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말할 때 아차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분명 3까지만 말하고 싶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7까지 와르르 말해버리고는 집 가는 길 내내 후회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죠. 7을 내뱉어 버리고는 괜히 6인 것처럼 수습하려다가 오히려 난처해지거나, 차라리 잘 된 거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극강의 자기합리화를 되뇌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그렇지만 말이란 게 원래 주워 담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더욱 후회가 길게 남았습니다.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는지 다행히 요즘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 사람한테는 딱 이만큼만, 이 모임에서는 이 말은 빼고 다른 이야기를, 이번 미팅에서는 이 주제까지만. 이런 식의 구분이 명확해졌거든요. 감정적이지 않아진 건 아니지만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달까요.
내가 제일 힘들고 괴롭다고 느낄 때, 제가 경험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이럴 때가 제일 위험해요. 혼자 일기를 쓰면 썼지, 누군가에게 입을 떼면 걷잡을 수 없이 감정적으로 변하기 십상이거든요. 무엇보다 스스로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면 대화의 적신호입니다. 단순한 푸념 그 이상으로 상대의 발목을 잡을 수 있거든요. 가끔 이렇게까지 삼키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저는 모두가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현대 사회라면 어떨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덕목이지 않나 싶어요.
최근에는 치포틀레 파스타를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서퍼클럽 행사 준비를 하면서 치포틀레 페퍼를 처음 사봤는데요, 혀를 찌르는 날카로운 산미와 둥그렇게 감싸는 매콤한 향이 매력적이더라구요. 소스로 먹었을 때와는 다른 뾰족한 풍미가 있었습니다. 치포틀레를 오일, 마늘과 갈면 간단히 맛있는 오일 소스를 만들 수 있어서 급한 일정을 끝낸 어느 지친 저녁에 치포틀레 파스타를 차렸습니다.
요즘의 저는 일 하나 끝냈다 치면 다른 곳에서 일이 터지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머릿속은 다음 일을 가늠하고 있고, 밤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아 늦게 자버리니 당연히 다음 날 아침은 늦잠. 이런 상황입니다. 할 일이 태산인데 맘 같아선 일주일 정도 디지털 디톡스 하면서 침대에 누워만 있고 싶어요.
오일에 적당히 담백해진 치포틀레의 매콤한 향을 입안에서 녹이자니 미처 못다 한 징징거림이 맛으로 치환돼서 다시 목 뒤로 넘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삼켜버렸다기에는 여기서 이미 님에게 잔뜩 털어놓고 말았네요. 레터니까 이해해 달라는 뻔한 말을 남기며, 금방 한 그릇 싹싹 비운 치포틀레 파스타를 추천하면서 마무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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