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차장에게


먼저 많은 이슈와 어려움 속에서도 신규 브랜드를 론칭한 것에 대해 축하하네.

특히 마지막의 어려운 순간에도 자네의 정직하고 빠른 판단 덕분에 사장님께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끝까지 자네를 믿은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 그 과정에서 자네의 결정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나 자신이 오히려 민망했다네.


그런데 말이야.

어제 자네와 함께 일했던 김 과장이 나에게 안부 메일을 보냈더군. 아마 자네의 오른팔이었지. 아니, 왼팔이었나? 내용은 간단했네. 사표를 내고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어느 나라가 좋은지 묻는 메일이었지. 그 친구는 원래 좀 싱겁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왜 자네가 그 친구를 잡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네. 아니면 자네가 내보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방관한 것인가. 나는 여러 상상 장면 속에서 자네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네.


그 친구가 아직 대리였을 때, 내가 권고사직을 검토하자 자네는 그 친구의 장점을 말하며 나를 말렸지. 그렇지 않은가?


나는 궁금한 나머지, 마침 내게 안부 전화를 했던 인사과 최 이사에게 김 과장의 사직 이유를 물었네. 그랬더니 자네가 최 이사에게 했다는 말이 예전에 내가 자네에게 했던 말과 너무 비슷하더군.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네. 그런데 이번에는 자네가 조금 변한 것 같더군.


자네는 4년 전 김 과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네.

“적극적입니다. 주도적입니다. 일관성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네는 같은 사람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더군.

“고집이 셉니다. 융통성이 없습니다. 독단적입니다. 임기응변에 강합니다.”


박 차장,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김 과장이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네. 다만 자네가 그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네. 예전에 장점으로 보였던 바로 그것이 이제는 단점으로 보일 뿐이지.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그를 비추는 빛의 각도가 달라진 것일세.


브랜드 론칭이라는 위기는 사람을 바꿔 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을 과장해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장점도 커지고, 단점도 커진다. 평소에는 개성이라고 불리던 것이 위기 속에서는 결함으로 보이고, 평소에는 추진력이라고 불리던 것이 위기 속에서는 위험으로 보인다.


지난번 편지에서 나는 자네에게 시장의 징후를 듣지 못한 이유를 물었네. 이번에는 사람의 징후를 묻고 싶네. 김 과장은 정말 갑자기 떠난 것인가. 아니면 자네가 이미 오래전부터 놓치고 있던 사람인가.


박 차장.

쓰나미처럼 프로젝트의 위기가 한 번 닥치고 빠져나가면 이상하게도 많은 것이 쓰레기처럼 보인다네. 처음 만들었던 보고서, 시장조사 자료, 회의록, 전략안, 캠페인 시안까지 모두 더 이상 쓸모없는 폐기물처럼 여겨진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일세. 함께 버텼던 시간, 밤새 나누었던 대화, 서로를 믿었던 순간까지도 어느 순간 불편한 기억이 되어 버린다네.


아마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자네도 사람의 본성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불안, 회피, 과시, 인정 욕구, 보호 본능, 공격성이 한꺼번에 드러났을 것이네. 신규 브랜드를 론칭한다는 것은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직 안에 숨어 있던 사람의 본능을 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자네도 기억할 걸세. 내가 자네를 처음 신규 브랜드팀에 영입하면서 물었던 질문 말이야.

“자네, 잠을 안 자고 얼마나 견딜 수 있나?”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한 질문이었네. 그러나 그때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단지 체력이 아니었네. 비정상적인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흔들리는 숫자 앞에서도 판단을 놓치지 않을 사람인지, 시장의 반응이 매일 달라지는 상황에서도 자기중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를 묻고 싶었던 것이네.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는 과정에는 정상적인 것이 거의 없다. 시장 판단도 매일 달라지고, 전략의 집중도도 작은 숫자 하나에 흔들리며, 내부의 신뢰도 한 번의 회의로 무너지곤 한다. 결국 브랜드 론칭의 핵심은 론칭 당일까지 무엇을 준비했느냐보다, 론칭 이후에 무엇을 견디고 어떻게 다시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일단 시장에 나가 보면 브랜드가 어떻게 작동할지는 누구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판단도 정상적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 그 본능들이 제각각 튀어나오지. 특히 평소에도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신규 브랜드라는 압력 속에서 더 거칠게 반응하곤 한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신규 브랜드 증후군이라고 생각하네. 매출이 올라가거나 론칭이 안정되면 어느 정도 사라지는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네. 물론 모든 것을 그 말로 덮을 수는 없지. 그러나 신규의 고통은 어느 정도는 함께 견뎌야 하는 것이네.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김 과장은 신규 브랜드팀에 아주 잘 맞는 사람은 아니었네. 이 점에 대해서는 자네의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네. 내가 최 이사에게도 자네와 비슷한 말을 한 이유가 거기에 있네. 그 친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반복해서 말하지만, 내가 더 오래 보고 있는 것은 김 과장의 변화가 아니라 자네의 변화일세.


