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을 위한 칵테일 입문서, 강남 <어글리>

2022.11.30.

테이블톡을 사랑하는 SNS 기획자. 인적 네트워킹을 온,오프라인으로 구현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요즘 2023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캘린더를 찾아다니는 중이다. 제품 추천은 🙏DM🙏으로 부탁드린다.

비틀거리는 불빛, 파도치는 붉은 아스팔트. 중심을 잡아야겠다 싶을 때는 어느새 바닥에 고꾸라져 붉은 방울이 무릎에 맺혀있다. 막차를 앞두고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으려는데 이런, 아까 술집에 지갑을 두고 온 게 분명해. 급히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서 손을 허우적대며 택시를 잡았다. 딱 거기까지.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블랙홀처럼 빙글빙글 돈다. 당연히 어제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되던 봄, 뭣도 모르고 벌컥벌컥 마셔버린 칵테일은 블랙아웃 그 자체였다. 소주처럼 병의 개수로 주량을 체크할 수도 없고 도수도 몰랐기에 금방 취해버렸다. 그렇게 치기어린 시절에 치명적인 기억으로 남은 ‘강남역’과 ‘칵테일’. 세상에, 곧 스무 살이 되는 예비 드링커들이 즐기기에 아주 적합한 조합이 아닌가. 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호는 특별히 칵테일이 처음인 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이곳은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한 루프탑 칵테일 바 ‘어글리’. 공간은 전혀 어글리하지 않다. 입구에서부터 감각적인 그림과 인센스 향을 맡은 후 입장하면, 굉장히 이색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천장. 화려한 타로카드를 머리 위에 펼쳐둔 것 같았다. 1층의 넓은 홀에 6인용 소파테이블과 4인석 테이블이 널려있고,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즐기는 고급스러운 룸도 있다. 2층에는 좀 더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2인 테이블 여러 개가 마련되어 있다. 루프탑 바인 만큼, 야외테라스도 있다. 따뜻한 봄이나 여름에 이용하면 좋을 듯하다. 장소에 감탄하며 자리에 앉으니 이번에는 서버분께서 들고 오는 메뉴판이 눈길을 끈다. 한번 펼쳐보자.

백과사전인 줄 알았다. 칵테일 메뉴가 정말 많다. 칵테일은 물론, 맥주, 와인, 위스키, 샴페인까지 준비되어 있다. 논알콜 메뉴인 커피와 차에, 심지어 후카(물담배)까지.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라는 명대사가 생각난다.

칵테일에 들어간 재료를 전부 쉬운 단어로 적어두었기 때문에, 설명만 읽고 본인이 원하는 맛을 고를 수 있다. 다만 페이지 수가 워낙 많고, 다른 칵테일 바와 달리 서버분의 추가 소개가 없어 전체 메뉴를 1회 정독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오늘은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칵테일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맛의 칵테일 3가지와 더불어, 초심자를 위해 술을 즐기는 3단계를 소개해보겠다.

STEP 1

도수가 약하고 상큼한 칵테일부터 시작해보자. 보통 신 맛에서 달콤한 맛으로, 바디감이 가벼운 술에서 묵직한 술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머스캣 웨이브

도수 : 16%

가격 : 18,000원

초심자는 술을 즐기는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코에서 향을, 입에서 맛을, 목에서 전체적인 술의 분위기와 잔향을 느끼는 것. 이 감각의 훈련은 비교적 맛과 향이 강한 칵테일로 시작한 이후에 위스키와 와인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머스캣 웨이브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1) 로즈마리의 허브 향과 보드카의 알코올 향을 코로 즐기고,

2) 청포도와 알로에, 그리고 레몬의 상큼달달한 조화를 입안에서 느낀 후,

3) 삼키고 나서 강하게 머무르는 청포도향을 즐기는 것.

