 실용성은 그의 부모의 영향이 컸습니다. 베네트는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하이파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베네트의 부모는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입니다. 그의 어머니의 가족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희생됐죠. 하지만 베네트 집안은 정통 유대인 집안은 아니었고, 그의 부모는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이파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명문 공과대학교인 테크니온 이스라엘 공과대학교 내 자금조달 부서에서 근무하다 부동산거래 중개에 눈을 뜨게 됐고, 이후 부동산투자업으로 전향했습니다. 베네트의 어린 시절은 이사의 연속이었습니다. 베네트의 가족은 베네트가 한살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이민을 갔지만, 같은해 10월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하자 그의 아버지는 참전하기 위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고, 전쟁이 끝난 이후 가족 모두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자리에 따라 베네트 나이 4살 때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다가, 2년 만에 이스라엘 하이파로 돌아오고, 또 다시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 뉴저지로 이주했다가 또다시 2년 만에 하이파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다양한 삶의 환경을 경험한 게 베네트 전 총리의 의식과 사고구조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베네트 전 총리는 성인이 되자 여느 이스라엘 남성들처럼 군 복무를 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인 사이렛매트칼(Sayeret Matkal)에서 병사로 복무하며 여러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사이렛매트칼은 인질 구출작전 등 최고난도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입니다. 의무복무를 마친 뒤 그는 장교로 전향해 사이렛매트칼에 복무하게 됩니다. 이후 또다른 특수부대엔 마글랜(Maglan)에서도 지휘관으로 복무합니다. 6년 여간의 군복무를 마친 뒤 베네트 전 총리는 히브리대 법대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비즈니스 맨으로 변신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소프트웨어 회사 사이오타를 설립했고, 이를 1억4500만달러에 매각해 베네트 전 총리는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업체인 솔루토의 최고경영자를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부를 축적해 나갑니다. 이후 베네트 전 총리는 투자자로도 큰 성공을 거듭니다. 미국 의 핀테크기업인 페이오니어(Payoneer)에 투자했는데, 포브스지는 그가 관련 투자로만 500만달러를 번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강성 시오니즘 정치인과 베네트 전 총리가 차별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찾는 베네트 전 총리가 세계지식포럼 참가자들에게 어떤 중동 평화 방안을 제시할 지 관심이 갑니다. 이스라엘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는 “베네트 전 총리는 올 연말 네타냐후 총리가 물러나면 새 총리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며 “총리 또는 국방부 장관 등으로 내각에 참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