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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매거진 휘슬 3호 주제를 빌드업으로 정한 그 날이 생각나네요. 휘슬이 지향하는 목적을 고려하면 주제의 키워드는 늘 스포츠와 삶을 모두 표현해야 했죠. 축구경기에서 밥 먹듯 자주 쓰이는 말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빌드업’이 떠올랐어요. 지원님은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무엇이 연상되었어요?
지원🧶
저는 축구를 좋아하긴 했지만 ‘빌드업'이 축구에서 쓰는 단어인지는 전혀 몰랐어요. 이야기를 만들때는 캐릭터를 빌드업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썼기 때문에 뭔가 사건이나 인물의 개성이 쌓이는 것을 어렴풋이 연상한거 같아요. 벽돌을 원하는 구상대로 착착 쌓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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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키워드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시작할 때, 늘 그 키워드의 사전적 정의를 검색해보는 편인데요. 빌드업(Build up)을 문자 그대로 검색하면 무언가를 ‘쌓아올린다’는 의미의 다양한 용례가 나와요. 동시에 무언가를 ‘둘러싼다’는 의미도 있고요. 정확히 축구라는 종목을 위해 탄생한 키워드는 아니지만, 분명 하나의 목표를 위해 공격 과정을 쌓아올린다는 점에서 의미는 비슷하다고 봤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원 님이 뛰어본 인생의 경기에서 좋았던 빌드업이 있나요?
지원🧶
진행중인 빌드업 말고, 상황이 끝난 빌드업을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 제가 해왔던 일 거의 다 빌드업의 과정에 있는 것 같은데요. 가장 떠오르는 건, 연극을 올린 일 같네요. 대학교에서 <바냐아저씨>를 만들어보자고 극회 친구들과 결심하고 대본 연구부터 연습, 캐릭터 빌딩, 무대 구성, 리허설, 연극 공연기간 내내 마음 졸이다 마지막 날 공연 막을 내리고 뿌듯함과 허탈감 그리고 무대철거까지…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이들이 매순간 서로 약속한 행동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게 빌드업과 가장 유사한 것 같아요. 실제로 축구경기 만큼의 체력이 소모되기도 하구요. 용직님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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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계획적인 빌드업이라고 한다면, 아기를 낳은 일이죠. 결혼 전부터 부부가 팀을 이루어 계획을 했고, 아기를 낳기 전과 후의 모든 상황을 최선을 다해 예측해서 가능한 현실적인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요. 거주지를 옮기고, 육아용품에 대해 공부하고, 집 구조를 바꾸고, 재정 관리도 새로 해야 했고요. 물론, 육아를 하다보니 늘 90분 경기 중 가장 힘든 70분대에 스프린트를 하는 느낌이지만요. 빌드업의 의미에 대한 논의가 꽤 되었으니, 그러면 ‘좋은 빌드업’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번 휘슬을 함께 기획하고 인터뷰하면서 느끼신 게 있다면?
지원🧶
모든 인터뷰와 아티클들이 의미가 있었지만 ‘좋은 빌드업’이라고 한다면 현재 팀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을 인터뷰하다보니 저마다 팀의 목표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팀마다 함께 하는 즐거움, 탁월한 퍼포먼스, 승리를 위한 전략 등 추구하는 점들이 조금씩 달랐는데요, “함께 추구할 목표를 정하고, 각 구성원들의 결의가 모이는 것”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각 멤버마다 저마다의 역량으로 팀의 색깔을 더해가는 것이 좋은 빌드업으로 보이더라구요. 이건 이번 휘슬에서 취재한 모든 팀들의 공통점으로 제가 생각하는 점이에요. 용직 님은 어땠어요?
⚽용직
저는 모든 인터뷰와 아티클을 관통하는 단 하나, 빌드업의 조건이 있다면 ‘나의 욕망을 투명하게 알고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축구경기에서도 유독 ‘콜 사인’이 중요해요. 경기 중에 내가 무엇을 원하고, 동료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명확히 외치는 거죠. 저는 팀 플레이가 양보와 희생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나의 의사를 정확히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이게 가능하려면? 네, 자기 확신이 있어아먄 하겠죠. 결국 좋은 빌드업의 시작은 다 나에게 달려 있다…뭐 그런 결론이 되어버리네요(웃음).
지원🧶
물론 매거진 휘슬이 스포츠 종목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축구를 즐겨보거나 해봤던 사람이 아니라서 이번 호에 흥미로운 부분이 참 많았는데요.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팀에 살고 팀에 죽는 나의 팬심 이야기”라는 주제로 다룬 공모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신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용직
네. 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글을 유려하게 잘 쓰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태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서, ‘내가 이 팀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저없이 표현하고 말겠다’는 실천의지. 저에게는 그 마음들 자체가 배울 점이었어요. 사실 그 대상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이상, 일면식도 없었던 대상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큼 효과적이고 빠른 빌드업이 어디 있을까 싶었고요.
지원🧶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각양각색, 성별도 연령대도 다른 여섯 개의 팀 인터뷰와 더불어 ‘빌드업’이라는 주제로 뭉친 작가들의 아티클, 공모전 원고들에 대한 힌트가 모두 나왔어요. 편집하는 과정에서 몇 번씩 읽어본 내용이지만, 이렇게 대화하다보니 다시 궁금해져버리는데요? 이제 우리끼리 패스는 끝내고, 전방으로 공을 뿌려도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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