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를 정식 지질시대로 공식화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인간이 지구 환경을 크게 바꾸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논쟁이 아닙니다. 인류세는 지질학적 분류의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만든 복합적 환경 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것인가를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세의 공식화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주된 논지는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환경 변형은 1950년대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자연환경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영향은 하나의 시작점으로 환원하기보다 장기간 누적된 과정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영향은 지역마다 시차와 양상이 크게 다릅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농경과 삼림 훼손의 흔적이 오래 전부터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산업적 영향이 급증했습니다. 이런 다양한 변화를 전 지구적으로 동시적인 층서 경계로 삼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셋째, 불과 70여 년 된 현재 진행형의 구간을, 대개 수만 년에서 수백만 년의 시간 규모를 지닌 ‘세(epoch)’로 확정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주장입니다. 지금의 변화가 미래에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나온 절충안이 바로 ‘인류세 사건(Anthropocene Event)’입니다. 이 입장은 인류세를 홀로세를 끝내는 공식 시간 단위로 보지 않고, 대산소화 사건이나 캄브리아기 폭발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전개되는 지구시스템의 한 변형 사건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 영향의 심각성과 지질학적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시작을 1952년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점에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공식화를 지지하는 층서학자들은 1950년대의 변화가 그 이전의 인간 영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특히 대기권 핵실험으로 생긴 플루토늄 등의 방사성 핵종은 매우 짧은 기간에 전 지구로 퍼졌고, 호수 퇴적물·빙하·해양퇴적물 등 다양한 기록에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비산재, 합성물질과 미세 플라스틱, 질소·탄소 순환의 변화, 온실가스 증가, 생물권 변화가 겹칩니다 (대가속시대). 이들은 20세기 중반 이후 지구 시스템이 홀로세의 상대적 안정 상태에서 벗어났음을 보여 주는 복합적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1952년의 경계는 인간 영향이 처음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을 압도하기 시작한 시점을 표시하는 층서학적 기준이라는 겁니다.
인류세라는 말의 사회적 효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이 용어는 전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기후변화’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생물다양성 감소, 생태계 교란, 대기·수질·토양 오염, 플라스틱과 유독물질의 축적, 해양 산성화, 토지 황폐화, 식량·물 위기, 기후난민과 재난 불평등까지, 인간 활동이 낳은 다양한 환경문제를 서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구시스템 위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오염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을 하나의 시대적 조건 속에서 연결한다는 점에서 인류세는 분명 강력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인류세라는 용어가 과학자들에 의해 처음 제시된 이후 실제 이들이 바라는 만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또다른 문제인 듯합니다. 인류세는 모든 인류가 공통의 위기에 직면했으며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오늘날 세계는 오히려 자국우선주의, 인공지능과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쟁, 관세 전쟁, 민족·종교 분쟁과 지정학적 대립으로 더 심하게 분열되어 있습니다. 공동의 위기를 인식한다고 해서 공동 행동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세가 지닌 거대한 통합의 언어와 실제 국제정치의 분열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주지하다시피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일으킨 책임이 모든 인간에게 균등하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자원과 토지를 대규모로 이용해 온 선진국들의 책임이 훨씬 큽니다. 반면 글로벌 사우스의 다수 국가는 위기 발생에 대한 기여가 상대적으로 적었음에도 가뭄·홍수·해수면 상승·식량위기와 강제 이주의 피해를 더 크게 받고 있습니다. 인류세가 ‘모두의 공동책임’을 강조할수록 자칫 차등적 책임과 불평등한 피해를 흐리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세의 효용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기후정의가 먼저 (일부라도)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기후위기 해결 노력에 적극 동참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들에게 단순히 ‘인류 공동의 위기’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책임이 큰 국가들이 감축과 재정·기술 지원에 적극 나서면서 어려운 국가의 적응을 도와야 공동 대응의 조건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인류세 공식화를 지지하는 자연과학자들에게 과제가 남습니다. 방사성핵종 경계와 대가속의 지질학적 증거를 강화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회와 더 넓은 학계의 지지를 얻으려면, 인류세라는 용어가 지닌 약점, 곧 현재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모든 지구인에게 동일하게 귀속시키는 듯한 인상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에 대해서도 창의적인 해답이 필요합니다. 인류세를 단순히 ‘인간의 시대’라고 부르기보다, 불균등하게 만들어진 위기와 불균등하게 분배된 피해의 시대라는 사실까지 함께 드러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인류세의 정식 지질시대 채택 여부는 (홀로세 구분 때도 그랬지만)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정치적인 고려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치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면, 결국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용어인지 여부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정의와 관련된 용어들 플랜테이션세, 자본세 등의 허들을 또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길 겁니다.
개인적으로 인류세가 정식 지질시대의 지위를 얻어야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의 조건을 바꿀 정도의 무서운 힘을 갖게 되었고, 기후·생태·오염·이주·불평등의 문제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인식하게 합니다. 인류세가 공식 지질시대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바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공통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사회적·학문적 가치는 충분히 크며 이미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지질시대 분류 기준 충족 여부나 기후위기의 책임 경중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 환경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감안하면 학술적 논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의미는 반감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실질적으로 기후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들을 빨리 만들어서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우선 시급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공식화 여부나 기후 정의 문제와 별도로) 전 세계인이 동참하지 않으면 위기 극복은 어렵다는 ‘인류세의 함의’는 앞으로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