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252번째 책편지(2026. 7. 23.(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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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를 넘어 상속주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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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누나와 대장장이 매형 밑에서 자란 핍에게 어느 날 행운이 찾아옵니다. 익명의 후원자가 ‘신사’가 되는 조건으로 막대한 상속을 약속한 것입니다.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산업혁명 이후에도 견고한 사회적 신분이었던 귀족에 대한 풍자는 물론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고전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위대한 유산은 단순히 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고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돈보다 소중한 사랑, 신분보다 귀중한 인격, 성공이 아니라 겸손과 감사의 마음이 아니라면 인생의 의미를 찾기 어렵겠죠. 이렇게 자명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는 각박한 현실에서 수많은 문제와 마주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식에게 더 많은 걸 남겨 주기 위해 애쓰곤 합니다.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은 본능에 가깝지만, 부모가 스펙이 되는 사회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상속과 증여 문제는 한 가족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합의해야 할 주제입니다.

  진정 위대한 유산은 무엇인지, 인생에서 어떤 행복을 원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개인은 물론 대한민국의 지향점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나아가는 방향이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상속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시간을 들여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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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계급 사회

일라이자 필비 지음, 방진이 번역 | 돌베게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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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이후 사람들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라는 믿음을 갖고 살았습니다. ‘능력주의’ 이면에는 가족의 부와 다양한 지원은 물론 상속에 의한 자산 이전이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상속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라이자 필비는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상속이 곧 계급이 되는지 찬찬히 톺아봅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속내를 드러내기 어렵고 가족과 터놓고 말하기 어려운 주제가 바로 상속입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똑같이 경쟁한 결과가 아니라면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누군가를 위한 변명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성세대가 여전히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맹목적 희생과 물불 안 가리는 눈먼 사랑이 아니라 다음 세대, 우리 모두의 아들딸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위한 고민의 중심에 ‘상속’이 놓여 있습니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상속을 직시하면 교육, 취업, 주택, 노후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으며 특별한 비법으로 풀기 어렵고 정치인들에게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가족이 모여 한 사회와 국가를 이룹니다. 능력주의를 넘어 상속주의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현실적 고민이 되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라이자 필비는 교육과정에서 이미 능력주의는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헬리콥터 맘부터 MZ세대의 탄생, 맞벌이와 페미니즘 문제까지 영국 사회에서 경험한 저자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구별 짓기』에서 강조했던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은 결국 경제 자본에 의해 형성됩니다. 한 사람의 직업, 경제력, 사회문화적 취향 등은 피눈물 나는 개인의 노력보다 상속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의미입니다.

  가진 게 없어 한숨짓는 부모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식은 어느 쪽을 부러워하거나 비난할 수도 없는 삶의 조건일 뿐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격차가 상속되어 곧바로 사회적 신분으로 굳어지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 찬스가 계급이 되는 과정을 살피지 않아도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으며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입니다.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한 어른들의 고민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21세기의 상속주의 사회는 20세기 능력주의 사회에서 생성된 기회들을 토대로 구축되었다. 특히 교육과 주택이 그런 기회들의 창구였다.”라는 저자의 지적이 매우 아프게 들리는 게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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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불행 사회

홍선기 지음 | 모티브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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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일본은 이제 ‘잃어버린 30년’의 교훈을 남긴 국가가 되었습니다.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일본은 저출산, 고독사, 청년 고립, 지방 소멸, 초고령화 사회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홍선기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살펴봅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경고는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냉정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지적입니다.

  소설처럼 생생하게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나’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행복을 가꾸지는 못해도 불행을 최소화하자고 제안합니다. 1985년부터 2025년까지 일본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선명하고 자극적입니다. 물론 이 사례들이 대한민국의 모습과 조금씩 다르면서도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특히 진학과 취업 문제로 은둔, 고립된 청년들, 심각한 저출생 쇼크, 노인 돌봄 문제, 학교 붕괴, 치매 간병 등은 결코 남의 일이라고 외면할 수 없는 지금 우리가 겪는 사회 현상들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불행을 최소화하기 위해 저자는 9가지 해법과 11가지 생존 매뉴얼을 제시합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법도 있으나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어려운 건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만드는 일입니다. 일상에서 매일매일 부딪히는 일들은 공무원과 정치인이 모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조금씩 관심을 두고 함께 풀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어도 불행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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