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 내 맘대로 한여름 특집 찍히지 않았던 이유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산울림, 청춘 가지 못한 곳을, 겪지 못한 시간을 그리워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청춘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청춘이었던 밴드 '산울림'의 보컬 김창완 님도 세월이 흘러 좋은 인상의 배우 아저씨가 되었다. 그 노래가 처음 불렸을 때를 상상하다 보면 전혀 울 일이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울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정말 언젠가는 가겠지. 시간을 잡아둘 수만 있으면 모두 원하는 시간 속에 살 수 있을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바보 같다. 시간은 원치 않아도 흘러가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벌써 더 어렸던 날 그리워 하고 남기지 못한 기록들을 후회하고 있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던 똥고집이었다.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 너무 부끄럽고 오글거리고 겉치레 같아서 싫었다.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칭찬들이 가짜고 허상 같았으며, 아마도 예뻐질 '미래의 나'를 그리며 현재의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구기거나 일부러 피해 다녔다. 널 보고싶어 할 미래의 날 위해 좀 남겨두지. 내가 아기 버전의 나를 추억할 수 있는 기록은 다른 애들에 비해 너무도 적다. 그 바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기념하고 남기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뭐라도 남기고 싶어하는데, 과거의 걔는 자기가 얼마나 귀여운 어린 아이였는지도 몰랐다. 가끔 억울한 마음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찬찬히 미래에 대해 일러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간 여행은 불가능한 영역이고, 돌아가 얘기를 해준다 해도 걔는 분명 듣지 않을 것 같다. 결국에는 바뀌지 않을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분명, 똥고집은 괜히 똥고집이 아니었을 거다. 결국 내가 기록의 소중함에 대해 자각한 현재의 시간들만이 하나하나 조금이라도 더 세상에 내가 존재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들이다. 저번에 언급했듯, 흘려보낼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래를 한 알 한알 쥐고 가끔씩 세어보기까지 하는 내 손은 여전히 '무위자연'과는 거리가 멀다. 언제쯤 흐르는 대로 사랑하고 살아가게 될까. 흐르는 삶에 만족하고 흘러간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답이 없는 문제란 걸 알면서도 새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뿐일 내 스무살이 다시 돌아가 고치고 싶은 시간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릴 때부터 고민했으면서도 결국 전과 다름없는, 그저 '나'로 살아간 고등학생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아마 스무살도 결국 여러가지 장점과 여러가지 단점을 가진 나일테고, 앞으로도 영영 내 몫만을 살아갈 거다. 그래도 가끔은 일상 속에 이상한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파도처럼 부딪히며 강해지는 것에 익숙해 지는 게 내 최종 목표다. 수요일엔 이슬아 작가님의 북 토크 영상을 봤는데, 거기서 소개해주신 만화 '헌터X헌터'가 기억에 남는다. 계속해서 센 애들이 나오고 또 나온다고 했다. 센 애들이 자꾸 나온다는 말을 들으니까, 같은 내용은 아니겠지만 꽤 재밌게 봤던 애니메이션 '원 펀치 맨'의 대머리 히어로 주인공이 생각났다. 그는 펀치 한 방으로 최종 보스 취급을 받던 센 애들과 더 센 애들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그랬던 게 아니라 자기가 수련을 거듭한 끝에 그렇게 너무, 모두를 초월하게 세져버린 거였다. 인생도 하나의 수련이라던데 살다 보면 더 강해지겠지. 부서질 듯이 약해도 부딪히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는 거다. 어쨌든 이런 세상에 던져졌으니까. "과실로 해서 더 커지고 깊어 가는 인격이 있다.
과실로 해서 더 정화되고 향기로워지는 사랑이 있다. 생활이 있다." - 김소운, 특급품 부딪히는 걸 두려워 하지 말자! 파도의 시선도 계속 열심히 해봐야지. 솔직히 쓰다 보면 매번 '아, 재미없다. 망했다.' 싶어서 최소 한 번은 썼다 지우는데 여전히 별로다. 어떻게 써야 더 솔직한 글이 나올까 하며 쓰는데도 워낙 감정들이 오락가락해서 생기는 모순점들을 발견한다. 오늘도 자연스러-운 척하며 기록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강해지자는 이야기로 넘어가 버렸다. (사실은 다짐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현재는 이렇게 되고 싶다~ 같은 말을 할 뿐인 인생 초보자니까.) 초보 메일 연재자가 다 그렇지, 하면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실 거죠? 제가 더 잘할게요. 예쁘게 봐주세요.ㅋㅋㅋ!) 이제 정말 한여름이네요. 습하고 덥지만 과거를 떠올려 보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항상 여름의 기억이에요. 여름은 기억을 붙잡아 두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하루 되시고, 매일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여름의 부분부분 떠오르는 케이팝 ![]() 초여름의 이달의 소녀 최리 - Love Cherry Motion "너랑 걷다가 스친 손등에 네가 마시다 건네 준 레모네이드 온종일 네가 불어넣은 설레임에 커질 대로 커진 내 마음 (...) 내 눈에 내 맘에 네가 있어" 최리의 목소리는 그의 이름처럼 여름에 실내에서 에어컨 틀고 먹는 상큼한 체리 한 알의 행복 같다. 러브 체리 모션은 뮤직 비디오를 통해 처음 접했는데, 뮤비도 예쁘고 노래도 좋아서 여름이 올 때마다 한 번씩은 꼭 듣게 되었다. 