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저장해온 나의 생각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스타그램에 처음 남긴 생각과 12년 전 오늘 써둔 페이스북 글귀와 스무살 첫 남자친구와 버디버디에서 나눈 대화들. 오래된 문장들의 납골당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몇 년에 한 번 잠이 오지 않는 날, 내가 국화꽃 한 송이 없이 찾가서 ‘가여운 생각들아, 너희에게 미안하다. 너희 볼 면목이 없다. 나른 이런 어른이 되었다’라고 속삭인다.
에세이 레터를 보내고 나면 주로 몇시간대에 구독자들이 메일을 열어봤는지 통계를 볼 수 있다. 다음날 오전 9-10시 사이에 주로 메일이 열린다. 그래프는 잠잠해졌다가 저녁에 다시 올라간다. 이 글의 수명은 약 반나절. 반나절 동안 누군가의 출근길과 근무시간과 퇴근길에 기생하다가 짧은 생을 마친다. 그리고 운 좋으면 마음 착한 이들의 마음에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그것도 ‘목숨이 붙어있다고’ 말해야 할 지는 모르겠다.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1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티도 안나게 평범한 제목 때문에자칫하면 지워버릴 뻔했다. '봐라.' 라는 제목. 마침표까지 찍을 필요가 있었을까. 대학교에 가는 나에게 쓴 아빠의 메일은 길고 지루한데 쓸데없이 아름다웠다. 엄마와 내가 격하게 싸운 날에도 아빠는 내게 고리타분하지만 간절한 문장들을 보내왔다. 다행히 이 포털 사이트는 지금 대기업이 되어서, 멸종 위기의 문장들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었다. 언젠가 인터넷 세계가 모두 증발된다면, 우리의 문장과 생각은 어디에 있을까. 좋은 말도 나쁜 말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묻혀서 어느 무덤에는 잔디조차 나지 않고 어느 무덤에는 꽃이 피고 동물들도 모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폰의 안내에 따라 '4년 전 오늘'이라고 뜬 기억을 기억해낸다.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죽기 직전이었던 기억들을 다시 공부한다. 내가 먹은 탄수화물과 비타민과 단백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였는지 나는 알 수 없듯이, 내 모든 문장과 생각들도 내 몸 어딘가에 남아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하겠지. 그리고 우리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인터넷에 떠도는 서로의 문장을 찾아다니며 서로의 과거에 묵념하고 잠이 든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에 가는 버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보니, 기억이 났어요. 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 다 기억이 나요. 만약 이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내 옆자리에서 잠들어있던 저 붉은 수염 아저씨의 존재 따위는 죽을 때까지 되새길 일이 없었을 겁니다. * 050701-04-082152 (국민은행)으로 1원 이상의 자유분방한 후원이 가능합니다.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친구에게 '구독하기' 링크를 공유해주셔요. * 글과 사진의 일부는 출처를 밝히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오지윤에게 있습니다. * [보낸이 오지윤]의 글과 사진에 대한 자유로운 답장은 언제든 감사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 [보낸이 오지윤]은 수요일, 일요일 밤 사진과 글을 보내드립니다. * [지난 글 읽기] 버튼을 통해 다른 글도 감상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