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적 위기 시대, 기독 지식인의 과제


임성빈(장신대 前 총장, 한반도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이 땅에서 삶을 마칠 때의 대답

  지금까지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특별히 오늘의 기성세대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선물을 함께 누린 세대이다. 신앙인들의 경우에는 세계교회사에 기록될만한 교회 부흥과 민족복음화와 해외선교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사역들을 행하고 체험하였다.

  만약 우리가 속한 이 세대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친 후, 하나님께서 너의 삶이 어떠했냐고 물으시면 “열심히, 신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고, 그래서 감사합니다”라고 답할 것 같다. 아마도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복을 많이 받은 나라가 대한민국일 것이다. 우리가 받은 복은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발전, 사회문화적 다양성과 풍성함은 물론이거니와 복음의 역사를 통한 영적 부흥을 포괄하는 통전적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도 온전함을 위한 우리의 여정은 아직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의 과거 역사를 기억할 때, 적어도 오늘이 ‘복 받은 현실’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이러한 인식은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라떼 세대’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주님께서 ‘그런데 지금 너희가 떠나온 나라와 교회는, 너희 자녀들은 어떻게 된 것이냐?’ 물으실 때 과연 하나님 얼굴을 제대로 뵐 수 있을지 벌써 죄송스러운 마음이 커지는 요즈음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Coram Deo)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있지만, 그때에는 더욱 생생히 분명하게 주님 앞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신학적 용어인 종말론적 삶이란 마지막 순간 일어날 것을 믿음의 눈으로 선취함으로써, 지금 여기서도 그러한 삶을 살아냄을 말한다. 이것은 최근 유행한 드라마인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의 삶과 유사하다. 주인공이 성공적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미래를 미리 살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도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알지 않는가? 이제 마지막을 알고 있는 우리가 현재로 돌아와 살아가는 삶을 ‘재벌집 막내 아들’ 아니 ‘더 크신 분의 딸과 아들’답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 안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딸과 아들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우상적이지 않는 자기존중(non-idolatrous self-esteeem)’을 토대로 한다. 나아가 세상적 가치, 즉 경제적 정치적 위치와 계급에 따른 관계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자매와 형제로서의 관계 맺음을 추구하며, 이러한 관계를 아직도 인식하지도 못하고 이루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작은 이들’에 대한 사랑을 우선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성경의 결론을 오늘에 살아내는 삶, 즉 ‘종말론적’ 삶이라 한다.

  신앙인도 모든 것이 격동적으로 변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하며 그래서 모호해 보이는, 이른바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nd ambiguity)로 상징되는 세상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신앙인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한계와 모순을 간파하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한다. 세상의 가치와 삶이 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인들은 이 세상 안에서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을 소망하며 지향하게 된다. (요 17:16)


기독 지식인의 과제

1. 이러한 관점에서 2023년의 성탄을 보내고 2024년의 새해를 맞이하면서 과연 주님 앞에 제대도 설 수 있기 위한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 특별히 기독 지식인들의 과제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성경은 오늘을 사는 기독 지식인들의 과제를 분명히 일러 주고 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벧전 3:15)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현실의 모순을 넘어서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눈으로 보는 치열한 학문함’으로 대답할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삶’과 ‘학문의 내용’을 통하여 그 대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고 실천하도록 힘써야 한다. 기독 지식인들은 우리의 일상적 삶을 토대로 한 학문함으로 복음적 가치가 담겨 있는 담론을 형성함에 힘써야 할 것이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나누어야 할 이 세상은 지금 후기-산업화(post-industrial) 후기-자본주의(post-capitalism), 탈근대 또는 후기 근대로 번역되는 포스트-모던(post-modern), 후기-민주주의(post-democracy), 후기-종교(post-religion), 후기 세속화 (post-secularization)와 후기 기독교(post-Christianity) 등으로 상징되는 다양한 전환기적 사회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변동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과 이러한 변화를 이용하여 자신의 유익을 담보하려는 사람과 집단들, 나라들 사이의 격차가 유래 없이 커지고 있다. 개인/집단적 자기 중심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욕망이 혼재하며,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과 인격적 소통의 부재와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세습 중산층사회’, ‘공정사회’, ‘초격차사회’, ‘추월사회’ 등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변동의 배경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오늘의 현실에서 신앙인답게, 복음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하는가? 오늘 수많은 사람들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의 전설적 일화들과 구글의 COO인 모가댓, 페이스북(메타)의 운영 책임자를 지냈던 새라 샌드버그 등의 삶과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통하여 큰 도전을 받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성공한 지성인들이며, 전문인들이면서, 삶의 고통을 체험한 이들이다. 그들은 죽음의 한계마저 나름대로의 철학/영성으로 해석하면서, 현실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특별히 이웃들에게 자원봉사와 거액 기부를 마다하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것은 실리콘 밸리의 복음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복음과 실리콘 밸리 등 세상의 지혜자들이 나누는 메시지의 차별성은 무엇일까를 우리는 심각하게 물어야 하고,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에게 우리는 진부해 보이며 그들은 참신해 보이며, 우리에게 보내는 신뢰보다 그들에 보내는 신뢰가 훨씬 커 보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3.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신앙의 핵심인 복음을 더욱 붙잡게 된다. 복음만이 세상과의 차별성을 담보하여 주는 우리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증거한다. 그래서 그 생명을 경험하고, 아니 그 생명을 허락받은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진리의 세계이자 진정한 가치다. 물론 그 생명, 그 생명의 가치와 문화를 전하는 우리의 태도는 온유와 두려움, 겸손이며, 세상이 공감할 수 있는 선한 양심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전환적 위기의 시대, 생명의 가치가 물질과 쾌락과 탐욕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 세대에 진정한 가치와 희망을 주려면 무엇보다 그러한 삶을 실천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교회다운 교회가 많아져야 한다.

