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0일은 고(故) 이윤설 시인의 5주기였습니다. 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많이 내렸지요. 우리는 눅눅하게 젖은 신발을 신고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나누며 그녀의 시를 한 편씩 낭독했습니다. 오늘은 그녀가 고여 있는 빗물 속에, 튕겨오르는 빗방울 속에 있겠구나 생각하면서요. 이윤설 시인은 2004년에 희곡으로 등단, 2006년에는 두 곳의 신춘문예에 시로 동시 당선되면서 신춘문예 3관왕으로 주목받는 작가였지요.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만 51세에 세상을 떠난 그녀는 희곡집 『불가사의 숍』(연극과인간, 2008)과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를 남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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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윤설 시인을 처음 만난 건 아주 오래전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에서 한 달 남짓 글을 쓰며 지낼 때였습니다. 함께 지낸 작가들 중에 특히 그녀와 마음이 잘 통했습니다. 얼굴을 찡긋하면서 연극적 대사를 읊조리듯 멋진 문장을 쏟아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후로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다가 십 년 가까이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문예지에서도 그녀의 시를 볼 수 없었지요. 외국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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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녀가 전화를 했습니다. 흑색종이라는 암으로 투병중인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육 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어요.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혀가 굳고 성대가 상해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녀는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들려주며 말했습니다. 시와 희곡을 떠나 드라마와 시나리오를 쓰느라 분투했지만, 죽을 때는 시인으로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요. 그 말에 두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 급하게 원고를 모으고 출판사를 알아보았습니다. 시집 출간이 병세를 호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지만, 그녀는 시집을 보지 못한 채 2020년 가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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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살아봤고 꿈을 가져봤고 짝도 만나봤고
죽어서 먼지가 될지 귀신이 될지 우주의 은하수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온 것이 안 온 것보다 낫다.
허나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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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설 유고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는 1주기에 맞춰 나왔습니다. 시인은 병세가 악화되어가는 와중에 2019년 12월 25일 자신의 생일에 쓴 이 글로 ‘시인의 말’을 대신해달라고 했습니다. 그중 일부인데요. “온 것이 안 온 것보다 낫다”는 문장보다 “허나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는 마지막 문장이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녀가 견뎠을 고통의 무게가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실려 있는 것 같아서요. 함께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헤아리며 그녀의 시집을 다시 펼쳐 읽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려봅니다.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지금 내가 윤설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많은 친구들이 윤설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시집 속에서 윤설은 내내 남아 있고, 말하고 있고, 우리 곁에 숨쉬고 있다고. 그리고 우시사의 독자들께서도 이윤설이라는 시인을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될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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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가슴에 지옥 하나씩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생을 소리없이 지옥의 내장 하나를 만”드는 게 삶이라고 했던 시인의 말처럼. 불타는 집을 내면에 품고 “앗, 뜨거워. 앗, 뜨거워”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 불타는 집에서 나올 생각은 하지 않지요. 그런 우리에게 이 시는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합니다. 막상 꺼내서 보면 그 지옥이 “네모난 작은 새장”처럼 참 작다고. 나를 가두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내가 삼킨 새들이 지은/ 전생”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시적 화자는 그 ‘작은 지옥’을 공놀이하듯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기도 합니다. 자신이 살던 고통의 집에서 나와보는 것만으로도 그 무게는 훨씬 줄어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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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시인을 ‘회복기의 환자’에 비유했는데요. “배가 쑥 꺼진 채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 앉아 햇빛을 쪼이는” 화자의 모습이 바로 회복기의 환자처럼 보입니다. 여러분도 긴 고통의 밤을 보낸 후에 햇살이 투명하게 비추는 아침을 맞이한 적이 있으신지요? 고통의 원인이나 상황은 머리카락만큼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마음의 불길이 잦아들고 세상이 고요해지는 느낌. 이상하게 시야가 트이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나를 바라보는 또하나의 나를 갖게 된 느낌.