박 차장, 사람을 정리하는 일이 자네에게 습관이 되지 않았으면 하네.

내 기억으로는 자네가 함께 일한 사람을 직접 정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일세. 처음 사람을 정리하는 일은 어렵다. 밤잠도 설치고, 자기 판단이 맞았는지 계속 되묻게 된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조금 쉬워지고, 세 번째부터는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그때부터 사람은 함께 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성과를 방해하면 교체할 수 있는 자원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자네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네.

신규 브랜드 론칭이 끝나고 과연 무엇이 남을까. 물론 브랜드가 남아야지. 매출도 남아야 하고, 시장의 반응도 남아야 한다. 그러나 자네 옆에는 사람도 남아야 한다네.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 브랜드 때문에 밤을 새운 사람들, 브랜드가 실패할까 두려워하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남아야 하네.


브랜드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특히 신규 브랜드는 한 사람의 천재성보다 여러 사람의 버팀으로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론칭이 끝난 뒤 브랜드만 남고 사람이 떠난다면, 그것은 성공처럼 보이는 또 다른 실패일 수도 있다.


내가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 과장을 반드시 붙잡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네. 그 친구에 대한 자네의 판단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네. 나로서도 김 과장에 관한 자네의 판단은 늦었지만 어느 정도 바른 판단이었다고 생각하네.


다만 내가 조언하고 싶은 요지는 하나일세.

김 과장에게 했던 판단이 다른 팀원들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았으면 하네. 위기 속에서 드러난 모습만으로 사람 전체를 규정하지 말게. 어떤 사람은 위기 속에서 무너졌지만 다시 세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거칠게 반응했지만 결국 브랜드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을 수도 있다.


정리해야 할 사람과 끝까지 견뎌야 할 사람을 가르는 선은, 위기에 어떻게 반응했느냐가 아니라 위기가 지난 뒤에도 브랜드 곁에 남으려 했느냐에 있다. 거칠게 반응한 사람이라도 끝내 자리를 지켰다면 함께 가야 할 사람이고, 조용했던 사람이라도 마음이 이미 떠났다면 붙잡아도 남지 않는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 뿌리를 보아야 한다. 단점만 자르면 장점도 함께 잘린다. 고집을 자르려다 일관성까지 자르는 일이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박 차장, 자네 혼자서는 일을 못하지 않는가.

이 말은 자네의 능력을 낮게 보는 말이 아닐세. 오히려 이제 자네가 더 큰 일을 맡게 되었다는 뜻이네. 브랜드를 맡는 사람은 브랜드만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의 기억, 감정, 상처, 자부심까지 함께 다루어야 하는 사람이다.


항상 이런 잔소리 때문에 어쩌면 나의 메일이 수신 거부나 스팸으로 처리되지는 않을까 걱정되네. 그래도 어쩔 수 없네. 자네가 나를 멘토라고 불렀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


어쨌든 신규 브랜드 론칭을 다시 한번 축하하네. 빠른 시간 안에 정상 매출로 올라오기를 바라네. 그러나 매출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만큼이나 자네의 팀도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네. 브랜드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사람도 다시 자리를 찾기를 바라네.


이번에는 시장의 징후를 들었네. 다음에는 사람의 징후도 듣게.

그럼 수고하게.


P.S. 나도 자네를 정리하려고 사장님께 두 번 제안했다네. 알고 있지? 그때 자네는 내 기준으로는 부족했고, 불안했고, 때로는 위험했네. 그런데 누군가는 자네를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했고, 결국 자네는 여기까지 왔네. 그러니 박 차장, 사람을 판단할 때는 언제나 조금 늦게, 그러나 끝내 정직하게 하게.

독자의 고민 편지 

신규 브랜드 론칭을 맡고 있는 본부장입니다. 최근 몇 달 동안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면서 팀원들과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 오른팔처럼 일하던 최 팀장이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이며 아이디어도 많아 믿고 함께 일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어려워질수록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으며,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는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팀 분위기도 흔들렸고, 저 역시 그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얼마 전 브랜드 론칭은 무사히 끝났지만, 최 팀장이 사표를 냈습니다. 저는 그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홀가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제가 너무 쉽게 사람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불편합니다.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는 과정에서는 이런 갈등이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조직을 위해 이런 사람은 정리하는 것이 맞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리더로서 어떤 판단을 했어야 했을까요?

브랜드의 교향곡 : 시장은 관계의 화음이다


소리와 음악은 다르다.

