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 around
newsletter No.346
 
 
"연인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 이승우, 『사랑의 생애』 중에서
 
 
 
 
 
 
 
 
 
 
 


🚶‍♀️규슈 산보 | 최갑수

사가


한달 전 일본 규슈 사가현 이곳저곳을 여행했습니다. 사가는 이전에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입니다. 아주 아늑하고, 아주 한적하고, 아주 여유로운 곳이죠. 온천도 즐겼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사케도 마셨습니다. 사가에서 산보 풍경 전해드립니다.

여행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행을 가서는 우리를 옥죄고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납니다. 돈을 벌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 그게 여행이죠. 

삶은 오전 11시의 체크아웃과 저녁 8시 비행기 사이에서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다니다가 푹신한 소파가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일. 그러면서 ‘아, 좋다!’ 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진 돈을 몽땅 다 써버리고 죽겠다. 음, 이런 비장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보고 싶군요.

해지는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는 약간의 각오와 약간의 여유 그리고 즐겨보자는 마음가짐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니고 우리에겐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있죠. 그러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고,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기도 하니까 말이죠. 나는 이번 여행에서 뭘 얻었을까, 이런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요. 여행에서 꼭 뭔가를 얻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즐겼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나는 좋은 여행을 했고 내 인생은 여행을 하는 동안 더 좋아졌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야구복을 입은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세계가 구석구석까지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이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워 한참을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요. 이런 풍경 앞에서는 세상이 꼭 이해와 납득, 섭렵과 통제의 대상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세상을 감각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세상에 대해 약간은 심미적이며 관조적인 자세를 가져 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바로 그 정신적 습관 말이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세상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더 선의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어느 인터뷰에서 제게 ‘인문’이란 무엇일까요?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잠깐 멈춤’이라고 대답했다. 모두가 돈과 욕망을 좇아 앞만 보고 내달릴 때 잠깐 멈추어 서서는 ‘여기, 사람이 있어.’ ‘여기, 더 중요한 가치가 있어.’ ‘여기, 더 옳은 의미가 있어.’ 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생각해 보는 일. 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

📷 산보 사진 몇 장 더...  

🔖  사가에서 찾은 곳

가니코텐 료칸은 게 요리가 맛있는 곳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죠.

히노데야(ひのでや 清水別館)는 잉어회를 먹을 수 있는 곳. 한번 도전해 보시죠. 

미-루 코야나기(ミールこやなぎ)는 어마어마한 양의 시칠리아 라이스를 먹을 수 있습니다. 다 먹으면 대식가 인정.

카시마 시에 히젠하마 역에 있는 ‘하마 바’(Hama Bar)’에서 사가의 사케를 시음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기 시는 양갱이 유명합니다. 1899년 창업한 무라오카 총본점의 양갱은 선물용으로도 좋답니다.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다. 매일 매일 글을 쓴다. 써야 할 게 많은데, 쓸 시간이 없어 안타깝다. 쓴 책으로 『사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ssu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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