4. 교회다운 교회가 된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신앙인다운 신앙인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됨을 뜻한다. 신앙인다운 신앙인은 성경이 증거하는 가치, 복음적 세계관과 가치를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결국에는 삶의 열매로서의 기독교적 문화를 일구어내는 사람들이다.
 
5. 이제 기독 지식인들은 이러한 삶의 과정과 내용을 담론으로 일구어내어 세상 사람들을 향한 복음으로의 초대에 걸림돌을 제거하는 역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로써 복음이 세상에서 조롱받는 현실을 변혁함에 힘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며,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론화하여 복음을 희화화하고 비현실적인 신화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 문화에 대안적인 담론을 제공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실천과 성찰과 학문함의 열매를 통하여 믿음이 연약한 이들과 우리의 다음 세대가 막연하게 반기독교회적인 풍조 속에서 복음으로의 초대마저 거절하는 현상을 역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치열한 신앙함과 학문함으로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해야 한다. 기독교적 담론을 형성하여 교회에 공급하고 신앙인들을 신앙인답게 양육하며, 사회의 주류담론에도 생명의 가치를 보여주며, 심어주는 역할을 다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6. 교회 안의 기독지식인들, 신학교육기관과 한반도평화연구원과 같은 학문적 신앙공동체들은 위기의 시대에도 맡겨진 복음의 유산을 재발견하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한다.

  우리의 신앙적 학문함을 통하여 우리보다 험한 위기의 시대를 버티어 왔던 증인들을 만날 것이며, 그분들의 증언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들의 신실한 삶으로부터 부족한 우리의 믿음을 크게 하여 주는 위로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의 믿음의 삶으로부터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소망과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우리가 되길 원한다.


7. 전환적 위기의 시대, 21세기에 우리를 기독 지식인으로 불러주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연구할 수 있게 하시며,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그 소망 안에서 통일한국이라는 비전을 주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올린다. 바라기는 우리가 그 분의 부르심에 충성으로 응답하는 신앙공동체, 신앙적 관점에서 자기 전공의 영역에서도 신앙인다움을 추구하는 삶이 더욱 굳건해지기를 소망한다.

  특히 한반도평화연구원(KPI)과 같이 세상의 전문성을 담보하면서도 기독교 정신을 함께 담고자 하는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 나라를 전공의 언어로 증거하는 학문공동체로서의 KPI가 되기를 소원한다. 배움과 학문의 신앙공동체를 굳건히 세워감으로 우리 이웃들과 다음 세대에게 희망이 되는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 소망의 이유에 대하여 묻는 이웃들에게는 겸손과 온유함의 태도로, 그러나 소통 가능한 명료함의 학문성으로 증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한다. 삶으로 그 소망을 살아내는 성화(santification)의 여정의 동반자들, 즉 신앙과 학문의 공동체로서의 한반도평화연구원을 꿈꾸는 2023년의 성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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