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북극곰만의 문제일까? :기후정의

기후 위기는 북극곰만의 문제일까? : 기후 정의

Climate Justice for all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59), 2022.9.21,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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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기후 정의, 인류세, 도시, 불평등, 지속가능성

1.머리말
2.‘북극’ 말고 ‘도시’ : 기후 위기의 최전선
3.기후 정의를 외치는 과학자
4.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연구자님은 ‘기후 정의’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기후 정의에 대해 잘 아시는 분도 계실테고, ‘기후 위기는 알겠는데, 기후 정의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텐데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란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과 피해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 잡아 해결하려는 자세를 뜻합니다.(링크) 선진국의 부유층이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뿜어내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크게 입는다는 것이죠.

같은 폭염이라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으며 지내는 사람과 쪽방촌 주민들이 겪는 피해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고요.

지난 6월부터 파키스탄에는 장장 3개월간 폭우가 쏟아져 국토의 1/3이 잠기고 1500명이 넘게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이와 관련해 호주 기후위원회 사이먼 브래드쇼는 “파키스탄과 같이 지구온난화 초래의 책임이 가장 적은 국가가 기상재해로 가장 큰 비용을 지불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링크)

<fig.1> 파키스탄 신드주에서 수재민들이 지난달 31일 높은 지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왼쪽) 지난달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활동가들이 924 기후 정의 행진을 예고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습니다. EPA/9월 기후정의행동

이 때문에 기후 정의는 기후 위기에 대해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그 맥락을 충분히 살펴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죠.

오는 24일엔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슬로건을 내건 기후정의행진이 예정되어 있는데요.(링크)

오늘은 기후 위기를 ‘도시’라는 렌즈로 읽은 흥미로운 책(<극단의 도시들>)과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를 골똘히 고민한 책(<브레이킹 바운더리스>)을 지팡이 삼아 기후 정의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북극‘ 말고 ‘도시‘ : 기후 위기의 최전선】

기후 정의에 앞서 우선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한번 머릿 속에 떠올려봅니다.

연구자님은 ‘기후 위기의 장소’라고 하면 어떤 곳이 떠오르시나요?

보통 북극곰이 웅크리고 있는 북극의 조그만 얼음을 떠올리기가 쉬운데요. 기후 운동가이자 뉴욕시립대 교수인 애슐리 도슨은 ‘기후 위기의 장소’로 ‘도시’를 꼽고 있습니다. 도시야말로 기후 위기의 최전선이라는 것이죠.

<fig.2> 작은 얼음 위에 있는 북극곰의 모습(왼쪽) 해안가에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마이애미 비치의 모습. 세계 대도시들 가운데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들이 많은데, 기후 위기가 극심해질수록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링크1 링크2) polarbears international / phys.org

애슐리 도슨의 책 <극단의 도시들>은, 특이하게도 기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도시’ 문제로 살펴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도시, 기후 위기를 초래하다’인데요. 그는 도시가 기후 위기를 불러온 핵심 원인이자,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집중되어 있는 아주 위험한 곳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심지어 이 책에서 ‘인류세’1)라는 말 대신 ‘도시세Urbocene’라는 말을 쓰고 있기도 하죠.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기후 위기를 단순히 객관적, 과학적 보고서처럼 다루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그는 도시야말로 대단히 ‘극적인’ 기후 위기의 현장이라고 주장하는데요. 기후 위기의 원인을 만들어내는 주범인 동시에,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다는 점에서입니다.

도시는 21세기의 결정적인 사회적, 생태적 현상이다. 즉, 도시는 대다수 인류를 수용하고, 대기에 가장 많이 탄소를 배출하며, 기후혼란에 특별히 취약하다[...]이러한 도시화와 기후변화의 지구적 수렴은 놀랍게도 여전히 눈에 띄지 않는다[...]도시는 또한 가장 극단적인 변형의 현장이다. 이는(기후 위기를 단지 과학적 차원에서만 다루는 접근은) 기후변화를 멀고 추상적인 것으로, 즉 개인적인 경험과 정말로 관계없을 만큼 먼 미래에 일어나는 어떤 일로 보이게 만든다.

