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 편지를 읽고 나는 잠시 시간여행을 했어. 얼마 전 내 곁을 떠난 우리 유로의 마지막 순간부터 유로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순간까지. 언니와 언니 가족들이 다복이와 함께 보냈을 시간도 상상해봤어. 작디작은 강아지가 집에 오고,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보드라운 털의 감촉과 온기에 위로 받고, 맑고 깊은 눈으로 말을 건네는 존재와 깊이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최근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유로는 나의 두 번째 고양이야. 내 인생 첫 반려묘였던 세로가 집에 오고 두 달 정도 지나서 우연히 우리 집에 오게 되었어. 유난히 커다란 눈에 경계심을 가득 품고, 침대 밑에서 웅크린 채 며칠을 나오지 않던 유로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후 조금씩 집안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했어. 그러다 곧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로를 경계하듯 바라보던 세로와 마주쳤고, 그 둘은 일주일 넘게 무시무시한 전쟁을 치렀어. 이러다 누구 하나 정말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격렬한 전쟁이었어. 하지만 신기하게 어느 순간 더 이상 서로를 공격하지 않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둘도 없는 단짝이 되더라. 샘이 날 정도로 말이야.
유로가 더 이상 밥을 먹지 않고 누워만 있을 때,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세로를 곧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수없이 되뇌었어. 유로한테도 말했지. 괜찮다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고양이 천국에 가면 세로를 만날 수 있다고. 예전처럼 같이 뛰어 놀고 서로의 몸에 기대어 자라고, 그러다 내가 생각나면 꼭 같이 내 꿈에 나와 달라고. 유로는 고양이 천국에 잘 도착했을까? 둘이 만나서 정신 없이 노느라 아직 나한테는 찾아오지 못한 거겠지?
이번 편지에 쓰려던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유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 그래도 이렇게라도 유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참 좋다.
사실, 언니 편지를 받고 반려동물과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얼마 전 아이와 읽은 <우리 집 고양이>라는 책이 떠올랐거든.
|
|
|
<우리 집 고양이>는 화자인 '나'의 집에 이미 어른이 된 길고양이가 오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야. 언니도 고양이와 살아봐서 알겠지만 고양이들은, 특히 다 큰 성묘는 경계심이 아주 많잖아. 이 그림책 속 고양이도 그래. 한 달을 소파 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겨우 나와서도 화자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하악질을 하고 도망가 버려. 화자는 그런 고양이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보다 이렇게 말해.
“길고양이였던 너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우리 집에는 해로와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둘 더 있거든. 근데 이 둘은 성격이 전혀 달라. 둘 다 비슷한 나이에 길에서 데려왔는데, 성묘가 된 순이는 지금도 이상하리만치 사람을(아무나) 잘 따르는 ‘무릎냥이’이고 해로는 내가 아니면 곁을 잘 내어주지 않아. 아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곁에 계속 머무른 건 순이고, 아이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후다닥 숨기 바빴던 건 해로야. 아이가 거실에 있어도 더 이상 해로가 숨지 않고 나와 있기 시작하자, 아이는 해로와 더 친해지고 싶어 했어. 하지만 마음만 앞서는 아이가 손을 뻗고 해로에게 다가가면 해로는 줄행랑을 쳤지.
“우주야, 해로한테는 네가 엄청 큰 사람이야. 갑자기 그렇게 서서 다가가니까 깜짝 놀라서 도망가는 거야. 커다란 거인이 우주한테 성큼성큼 다가온다고 생각해봐.”