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내가 지워지는구나”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나’(자아)는 지워지고 ‘세계’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 이를 ‘시적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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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은 『고통 없는 사회』(김영사, 2021)에서 고통이 없다면 정신은 동일한 상태에 머무른다고 하면서, 정신을 변환시키는 고통이야말로 새로운 정신을 형성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네가 고통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말하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는 말은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계 맺는지가 사람의 정체성이나 자아 인식의 핵심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고통공포'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상태를 회피하려고만 합니다. 상처받을 게 두려워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사랑의 고통조차 믿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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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의 시편들은 이윤설 시인이 고통 앞에서, 사랑 앞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고 용기 있게 살았는지를 전해줍니다. 그녀의 등단작 「나무를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부터가 그랬어요.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나무 잎을 따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라는 상큼한 구절로 시작되는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사랑을 잃은 슬픔을 나무의 비린 맛으로 달래는 그 모습을 저는 ‘씩씩한 슬픔’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끝내 명랑함을 잃지 않았던 사람, 이윤설. 절박하지만 유쾌하게 타전하는 그녀의 무전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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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버
널 떠나기로 했다 오버
(……)
내 손에 쥔 이 편지를 부치지 마라 오버
희망이 없어서 개운한 얼굴일 거다 오버
코도 안 골 거다 오버
눅눅해지는 늑골도 안녕이다 오버
미안해 말아라 오버
오버다 오버
- 「오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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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163 이윤설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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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설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 등단 후 15년에 이르는 동안 시인이 오래 다듬었던 시편들은 갑작스레 닥친 불행을 직면하여 언어화하는 가운데, 불행이 끝내 꺾지 못한 의지를, 세상과의 작별을 앞두고 남은 미련을, 사랑하는 존재들을 향한 해틋한 마음을, 그리고 다음에 대한 기약을 담고 있습니다. "너는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밖으로 울어보았을 것이다/ 왜 이런 인내가 필요한 게 인생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너는 몰랐을 거다"(「남몰래 수영장」). 시인은 언어의 몸을 빌려 최선의 인사를 건넵니다. 삶을 너무나 사랑하던 시인이 눈물 젖은 미소와 함께 남긴 말, 우리의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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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정한 예언은 시인이 우리와 세계를 바라보고 도달하는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해요. 모질고 모진 삶에 대해 “왜 그렇게 쥐었다 폈다 꼬깃꼬깃해지도록 사랑했을까 오버/ 사랑해서 주름이 돼버린 얼굴을 버리지 못했을까 오버/ 엔꼬다 오버”(「오버」) 말하며 애증과 미련과 후련함이 한데 섞인 복잡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던 시인은 그럼에도 삶과, 삶에서 만났던 이들을 지독히 사랑했던 만큼 남은 이들에게 정답고 눈물어린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그의 눈물 젖은 미소를 읽어주시길, 그리하여 그가 그렸던 세상을 함께 떠올려주시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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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슬픈 사람 한 명만 대표로 슬퍼해야 하는 세상, 살아 있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들을 사랑해버린 사람에 대한 동화를 읽은 기분입니다. 담담한 문체 아래 일렁거리는 슬픔과 분노가 세상을 불태우고 난 천국의 터에 저도 서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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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화를 시키면 무게가 가벼워진다고들 하는데, 저는 슬픔을 보편화시킨다면 그 모든 이의 무게가 저를 짓누를 것만 같아요. 슬픔의 대표를 매긴다면 그게 가장 슬픈 일이지 않을까요. 사건의 지평선에 서 있는 제 뒷모습을 생각하면 허둥대지도 못할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속마음을 마주하는 건 늘 기쁨보다는 슬픔이 큰 것 같아요. 그럼에도 감정은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기에, 오늘은 와르르 웃어 보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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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한테도 이해받지 못하고(혹은 이해해주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는) 혼자만의 슬픔에 잠겨서 허우적대는 동시에 그런 저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는데요, 오늘 온 이 메일 덕에 아주 조금은... 저 자신에게 나쁜 말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시도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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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소중한 피드백은 우시사를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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