-애슐리 도슨, <극단의 도시들>(이하 동일)

그가 이처럼 ‘도시’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후 위기를 도시로 이야기할 경우 우리가 기후 위기를 ‘지금, 여기’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개가 끄덕여졌는데요. 불과 십년 전쯤만 해도 ‘기후위기는 먼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최근엔 해를 거르지 않고 거의 매년 기록적인 폭염, 폭우, 태풍 등의 이상 기후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도 더 이상 기후 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fig.3> 올해 3월 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강원 삼척까지 번져 거대한 숲을 태웠습니다. 환경단체들은 이 산불의 원인을 '기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왼쪽·링크) 올해 여름 이상 고온 현상을 겪은 영국 런던의 한 선로에 불이 붙어있습니다. 경향신문

통상 기후 위기를 다룬 과학 책들이 컵에 색깔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물감이 물 속에서 어떤 무늬를 그리며 퍼져나가는지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기후 위기, 그래. 잘 알겠어. 그런데 그게 도대체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인데?”라는 질문에 답하는 느낌이랄까요.

기후위기 이야기에서 ‘도시’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우선 실제로 오늘날 도시들이 굉장히 기후 위기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1900년에서 2013년까지 세계 인구는 15억명에서 70억명으로 4.5배 늘었는데요. 같은 기간 도시 인구는 2억여명에서 36억명으로 무려 16배나 증가했습니다. 화석연료 사용도 16배 증가했죠. 또한 뉴욕, 상하이 등 세계 20개 대도시 중 13개가 항구도시고요. 오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바다에서 120마일 이내에서 살고 있는데, 이 비율은 2025년까지 7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수많은 대도시들이 해수면 상승과 태풍, 범람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면서 어떻게 도시라는 공간에서 불평등하게 기후위기의 피해가 나타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제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기후 위기와 부동산의 문제였습니다. 정작 태풍으로 집, 생명을 잃는 등 치명타를 입은 희생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이었는데, 이로 인해 많은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상류층이었다는 분석이죠.

한 예로 뉴욕에서 태풍, 해일 희생자의 55%는 연소득 1만8000달러(약 25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입니다. 반면 보고서에 따르면2) 미국 NFIP(국립홍수보험프로그램) 보험 지급금의 약 80%를 부유한 동네(집값 상위 30%)가 차지했고, 가난한 지역(하위 20%)은 1%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이상 기후로 인해 태풍이 잦아지면서 고급 해안가 부동산에 들어가는 보험금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비싼 차, 비싼 집이 침수되었을 경우 훨씬 ‘피해액’이 높을테니까요. 반면 ‘산정조차’ 되지 않는 오두막에 사는 사람이나 노숙자의 피해는 ‘0원’이라고 셈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런 왜곡된 피해 산정 방식이 위험한 곳에 계속 비싼 건물을 짓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재난을 다룬 유명한 책 <재난 불평등>(존.C.머터)의 영어 원제는 ‘재난으로 이득보는 사람들The Disaster Profiteers’이기도 한데요. GDP 숫자가 가장 중요한 세계에서 태풍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오두막이 부서져 살 곳을 잃는 건 사소한 문제입니다. 그 자리에 고급 빌딩을 새로 지을 수 있으니 누군가에겐 재난도 ‘이득’이라는 거죠.

‘재난’이라는 단어는 별에서 떨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재앙임을 암시하지만, 실제로 소위 자연재해는 모두 매우 가시적인 사회적 불평등의 산물이라고 닐 스미스는 시사한다. 예컨대 뉴올리언스에서 가난한 사람은 홍수에 취약한 저지대에 사는 경향이 있고, 부유한 주민은 고지대에 산다.

