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떠올리기만 해도 목구멍 안이 턱하고 막히는 사람이 있어?

그리운데도 마주하기가 무서워서 자꾸 도망가고 싶고. 전화 한 통을 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사람. 아니면 아예 닿을 수 없는 이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할머니야.

엄마 아빠의 맞벌이가 너무 바빴던 시절, 달동네의 조그마한 외할머니 집에서 할아버지랑 엄마랑 아빠랑 막내삼촌이랑 같이 살았던 적이 있어. 태어나서 6살까지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맞벌이가 바빴다는 건 진짜 이유에서 살짝 비껴 간 방패였을지도.

어쨌거나, 그 때가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무방비 상태인 시기니까, 어쩌면 그래서 지금 나를 이루는 중요한 세포들의 대부분은 모두 할머니랑 같이 살던 6년 동안 만들어졌으려나?

25년 이상을 따로 살았는데도, 사금 골라내 듯 내가 가진 여러가지 성격, 행동, 버릇 등을 체에 걸러보면, 반짝 하고 남아있는 것들 중 대부분이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만들어진 것들인 것 같거든.

그런 할머니가 거의 3년 전 쯤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셨어. 그리고 동시에 거짓말 같은 역병이 세상을 지배한거야. 바이러스야말로 '자연의 법칙'이라는 허울 좋은 탈을 쓰고서 철저히 가장 쉬운 상대들을 먼저 공격하잖아. 약하고 연한 것들. 늙고 어린 것들.

요양병원이 자연스럽게 격리 대상이 되면서, 내가 할머니를 2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직접 본 건 딱 한 번,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 전화기를 들고 보았던 딱 1분. 그게 전부인거야. 그 마저도 손 쓸 새 없이 눈물이 터져서 ‘할머니 밥 많이 먹어’ 라고 무너지듯 한 마디 한다고 정신이 없었지만.

아까 방금, 친구랑 만나러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반대편에서 다리를 많이 저시는 할머니께서 걸어오고 계셨어. 나는 할머니들을 보면 일단 시선을 다른 곳으로 거둔다. 그냥 잘 못 쳐다보겠어. 정말 개복치지. 그런데 그 할머니가 나한테 말을 거시는거야.

“수영하고 왔어?”

꼭 나를 잘 아는 분처럼 말씀하시더라.

“아니요 수영 안 했어요”

그 찰나에 나는 또 정신이 아득해져서 말이 나오는 대로 대답했어. 수영을 안 한 건 맞으니까.

“나는 수영 해야 하는데..”

순간 바라 본 할머니의 두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어.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 그저 주변이 새하얘졌을 때,

뒤에서 중년의 여성이 ‘어머님’을 부르며 할머니에게 뛰어오셨어.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 않고, 그 여성 분과 눈인사를 하고나서 나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지.

딱 한번 뒤돌아봤던가. 한 명은 앞만 바라고 서있고 다른 한 명은 그 팔을 붙들고 있던 장면.

이어폰에는 다비치의 ‘팡파레’가 축제처럼 터지 듯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나는 또 속절없이 울었다.

할머니들은 왜 이렇게 죄다 슬플까.

여튼, 오늘 편지는 쓰면서도 자꾸 목구멍 뒤쪽이 갑갑하네. 하하,

오늘은 그깟 마음의 준비 얼마든지 하고서, 목이 맥히던 눈물이 막을 새도 없이 흘러 나오건, 내가 제일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는 그 번호를 눌러서 전화라도 해볼래.

수화기 너머 ‘고맙다’ 소리에 어김없고 하염없이 무너져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