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ㅣ 사치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잰입니다. 2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
저희는 이번에 '사치'라는 주제를 들고 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시기에 사람들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게 매력인 주제인 것 같아요. 재화의 사치 측면에서 어떤 이들은 무조건 아끼라고,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투자할 것을 제안하니까요. 
저와 승의 글은 그 중간에서 헤매면서 그 균형을 고민할 때 드는 생각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그럼 오늘도 당신에게 닿길 바라며, 2편을 부칩니다. ✉️ 🌊
내 일의 역사
 사치란 무엇인가. 다음의 문장부터 살펴보자. 


그는 사치를 하는 사람이야. 


이 문장을 보고 처음에 드는 생각이 무엇인가. 자신을 잘 대접하는 사람인 것 같은가 아니면 돈과 물건을 헤프게 사는 사람 같은가? 사실 나는 후자가 떠오르면서 부끄럽게도 명품을 사고 고이고이 모셔 놓는 부잣집 여성까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사치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학습되어 있다. 


그런 어감은 사전적 정의 자체에서도 묻어나 있다.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필요 이상, 그리고 지나친. 


쿠폰 없이 사 먹은 5,700원 스타벅스 자허블, 1시간 반을 쏟은 내 감자 짜글이, 50만원이 든 짝꿍과의 짧은 1박 2일 여행까지. 여유롭고 감사하게 즐기고 싶은 것들이 앞에 각양각색의 수치를 달며 나를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으로 만들었다. 죄책감을 가지게 했다.  


죄책감이라는 녀석은 물 같아서 스펀지 같은 말랑말랑한 내 뇌에 닿으면 순식간에 흡수되고 말았다. 죄책감의 영단어인 shame을 발음할 때조차도 나는 뱀 같이 부드러우면서 기분 나쁜 교활함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다가와 ‘나는 이런 것을 받아도, 누려도 마땅한가?’ 라고 기어오르는 그 생각은 나의 즐거움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말았다. 


나는 바로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분수’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져 사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즐거움을 모조리 망쳐버리는 그 죄책감을 갖게 하는 나의 분수의 대하여. 


네 분수를 알아야지. 


나에게 내가 말한다.

나의 분수, 나의 정도, 나의 수준. 

실제의 나와 이상적으로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돈이나 물건, 그리고 일상의 거리가 얼마나 나를 자주 작게 만들었는가.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나의 분수에 맞지 않는, 내 정도와 수준에 맞지 않는 사치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필요 이상’과 ‘지나친’ 앞에는 생략되어지고 지워진 퍼센트(%)에 대하여. 

괜찮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30% 필요 이상으로, 어떤 날은 70% 지나치게 나의 일상생활을 지탱하게 하는 사치들이. 


그것은 나에게 언제 갈지도 모를 여행에 앞서 여권을 갱신하는 일이었고, 과제를 작업이라고 칭하고 공유 오피스를 작업실이라는 말로 치환하여 계약하는 일이었고, 내 입과 손톱 사이의 휴전을 위해 거금을 내고 네일샵에 가서 3cm짜리 플라스틱을 이어서 붙히고 예쁘라고 반짝이도 발라주는 일이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삶에게 실망할까봐 사서 걱정한다. 엄마는 공모전을 하며 괴로워하는 나에게 응원이 아닌 '꼭 그렇게 해야 돼?’ 라고 되묻고, 아빠는 대기업 1차 면접을 앞두고 초조하게 밤을 새는 나에게 전화해 늦었으니 집에 들어오라고 한다. 


그래서 나에게 사치란,

너무 애써서 얻어야 하고, 애써도 얻어질지도 모르는, 엄마 아빠는 떠나 보낸 어릴적 꿈들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게 하고, 인생의 궤도가 조금 헛돌아서 아이쿠, 하고 예상치 못한 선물이 놓여있을 그럴 몹쓸 상상을 하게 하고, 못 가겠다는 여행을 가게 하고, 괴로워도 다시 한 번 브렌인 스토밍 스케치북 앞에 마음을 다 잡게 하고, 어느 날 문득 손톱을 봤을 때 피가 없는 손톱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런 희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 from. 잰
현명한 사치

근래 나의 사치는 기분을 목적으로 한 소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잠깐 참으면 나아질 수 있지만, 나의 작은 기분을 지키기 위해 자주, 적은 금액의 사치를 부린다. 손에 들어야 할 짐이 많은 날 버스에 끼여 타는 것이 싫어 택시를 타고, 저녁을 차려 먹기 귀찮아 혼자서 다 먹지 못할 양의 배달 음식을 시킨다. 가야 할 길이 먼데 에어팟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싸구려 줄 이어폰이라도 꼭 하나 구매하고, 핸드폰 배터리가 없는 것을 도저히 못 견뎌서 보조배터리를 또 산다. 집에 이미 다른 보조배터리가 세 개나 있으면서 말이다. 싫증, 귀찮음, 참을성 없음. 별의별 감정을 무마하고자 돈을 쓰는 쉬운 방법을 취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사치는 모여 결국 큰 사치가 된다. 돈의 측면에서도, 감정의 측면에서도 그때그때를 무마하고자 부렸던 사치는 큰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나는 그것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똑 떨어진 스킨 제품을 사야 할 때 엊그제 탔던 택시가 떠오른다. ‘아 그때 택시 타지 말걸...’, ‘아 이어폰은 왜 또 사서. 이어폰 두 개면 지금 이거 하나 사는데’. 즐겁지 않은 기분이 불편하고,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딱 2년 전쯤에는 어떤 공연을 보고 느꼈던 사치에 대해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당시 회사 일은 정말 바빴고, 나는 일, 사람 관계,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에 깊이 빠져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 좋아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 시간을 꼭 빼놨는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에게 사치스럽게 느껴져 그 감정에 대한 글을 적었던 것이다.


사치의 겉모습은 한갓지게 공연을 보러 갔다는 것에 대한 머쓱함이었지만, 속 모습은 일에, 사람 관계에, 그리고 미래를 놓고 더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 시간에 이거를 더해야하는데, 못 마친 일을 조금 더 보고 나올걸 그랬나, 아무래도 그 사람이랑 얘기를 좀 더 해봐야하나 라는 어떤 후회였다.


사치를 따라오는 부끄러움은 곧 자격지심이 된다. 오늘 하루 정말 열심히 살았지만, 왠지 스토리에 공연을 봤다는 내용의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면 ‘한가하네’라는 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뭐 할 거냐는 질문에 ‘그냥 쉬려고요.’라고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침대에 누워 게으른 나의 모습을 질책한다. 실상은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라고 할지라도 문득 드는 자격지심은 나를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든다.


현명한 사치를 생각해 본다. 기분이나 돈을 뭉뚱그리지 않는 적당하게 기분 좋은 사치.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더 담대히 마주할 힘을 얻는 사치. ‘그래 오늘 하루 수고했으니까' 하며 오늘의 나를 존중하는 사치. 내가 마주한 감정을 곱씹고, 충분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부려보는 사치. 쓸데없는 것에 쓸모가 생기는 그런 사치. 부끄러움이 남지 않는 사치.

🌻 from. 승
김제형 정규 1집 앨범 <사치>
3번 트랙 남겨진 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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