*닐 스미스(1954~2012): <불균등발전> 등을 쓴 비판지리학자

한편 최근엔 온난화로 인한 ‘건강 불평등’ 문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올해 상황만 보더라도, 에어컨도 없이 살던 영국이 역대급 폭염에 몸살을 앓았고요. 포르투갈에선 심지어 일 최고기온이 47도에 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는 ‘불평등’의 간격을 더 크게 하는데요. 배달기사 등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상 기온의 타격을 더 크게 받기 때문입니다. 미국공중보건협회는 “기후위기가 건강과 사회적불평등을 심화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지난 13일 발표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나중엔 너무 더워져서 첨단 기술의 도움 없이는 야외 노동이 아예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링크)

<fig.4> 한여름 땡볕 아래서 일하던 건설현장 노동자가 갈증을 달래기 위해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상기온 현상이 극심해질수록 바깥에서 일해야하는 사람들의 피해는 더욱 커져갑니다(왼쪽)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인근 Pétionville 슬럼 지역의 모습을 담은 사진 <Jalousie>. 경향신문, Google Arts & Culture

한편 ‘대도시’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하늘을 찌를듯한 근사한 마천루 빌딩들을 떠올리곤 하는데요.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그런 최첨단 도시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슬럼도 포함됩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에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일자리나 살 집이 없어도 도시로 몰리는 이유에 대해, 농촌이 파괴돼서 어쩔 수 없이 떠밀려난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도시 유랑민들에게 도시는 ‘근사한 기회의 땅’이라기보다는 ‘마지막 지푸라기’입니다.(링크)
특히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개도국에는 도시에 이런 커다란 슬럼들이 많은데요. 튼튼한 집도 없고 수도 등 인프라도 없는 곳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사람들은 기후위기에 훨씬 취약합니다.

보통 개도국에선 내전, 인프라 부족, 기후위기, 기아 등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고 이중 하나만 어긋나도 더욱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를 ‘복잡한 문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조금 알쏭달쏭하지만, 요는 커다란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로 농사가 엉망이 되어 밥값이 오르면, 기아가 극심해지고 서로 밥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런 문제는 아무래도 농업 외의 산업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에서 더욱 심각하겠죠.

이 때문에 태풍은 ‘어떤 도시’에서는 스쳐가는 거센 비에 불과할 수 있지만, ‘어떤 도시’에선 수십만명이 집을 잃고 수천명이 사망하는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이런 위험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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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샌디가 가장 파괴적이었던 곳은 바로 아이티였다. 아이티 사람 54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뉴욕시 사망자수보다 많다[…]샌디는 또한 바나나, 플랜테인, 사탕수수, 콩, 빵나무열매 같은 주요 작물을 망쳐서 그 뒤 몇주동안 아이티 사람 수십만명을 영양실조와 기아의 위험에 빠트렸다[...]샌디가 상륙했을 때 거의 40만명의 아이티 사람들은 2010년의 재앙적 지진 이후 집이 없었다.”-애슐리 도슨, <극단의 도시들>

1)인류세(anthropocene·1950년대~현재): ‘홀로세*’의 안정적인 기후를 벗어나, 인류의 영향으로 기후위기가 심화된 시대를 일컫는 말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폴 크루첸이 널리 알렸습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그 기점을 핵 실험이 이루어진 1950년대 근처로 잡고 있습니다(링크)

*홀로세(Holocene·1만2000년 전~1950년대): 그리스어로 '완전히 새로운 시대(完新世)'라는 뜻입니다.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 일명 '에덴 동산' 혹은 '골디락스 시대(황금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2)The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Overwhelming Risk: Rethinking Flood Insurance in a World of Rising Seas>, 2013(링크)

【3.기후 정의를 외치는 과학자】

<극단의 도시들>에서 저자는 단지 ‘더 최첨단의 도시’를 만드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고 외칩니다.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짓는 ‘시스템’ 자체를 손보지 않는 이상 위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이는 저자만의 독특한 주장은 아닙니다.