음표와 음표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엮은 것이 음악이고, 그 관계가 깨어지면 소음이 된다. 브랜드도 그렇다. 같은 산업군에서 비슷한 컨셉과 가격대를 가진 브랜드들은 서로 경쟁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은 음표와 음표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경쟁과 공생을 동시에 연주하며 거대한 시장을 만들고, 라이프스타일을 넓히고,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소비하게 한다. 그러니 시장은 화음이다. 그리고 화음을 듣지 못한 채 제 음표만 키우려는 브랜드는 끝내 소음이 된다.


음악가의 귀로 백화점을 걸으면 브랜드마다 제 나름의 박자와 음률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미술가의 눈으로 보면 그곳은 컬러의 축제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시선은 마케터의 시선만으로 시장을 보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의 눈으로만 브랜드를 규정하는 순간, 사람은 그저 ‘소비자’로 전락한다.


마케터의 머릿속에는 세 개의 질문이 있다.

-어떻게 팔까. 

-얼마나 팔까. 

-어디서 팔까.


그러나 같은 시각, 소비자의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세 개의 질문이 흐른다.

-무엇으로 나를 표현할까. 

-내 안에 아직 채우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그리고 이 소비자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고, 우리 옆자리의 동료다.

옆 사람이 가격에만 민감한 소비자로 보이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 브랜드의 ‘소비자’라고만 여기는가, 아니면 그 브랜드의 ‘수호자’라고 여기는가. 누구도 자신을 소비만 담당하는 존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굳이 이 말을 살리고 싶다면, 우리는 소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하는 소비자다.


시장의 전사로 잘 훈련된 마케터들은 기계적으로 듣는다. 습관에 따라, 자기 입장에서만, 지나간 결과만 보고 소비자의 불만과 경쟁자의 약점을 듣는다. 모든 전략이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브랜드에는 ‘1등 전략’은 있어도 ‘행복 전략’은 없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목적을 ‘만족한 고객의 창출’이라고 했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 고객을 만족시킬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판매인가, 헌신인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만족시키는 일에는 언제나 자기중심성을 내려놓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섬김이라 부른다. 드러커의 질문을 조금 더 들어 보자. 그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이 질문에 답하라고 했다.


-우리의 브랜드는 무엇인가.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에게 가치란 무엇인가. 

-우리의 브랜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브랜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전략적이라기보다 철학적이다. 자신의 철학이 없으면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소비자, 곧 당신의 이웃은 당신의 매출 목표가 1조인지, 시장 1등인지, 종업원이 2만 명인지에 관심이 없다. 그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것을 왜 만들었는가.


사람은 필요 때문에만 브랜드를 사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 때문에 브랜드를 산다. 공장은 당신의 상품을 만들지만, 그것을 브랜드로 만들어 주는 것은 소비자다. 지금은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쓰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브랜드를 다룬 책들이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한 사람의 소비자라는 하나의 음표에서 출발해, 시장과 브랜드라는 교향곡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쓰며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은 또 무엇일까. 소비자는 결코 이것을 브랜더에게 친절하게 일러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브랜더는 소비자의 말이 아니라, 소비의 형태와 방식에 담긴 심중을 읽어야 한다.


특히 늘 쓰던 브랜드를 버리고 다른 브랜드로 옮겨 갔다면, 그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것은 브랜드 몰락의 전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더는 소비자가 자기 브랜드를 쓰며 누리는 행복은 물론, 생산자조차 미처 몰랐던 감춰진 기쁨까지 알아내야 한다.


이것을 설문조사로 알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소비자는 자신의 마음을 늘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도 아직 모른다. 그래서 브랜드를 맡은 사람은 소비자의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가 살아가는 방식, 버리는 방식, 고르는 방식, 망설이는 방식, 반복해서 돌아오는 방식까지 들어야 한다.


처음 만난 사람을 알기 위해 우리가 쓰는 가장 오래되고 정통한 방법은 따로 있다. 바로 직관이다. 처음 만난 브랜드의 소리를 들을 때도 우리는 같은 능력을 쓴다.


브랜드를 듣는다는 것은 하나의 음표를 크게 듣는 일이 아니다. 들리지 않는 관계의 화음을 듣는 일이다. 숫자는 음량을 알려 줄 수 있지만, 화음이 맞는지는 알려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브랜더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귀다.


시장은 오늘도 연주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소리를 듣고 있는가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듣는 힘’을 넘어, 보이지 않는 관계를 읽어 내는 능력, 곧 브랜드 직관 지능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타스의 브랜드 편지는 시즌 1 [유니타스브랜드], 시즌 2 [엔텔러키 브랜드], [아내가 창업을 한다], [브랜드의 탄생], [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운다]를 비롯해 지금까지 발행한 브랜드 관련 서적과 자료,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브랜드를 쉽게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구독자님의 브랜드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나 더 깊이 알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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