몇 번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다음부터 아이는 무릎을 꿇은 채로 가만히 살금살금 다가가기 시작했고, 몇 달 만에 해로 가까이 가는데 성공했어. 하지만 아이가 손이라도 뻗을라치면 해로는 휙 자리를 피해버렸지. 아이는 매일 아침 해로의 숨숨집 앞에 가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어. “해로야, 안녕. 잘 잤니? 사랑해.” 그렇게 또 다른 몇 달을 노력한 끝에 아이는 해로를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어. 성급하지 않게, 고양이의 눈높이에서, 끊임없이 해로에게 말을 건네며 다가간 덕분에 말이야.
|
|
|
<우리 집 고양이>의 화자도 그래. ‘괜찮아, 무섭지 않아, 미안해’라고 말하며 고양이가 마음을 열길 기다려. 아무리 할퀴고 깨물어도 고양이가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면서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라고, 괜찮다고, 다독이듯 말을 건네. 봄, 여름, 가을, 세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발톱을 드러내고 화자를 물어버리던 고양이는 어느 겨울 밤, 드디어 침대로 찾아와. 반가운 마음에 찾아온 고양이를 쳐다보는데, 고양이는 갑자기 확 달려들어 공격을 하지. 처음엔 서운했던 화자는 곧 이렇게 말해.
“그런데 사실, 고양이도 그냥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자고 싶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나랑 눈이 마주쳐서 깜짝 놀란 것뿐일지도 모른다.”
언니, 누군가를, 그러니까 어떤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는 건 그 존재가 되는 것과도 같단 생각이 들어. 그림책 속 ‘나’가 고양이의 입장에서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처럼 말이야.
내가 나의 첫 반려묘인 세로에게 완전히 푹 빠졌을 때, 나 역시도 모든 걸 세로의 시선으로 보게 되었어. 세로가 들어갈만한 구석구석을 모두 닦고, 세로가 올라갈만한 높은 곳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로가 재미있어할 만한 것들을 찾아 세로 앞에서 흔들어댔어.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동물병원에 가던 날은 세로가 얼마나 두려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 신경이 곤두섰어.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안내방송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그 모든 소리들이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증폭되어 들리는데, 마치 내가 고양이가 된 것만 같았어.
고양이든 강아지든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그 존재가 되어보는 과정이기도 해서 참 소중한 것 같아. 내가 가진 위치가 아닌 다른 존재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경험은 분명 우리의 공감능력을 다른 차원으로 올려주는 일일 거라고 생각해. 게다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언어와 습성을 가진 존재를 그 자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들은 그보다 더 큰 이해와 사랑을 우리에게 주잖아.
아이를 임신했을 때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고양이는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이었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라고 느꼈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 나는 우리 집에 고양이들이 있다는 게, 그래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게 참 좋다고.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체험’으로 만나지 않고,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존재로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봐.
|
|
|
이 그림책은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계속 눈길을 사로잡아. 언제쯤, 어떻게 고양이와 화자가 가까워질까, 궁금해서이기도 하고 고양이 표정과 몸짓이 너무 생생하고 귀엽게 묘사되어 있어서 눈을 뗄 수 없기도 해.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을 그린 거라는데, 작가가 얼마나 이 고양이를 사랑하는지 글과 그림을 보면 느껴져. 고양이와 화자가 조금씩 서로를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뭉클해지고, 우리 집 고양이들과의 첫 만남이 떠오르기도 했어. |
|
|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 또는 반려동물을 입양하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이 그림책을 보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 보낸 사람들에게 <고양이 천국>과 <강아지 천국>이라는 그림책을 꼭 추천해주고 싶어. 유로가 떠나고 우연히 알게 된 이 그림책에 정말 많이 위로 받았거든. 언니한테도 <강아지 천국>을 보냈어. 지금쯤 아마 프랑스 어느 도로 위를 열심히 달려가고 있을 거야.
많이 추워졌다. 언니, 몸 잘 챙겨.
유로와 다복이를 기억하며,
다경
|
|
|
우리 집 고양이
(글,그림 타카하시 카즈에 ∣ 천개의 바람)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천천히 천천히 우리 집 고양이가 되렴.
길고양이가 우리 집 고양이가 되기까지, 믿음과 사랑으로 쌓은 일 년 동안의 이이야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中) |
|
|
[11월 이벤트]
저희 편지에 대한 후기 또는 답장을 보내주세요. 짧아도 괜찮아요😉
한 분을 선정하여 선물로 다경의 첫 에세이 <우리는 3인 4각으로 걷고 있다> 한 권을 보내드립니다. *보내주신 편지는 동의를 거쳐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