요한 록스트룀은 <브레이킹 바운더리스>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커다란 해결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기후과학자인 요한 록스트룀은 지구의 ‘9가지 티핑포인트’를 발표해(2009, 2015) 큰 이목을 모았는데요. 티핑포인트란 ‘튀어오르는 지점(tipping point·변곡점, 임계점)’이란 뜻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던 그래프가 어떤 지점에서 갑자기 훅 튀어오르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홉 가지 중대한 위험이 있고, 각각의 기준점을 세워 하나하나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기후 변화, 생물다양성 문제, 담수 등이 있습니다.

<fig.5> 기후과학자 요한 록스트룀이 TED(영상)에 출연해 '9가지 티핑포인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9가지 문제를 원으로 표시하고 각각의 위험 수치를 표시해 한눈에 위기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한 그래프입니다. 이중 '오존층 훼손' 항목이 있는데요. 록스트룀은 오존층 관련 문제를, 과학자들이 제기해서 곧바로 정책적 대안이 나오고 '실제로' 짧은 기간에 상황이 진전된 이상적인 케이스로 들고 있습니다. TED영상 갈무리

그는 <브레이킹 바운더리스>에서 ‘지구 청지기3)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여섯 가지 해결책 중에서도 특히 한 챕터를 ‘지구 불평등 해결’에 할애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얼핏보기에 <극단의 도시들>과 이 책은 굉장히 여러면에서 달라보이는 책인데요. 그럼에도 두 책은 꼭 같은 지점을 짚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것이 지구 위험 한계선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해법이라는 점이다. 불평등은 빈곤을 근절하거나 '발전 중인 경제'가 '발전된 경제'를 따라잡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전 세계의 부가 가구 단위에서 더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등이 실현될수록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 의식은 높아지고, 공통된 목표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도 높아진다. 궁극적으로는 지구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그 목표이다.

-요한 록스트룀 외,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록스트룀은 사회적 불평등은 그대로 둔 채 기후위기만 해결할 수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왜냐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데, 불평등이 극심하면 힘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죠.

저자는 이 책에서 프랑스에서 2018년 10월 일어난 '노란조끼 운동'을 예로 드는데요.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유류세를 올렸습니다. 이에 1년만에 디젤 값이 1년 사이 23퍼센트나 올랐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고 합니다.(링크) 특히 빵을 사기 위해 4km는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시골지역 사람들의 타격이 컸다고 하네요. 당시 사회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함께 사려깊게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지구를 치유하기 위해서 세계는 지금 당장 방향키를 틀어야만 한다[...]우리의 경제는 모든 것이 무한하다는 허무한 가정 위에 건설되었다[…]지구를 희생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더는 가능하지 않은 과거의 패러다임이다. 우리와 지구의 관계를 재설정하과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번영과 안전,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경제 발전은 지구 환경의 한계, 9가지 티핑포인트에 의해 견제받고 조절되어야 한다.

다소 급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으로부터 딱 반세기 전인 1972년에 이미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Limits of Growth> 보고서에서 아래와 같이 선언했습니다.(링크)

“인구 팽창과 산업화, 식량 생산과 환경 오염, 자원 고갈이라는 현재의 성장 방식이 계속된다면 아마도 향후 100년 이내에 이 방식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외칩니다. 위기는 이미 ‘현실’이고,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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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기후 변화에 가장 큰 위협이 뭐냐고 묻는다. 내 생각에는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위협인 것 같다“-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UNFCCC 전 집행위원장)

3)청지기란 주인의 소유를 이임받아 관리하는 사람(관리인, 집사)이라는 뜻으로, 물건의 '소유'보다도 '관리/돌봄'이 강조되는 단어입니다. 청지기는 그리스어로 ‘오이코스oikos(집)'+'노모스nomos(관습,법)’의 합성어인 '오이코노모스'인데 이는 경제학(Economics)의 어원이라고 하네요.(링크) 우리가 지구를 '소유'한 게 아니라 '단지 맡아 관리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어 맥락에 잘 맞는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4.맺음말】

과학자 곽재식은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2022)에서 “북극이 다 녹기 전에 반지하 침수가 먼저 찾아온다”고 외칩니다.