이것이 칵테일을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다. ‘어글리’에서는 머스캣 웨이브와 비슷한 과일 칵테일로 팜플무스(자몽), 진 피즈(레몬), 애플 마티니(사과)가 있다. 비교적 상큼한 맛의 칵테일로 시작하는 것이 제일 좋다. 아, 물론 0번째 순서는 예쁜 칵테일을 예쁘게 찍어두는 것.

STEP 2

이때 달콤한 맛이 더 강한 술을 즐기면 좋다. 안주로는 약간 짭짤하고 고소한 스낵류가 가장 잘 어울린다. 단, 주량 체크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라면, 3단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낫어글리

도수 : 12%

가격 : 22,000원

외관만 봐서는 절대 술이라고 믿을 수 없다. 달달한 커피 향이 매력적인 칵테일이다. 이전 <아워스> 편에서 소개한 파리제 칵테일과 비슷하다. 럼과 콜드브루, 그리고 헤이즐넛 리큐르인 프랑젤리코를 믹스한 후 맨 위를 크림과 코코아 가루로 장식했다. 마치 아이스 헤이즐넛 아인슈페너를 마시는 듯하다. 디자이너 피노도 초코우유 맛이라 취하기 좋을 것이라며 잔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일반적인 커피처럼 마시기 좋은 정도로 알코올 향이 강하지 않다. 그러니 조심할 것.

STEP 3

Bar에서 일어나기 전, 마지막 술을 마시는 단계를 의미한다. 이때 도수가 가장 높은 술을 주문한 후, 물과 함께 조금씩 음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남겨도 좋으니 천천히 마시는 것이 포인트이다. (1단계부터 도수가 강한 술을 마시면, 알코올 성분이 혀를 마비시키기 때문에 그 이후의 술맛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민트줄렙

도수 : 35%

가격 : 19,000원

각자의 취향이 다르겠지만 에디터 개인적으로는 달달한 칵테일 이후에 시원한 향을 가진 칵테일로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낫어글리에 달아져버린 입안을 민트 향의 칵테일로 시원 상큼하게 헹궈주는 것. 민트줄렙은 버번 위스키, 데메라라 시럽*, 그리고 민트잎이 전부인 심플한 형태의 칵테일이다.

얼음이 녹기 전에 마시면 물에 희석되지 않은 위스키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지만, 알코올에 약한 사람들에게는 강한 술맛이 날 수 있다. 얼음을 조금씩 녹여가며 원하는 농도를 찾아보자.

*데메라라 시럽 : 사탕수수에서 추출된 데메라라 설탕과 물로 만든 시럽

트러플 프라이즈

가격 : 15,000원

바삭하게 튀겨낸 감자튀김은 어느 칵테일에도 잘 어울리는 핑거푸드이다. 트러플 오일, 프렌치 프라이, 크럼블스 베이컨, 그라나 파다노 치즈로 장식했다. 트러플 향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게 올라온다.

통 베이컨 스테이크

가격 : 18,000원

두툼한 베이컨을 통으로 구워냈다. 그동안 먹었던 바싹 구운 말라깽이 베이컨들과 다르다. 삼겹살에 훈연향을 입힌 듯한 맛이다. 메이플 시럽에 담근 후 단짠의 조화를 즐겨보자. 상큼한 샐러드로 중간중간 입안을 클렌징해주면 된다. 2차로 이곳을 방문한다면 시킬 일이 없겠지만, 배고픈 친구의 늦참이 예상된다면 도착 10분 전에 미리 시켜두는 센스를 발휘해보자.

이제 막 성인이 될 친구가 있다면, 이번 뉴스레터를 필히 공유해주길 바란다. 실수를 통해 배울 기회가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 인생이지만, 술 먹고 저지르는 과오들은 대개 교훈이라고는 쥐뿔도 없고 쪽팔림만 남을 뿐이니까. 심지어 취함의 역사는 유구히 이어진다. 그리고 그걸 우리는 ‘내가 또 술 마시면 개다.’ 라고 치환하곤 한다. 왈왈. 갓 스무 살이 될 분들에게 에디터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ditor_청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