우연히 이 노래를 찾아내고 듣기 시작한 것처럼 매년, 하지만 어느 순간 찾아오는 여름의 시작(비록 가사에는 '한여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을 닮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수영장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바다에 놀러가는 여름이 아니라 반바지를 입고 뛰어 다니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해가 짱짱한 길거리를 걷고, 여름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그 여름 말이다. ![]() 한여름의 위너 - Love me Love me "눈이 부셔 넌 까만 밤의 별 다른 건 안 보여 난 너의 것 너도 내 맘과 같다고 just tell me tell me now" 이건 여름 필수곡이라고 볼 수 있고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뮤직비디오부터 여름 냄새가 물씬 난다. 햇빛이 센 여름에 창문을 열어놓고 해안가 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듯한 노래다. 어느 계절이든 이 노래를 들으면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어지고, 존재하지도 않는 여름의 '그 사람'과의 시간이 보고 싶어진다. ![]() 여름 밤의 엔시티 드림 - Fireflies "Don't be afraid tonight Just know you're never be lonely I know it's hard sometimes to see the light But you and I keep on dreaming We gon' light it up Light it up now, darling We can make the stars align (오늘 밤을 두려워하지 마 네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줘 가끔은 빛을 보기 힘들다는 걸 알아 하지만 우린 계속 꿈을 꿀 거 잖아 우린 빛을 낼 거야, 빛을 내보자 우린 별들을 나란히 수놓을 수 있어)" 이 노래는 24th World Scout Jamboree와 협업해서 나온 노래라 그런지 유독 여름 밤 컵스카우트의 캠프파이어를 떠오르게 하는 노래다. 이 노래가 발매된 후 매년 꼭 한 번은 여름 밤에 이 노래를 듣는다. 선선한 밤바람이 느껴지는 노래다. 가사의 뜻을 헤아려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좋아하는 사람과 밤하늘을 보며 야영하는 것 같아 좋았다. ![]() 장마철의 샤이니 - 투명 우산 "오늘 어두운 밤 하늘 위로 구름, 이 별을 가리고 막지 못할 이 비도 내리고 마지막 인사를 대신해 내민 투명한 우산에 잊지 못할 너의 뒷모습도 가릴 수가 없는 걸 (...) 말없이 비는 밤을 적시듯" 듣는 사람들은 꾸준히 찾아듣는 숨은 샤이니 명곡으로 유명한 노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자연스레 이 노래를 듣게 된다. 축축한 여름을 덮는 차가운 비가 내리는, 그래서 좋은 그런 날에 들으면 더 좋다. 멜로디도 그렇지만 가사가 시 같아서 괜히 감성에 잠겨 듣곤 한다. 비오는 날 실내에서 들어도 좋지만, 밖에서 이어폰으로 이 노래를 들으며 우산 위로 내리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앉아 있어도 좋은 고독에 잠겨볼 수 있다. 해본 적도 없는 비오는 날의 이별에 기분이 묘해진다. 무모한 청춘의 여름과 차분한 치유의 여름 ![]() 핫 썸머 나이츠 (2017) "이 여름이 끝나고도 하고픈 말이 있다면 그 때 말해줘" 나는 여름과 청춘 하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영상미가 너무 좋고 티모시 샬라메의 눈빛에 꽂혀 보게 되었는데, 일단 나는 재미있었다. 여름이라서, 또 청춘이라서 무모해질 수 있는 것들과 그것들에 대한 당연한 후회,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또 저지르는 것들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물론 남자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의 분위기가 여러 몫을 했지만 주인공들 스타일도 멋있었고 과감하게 직진하는 모습이 내가 좋아하는 모든 주인공들을 닮아 좋았다. 결말보다는 시작할 때와 남자 주인공 대니얼과 맥케일라가 엉망으로, 그래서 더 재미있는 사랑을 할 때, 그리고 대니얼과 헌터의 이상하고 단단한 우정을 담아낸 장면들이 더 좋았다. 그래도 대니얼의 거짓말이 들통났을 땐 대니얼을 나무라고 싶었다. 그렇게 될 줄 몰랐냐, 대니얼?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2013)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 때에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두번째 영화. 보통 여름 하면 핫 썸머 나이츠 같은 청춘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만 이 영화는 청춘 영화가 아닌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내용을 담은 프랑스 영화이다. 처음에는 웨스 앤더스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예쁜 색감과 영상미에 끌려 봤던 영화였다. 내용이 너무 와닿아서 여러 번 그리운 마음을 느끼게 한 영화. 그래서 재탕도 꽤 했다. 주인공은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인해 말을 하지 않는 남자이다. 그는 말없이 매일 같은 루틴을 행한다. 어느날 그는 같은 빌라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 같은 집에 우연히 방문하여 마담 프루스트의 마들렌을 먹고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마담 프루스트를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직면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과정들을 보는 내내 그를 응원하게 됐고 나에게도 그런 기억하지 못하지만 날 짓누르는 기억들이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들판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시원한 클래식 by. 솔아 (객원) Jon Schmidt - All of Me * 사진(by. 솔아)을 클릭하면 해당 곡의 유튜브 오피셜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의도치 않게 7월 13일에 보내게 되어 죄송합니다. 스티비 스타터 요금제는 한 달에 두 번밖에 보낼 수 없는데 구독자 모집을 하기 전에 시험 삼아 보냈던 이메일까지 세어져버려서 메일 발송 가능 횟수가 갱신되는 7월 12일까지 더 메일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더 주의하겠습니다. 7월 13일에 보내면 이미 격주를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메일이 보내지기 이전의 구독자분들께 네이버 메일로 따로 다른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부족하지만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잘 모르는 장르인 클래식 음악을 소개해 준 솔아에게 박수를! 하고 싶은 말이나 피드백이 있으시다면 boyifall@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