‘기후 위기’는 운석이 꿍 떨어져서 대멸종이 일어나는 것 같은 장면이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문제죠.

기후 변동이 커지면 당장 농업이 타격을 받고, 우리의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고, 더 살기 팍팍해집니다. 홍수 위험이 늘어난다면 반지하 등 도시의 저소득층이 마음놓고 살 만한 ‘적정 주거’는 더욱 줄어들고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적어지며, ‘기후 난민’들은 늘어날 것입니다. 원래부터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더 불안정해지고, 더 취약해집니다.

‘기후 정의’는 이처럼 일상으로 다가오는 기후 위기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입니다.

<fig.6> 지구 기후 변화 궤적을 그려놓은 그래프. 주기적으로 빙하기가 찾아온 가운데 마지막 빙하기 이후 '수상한 긴 여름'이 찾아왔고, 그 기간(홀로세)에 약 1만년간 인류 문명이 화려하게 꽃 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프 끝 부분의 비교적 평탄한 부분이 '홀로세'를 나타냅니다. 다큐멘터리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갈무리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살기 좋은 기후가 ‘비정상’이었을런지 모른다고요.

본문에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요한 록스트룀은 <브레이킹 바운더리스>에서 21세기의 기후와 관련된 가장 중대한 발견 세가지를 꼽는데요. 그 중 하나가 ‘(인류가 문명을 꽃피워 온) 홀로세는 지구 전체 수십억년 역사 중 비정상적일만큼 대단한 기간이었다!’라는 발견입니다.(p.108) 우리는 원래부터 지구가 살기 좋은 별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지구 전체의 역사로 보았을 때는 굉장히 특이한 황금기였고 그 기막힌 틈새에서 우리 문명은 이렇게 풍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인류는 젠가를 건드렸습니다. 과학자들은 홀로세 이후 ‘인류세’를 선언했습니다. 인간의 과도한 에너지 사용, 극단적인 효율성 추구가 시대마저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예측 가능하고 살기 좋은 기후는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지구라는 커다란 배는 이제 역사에 없던 최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리가 마음을 합한다면, 배가 나아갈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인류세’라는 말이 가진 작은 희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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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페이건은 고고학자의 관점에서 역사와 인류 문명이 지리와 기후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기후변동이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장차 수 세기 뒤에 어느 고고학자가 21세기의 역사를 기후 변동으로 훌륭하게 분석해낼지.”

-브라이언 페이건,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남경태, 구판 옮긴이 해제 중)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애슐리 도슨, 박삼주 옮김, 『극단의 도시들』, 한울아카데미, 2021.

-도시와 재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읽으면서 이전 레터에서 다루었던 책 <재난불평등>(지난레터)이 연상되는 지점들이 많았는데요. <재난불평등>이 재난이 불러오는 불평등한 경제적 결과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이 책은 그 근원에 있는 기후위기의 문제 등까지 짚고 있으니 두 책을 함께 읽어보면 한층 입체적인 독서가 될 것 같습니다. .

요한 록스트룀 외, 전병옥 옮김,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사이언스북스, 2022.

[다큐] 조나단 클레이,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73min, 2021.

-오늘 레터에서 언급했듯 동명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도 있는데요.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고 이 책을 나중에 보았는데, 각각의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다큐멘터리의 경우 '9가지 티핑포인트'에 초점을 맞추어 현장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잘 담아냈고, 이로써 현재 과학이 기후위기를 다루고 있는 최전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책은 '9가지 티핑포인트' 이전의 지구 생성 역사를 아울러 다루며, 이후 대안을 짚는 부분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복잡한 이슈를 명쾌하고 간결하게 다루는 책입니다.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다큐멘터리에는 9가지 티핑포인트 중 각각의 분야를 평생 연구해온 기후과학자들의 인터뷰, 현장들을 담고 있습니다. 평생 바다 속 산호를 연구해온 과학자가 급속한 해양산성화로 인해 산호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삼키는 모습입니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브라이언 페이건, 남경태 옮김,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개정)』, 씨마스21, 2021.

