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에 '법'이 필요한 이유
헌법재판소가 어제(29일) 기후위기 대응 법안의 일부 조항에 '헌법 불합치'를 선고했습니다.
뉴스로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요.
헌법 불합치는 판단 대상이 된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만, 당장의 공백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효력을 유지하게 하는 결정입니다.
저도 어제 선고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서울 안국역 인근을 오가며 헌법재판소 건물은 많이 봤지만, 안에 들어가서 방청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헌재는 기후위기 대응 법안과 시행령 등에 대한 헌법소원(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되었을 때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 4건을 판단했습니다.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10대 19명을 시작으로, 영·유아(2012~2022년생) 62명 등 시민들은 지난해 7월까지 총 네 차례의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헌재는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저는 어제의 선고가 '법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2021년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온실가스 감축의 근거가 됩니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걸 큰 목표로 하고요.
문제는 현행법에 2031년 이후의 세부 목표가 없다는 겁니다.
현행법 조항(제8조 제1항)은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¹만큼 줄이는 것을 중장기 목표로 한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세부 목표도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세부 목표를 꼭 법으로 정해두지 않더라도, 2050년까지 정부가 정책 등을 통해 알아서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이를 법으로 정해두어야 기본권(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이 침해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지금의 체계로는 지속적인 감축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의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2031년 이후 기간에 대해서도 그 대강의 내용은 '법률'에 직접 규정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부의 한계도 짚었습니다.
정부는 기후위기 같이 장기적인 문제에 단기적인 인식으로 대응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 판단에만 의존하면 안 되고, 더 구체적으로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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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미래 세대는 기후위기 영향에 더 크게 노출될 것임에도 현재의 민주적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약되어 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이날 선고가 끝난 뒤 정문 앞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미래 세대', 헌법소원의 청구인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들의 앞에는 "판결은 끝이 아닌 기후 대응의 시작"이라는 구호가 걸렸습니다.
회견을 마무리하는 참여자들의 표정이 밝았습니다.
법원에서 웃는 사람들을 보는 게 참 드문 일이라, 낯설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이제 국회와 정부는 2026년 2월 28일까지 세부 목표를 새로 세우고 법에 명시해야 합니다.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 4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