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자, 거기 누구 없소?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


뉴스레터 #49호를 발행합니다.

6월인데 벌써 무더위가 왔습니다. 올여름 더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맞을 여름에 비하면 올여름이 가장 덜 더울 것이라는 얘기가 회자된 적도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기온이 아니라 주식 오르는 얘기가 한창이어서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지만 여전히 세계의 정세는 어둡고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 재난을 비롯한 다중의 위기에 대한 깊고 근본적인 고민을 놓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마치 카산드라의 운명처럼 모두가 듣기 싫어할 때 보다 정확히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 한국에서 그런 사람이라면 역시 리영희 선생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선생의 그런 모습들을 떠올리며 뉴스레터를 보냅니다.

 

지난 5월에 조선의 내고향 축구단이 수원에 와서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 대회 준결승과 결승 경기를 치렀습니다. 재단에서도 준결승에서 내고향 축구단과 수원 FC의 경기, 결승에서 도쿄 베르디 벨레자와의 경기에 공동응원단으로 참여했습니다. 정욱식 재단 상임이사는 이번 내고향 축구단 방한 경기에서 공동응원단 단장을 맡았습니다. 정욱식 이사가 지난 호주에서의 공동 응원에 이어 이번 방한 경기에서의 공동 응원 참가기를 썼습니다. 경기와 응원 현장의 소감뿐만 아니라 이번 내고향 축구단의 방한을 둘러싼 우리 내부의 엇갈린 시선들에 대해, 그리고 향후 우리는 변화하는 남북 관계 속에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문제들을 던져 봅니다.

 

그리고 백지운 선생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은 “리영희의 중국론을 다시 읽는다: 사유의 축으로서 제3세계”라는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때때로 리영희 선생의 중국 인식은 중국 사회주의의 경험을 미화했으며, 사실 추구라는 본인의 입장을 벗어난 것 아니었냐는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백지운 선생님은 그런 평가에 대해서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것을 요청합니다. 백지운 선생님의 글에 따르면 그러한 오류는 당시 전 세계 좌파 지식인들의 보편적 현상이었으며, 한국의 극단적 반공주의 속에서 인간해방을 갈망했던 시대적 맥락 속에서 비판적으로 재해석되고 사상사적으로 위치 지어져야 합니다. 또한 리영희 선생은 체제 간 '평화공존'과 '세계혁명' 사이에서 중국 외교가 겪는 이율배반적 모순을 또렷이 파악하는 예리함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당시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냉전이라는 이분법 속에 갇혀서 세계를 보고 있을 적에 리영희 선생은 제3세계를 축으로 해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시야를 보여줬으며, 이는 현재 중국의 세계전략(일대일로와 글로벌 사우스론)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참고의 틀이라고 합니다. 백지운 선생님은 이 글뿐만 아니라 연구의 과정에서 본인이 직접 찾아서 타이핑한 자료(리영희 선생이 조선일보 국제부 재직 시절 1965년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대해 쓴 연속 특집 기사)도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재단 아카이브에 갈무리하고 소개합니다.

재단 소식

‘조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자, 거기 누구 없소?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뙤약볕이 내리쬔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결승에선 내고향이 일본의 도쿄 베르디 벨레자를 1대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내고향 선수들은 기쁨에 겨워 인공기를 들고 손을 흔들면서 경기장을 돌았다. 선수들이 공동응원단 앞에 이르자 2천 명에 육박한 공동응원단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내고향’에서 왔다고 여겼는지 조선이 고향인 이산가족과 북향민의 환호가 더 컸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선 선수들이 ‘적대국’이라고 배운 한국에 와서 일본팀을 꺾고 우승하고, 한국 시민들은 인공기를 펼쳐 들고 자축하는 조선 선수들을 열렬히 축하해주는 장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저 선수들은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들을 수 없는 질문을 떠올리던 사이에 옆에 있던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가 소감을 물었다. “정치가 아직 하지 못한 일을 스포츠가 먼저 보여줬고, 응원단이 동포애로 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답했다.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

리영희의 중국론을 다시 읽는다: 사유의 축으로서 제3세계

 
백지운(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리영희 선생의 중국론은 지구적 데탕트의 기운을 좀처럼 감지하지 못하는 철방 속에 폐쇄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고뇌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로 옥고를 치렀던 그가 「상고이유서」에 적었던 바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과학적 인식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의 안전 및 번영을 보장하는 중요한 길”이라는 인식은 21세기의 오늘의 현실에서도 더없이 적확하다. 오늘날, 선생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 연구가 번성했지만, 한국 사회가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과학적 인식 능력’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시대 진영과 이념으로 세계를 가르는 관성적 이분법이 한국 사회의 멘탈리티를 지배하는 우상이었다면, 현재 중국과 우리 자신, 그리고 세계를 인식하는 눈을 가리는 우상은 무엇일까. 혐중적 정서가 기층을 넘어 지성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되는 상황은, 어쩌면 중국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 능력’의 결여로 인해 정확한 비판의 언어를 찾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에 대한 비판이 비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되돌아오고 또 세계에 대한 수준 높은 인식으로 연결되는 그런 중국학과 중국 담론이 필요한 지금, 리영희 선생의 중국론이 특히 무겁게 다가온다.
재단 아카이브

'아아(亞阿)의 물결' 1~5편(1965. 6. 조선일보)

아세아와 「아프리카」의 72개 독립 및 독립예정국가가 한 자리에 모이는 제2차 아아회의가 10년 만에 「알제리」 공화국 수도 「알제이」 시에서 이달 29일부터 개최된다. 정부는 여태까지 친공적이라고 배격해오던 대(對) 아아회의관을 바꿔 적극적으로 이에 참석할 의사를 밝혔으나 초청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렇게 중요한 아아회의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성격의 회의인가, 앞으로의 국제정세변동에 적응하여 한국과 아아회의와의관계는 어떠해야할 것인가. 그리고 아아회의에 참석할 경우 한국은 어떤 입장에 서게 될 것인가. 대한민국의 국가적 지위와 대외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제2차 아아회의를 5회로 나누어 여러모로 다루어본다. 

발행인: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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