-원 제목은 'The Long Summer'입니다.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이 홀로세 이전 빙하기인 1만8000년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기후위기라는 키워드로 다룬 책입니다.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 인류 역사는 기후변화에 인류가 적응(혹은 도태)해온 역사이며, 결론은 오늘날'에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후가 모든 역사를 결정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꽤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이죠. 인류는 정착-도시생활을 하면서 기동성이 떨어져 기후 변화에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의 책임 소재는 일단 치워두고라도, 일단 위기가 눈 앞에 있기 때문에 인류가 기후위기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시각이 참신하게 느껴졌습니다.(서평)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이미 피할 수 없다

독서시간: 약 10분 / 글자수: 약 3200자

🖍글 속 한 문장

빌 맥과이어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반복하고자 한다. 이제 기후위기는 자연과학자들과 에너지 전문가들과 관련 업계 및 관료들이 알아서 할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전체를 총체적으로 바꾸어 적응해 나가야만 할 거의 정해진 운명이라고.

👤김스피의 블라블라

기후위기 권위자 빌 맥과이어의 신간 <찜통지구>를 지팡이 삼아 우리 시대의 기후위기 문제를 짚은 홍기빈 정치경제학자의 칼럼입니다. 이미 피할 수 없는 문제이며,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가 남았다고 짚고 있습니다.

이상 기후와 기아, 내전의 순환고리

독서시간: 약 8분 / 글자수: 약 2300자

🖍글 속 한 문장

이상고온으로 물은 갈수록 부족해지고, 더 적어진 물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상황이 생긴다. 중동 지역은 아주 슬픈 사례다. 이곳에선 배고픔이 갈등으로 이어지고, 갈등은 다시 배고픔을 낳는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 16일 한국을 찾은 코린 플라이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중동·북아프리카·동유럽 지역본부장과의 인터뷰입니다. 최근 아시아 및 중동지역의 기후위기의 큰 맥락을 짚고 있습니다. 기아, 기후위기, 내전 등이 어떻게 '복잡한' 문제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불평등하게 찾아오는 재난

독서시간: 약 8분 / 글자수: 약 2600자

🖍글 속 한 문장

서울 온도가 38.5도까지 오를 정도로 더웠던 2018년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63명이나 됐다. 그중 75%가 60세 이상의 고령층이었고 야외노동자와 저소득층의 비중이 높았다. 미국에서는 한해 폭염 사망자가 1500명이나 되는데 그 절반이 노숙인이라고 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빈곤층이 기후변화의 피해를 직격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짚고 있는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의 칼럼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의 책임이 큰 이들에게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부담을 더 크게 지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상상 초월 대홍수’가 남긴 교훈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2800자

🖍글 속 한 문장

‘기후위기’는 이제 집을 지을 때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인이 됐다. 알테나흐르에서 집을 다시 지을 때는 1층에는 차고 같은 ‘생활하지 않는 공간’만 배치할 수 있다. 거실, 방과 같은 생활공간은 2~3층에 배치해야 한다. 분석 결과 ‘100년에 한 번 올 홍수’에 대비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신규 건축이 불가능해졌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2021년 독일 아르강 유역에서 일어난 대형 홍수로 인해 최소 184명이 사망하고 막대한 피해를 남겼습니다. 기후 선진국 독일의 역대급 홍수, 1년 뒤의 모습은 어떤지 알아본 기사입니다. 위의 사진을 누르면 2회차 기획 중 2회 기사로 연결되고요. 1회 르포는 (이쪽)을 누르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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