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2일  (호외)
하산할 때 사고가 많은 이유는?

[무료 쇼케이스] AI 기반의 시나리오 플래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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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하산할 때 사고가 훨씬 더 많이 발생한다"

많은 이들이 이를 상식처럼 받아들입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는 말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 위험의 원인을 '승리에 도취되어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제법 많습니다. 

제가 읽었던 어느 경영서가 대표적인데요, 그 책은 1950년부터 2006년까지 히말라야 등정 성공자 중 255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48%인 123명이 '정상을 밟은 직후'에 추락사했다는 통계를 제시하더군요. 저자는 이를 두고 "승리감이 절정에 이르는 정상은 자만의 농도 또한 극치이며, 승리에 대한 도취가 독배가 되어 운명을 전복시킨다"고 단언했습니다.

매우 그럴듯하고 도덕적인 훈계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것은 산악인들에 대한 모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르기 위해 사투를 벌여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하산길의 사고는 '정신이 썩어 빠져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등정에 모두 쏟아부어 체력이 바닥났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요.


이런 식의 논리 비약은 야구 경기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납니다. 9회 말에 역전패가 많은 이유를 "승리를 확신하고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곤 하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9회는 경기의 마지막 라운드입니다. 뒤지고 있는 팀은 모든 전력을 쏟아부을 마지막 기회이고, 앞서가는 팀은 투수의 구위가 가장 떨어질 시점입니다. 즉, 구조적이고 물리적인 필연성이 작용하는 구간이지, 단순히 '방심'이라는 심리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할 때, 구조적·물리적 원인을 찾기보다 개인의 '태도'를 비난하는 쪽을 택하곤 합니다. 그래야 비판하는 사람이 도덕적 우위에 서기 쉽고, 메시지도 강렬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가짜 통찰'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원하던 시험에 합격하거나 큰 프로젝트를 마친 뒤 찾아오는 무기력증을 두고 사람들은 "배가 불렀다"고 손가락질 하곤 하는데요, 하지만 무기력증은 몸과 뇌가 과부하를 회복하기 위해 강제로 셧다운을 명령하는 '생물학적 보호 기제'입니다. "정신 상태가 나태해졌다"고 자책하면 회복은 더뎌지고 진짜 실패로 이어질 뿐입니다.

심리학자 고든 페니쿡(Gordon Pennycook) 등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구체적인 근거 없이 그럴듯한 단어들을 조합해 만든 ‘가짜 통찰(Pseudo-profound bullshit)’에 쉽게 감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자만이 독배가 된다"는 식의 화려한 수사는 듣기에는 좋지만, 실제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불쉿(Bullshit)'에 불과합니다. 가짜 통찰에 속지 마세요.

One More Thing!
벌써 2026년이 시작된 지 열하루가 지났는데요, 여러분 중에서도 새해 목표가 흔들려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내 의지가 이것밖에 안 되나?", "나는 역시 끈기가 부족해"라며 자책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여러분의 새해 결심이 흔들리는 것은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지력이란 에너지를 몰아섰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무한 샘물이 아니라 배터리처럼 한정된 자원입니다. 낮 동안 직장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고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면, 퇴근 후 운동을 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 물리적으로 당연하죠.

히말라야 등반가가 정상에 오르느라 하산할 에너지를 남겨두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일상 유지에 에너지를 쓰면서 동시에 '새해 목표'라는 추가된 고지에 오르려다 좌절하는 것입니다. '난 의지가 약해'라고 자책할 일이 아니라, 전략을 수정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여기기 바랍니다. (끝)


*참고논문
Pennycook, G., Cheyne, J. A., Barr, N., Koehler, D. J., & Fugelsang, J. A. (2015). On the reception and detection of pseudo-profound bullshit.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10(6), 549–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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