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에 쿼터제를 도입해서는 안되는이유
안녕하세요. 씨로켓 편집부입니다. 넷플릭스 독주와 디즈니플러스 상륙 예고 등으로 OTT에 대한 관심이 계속 높은데요. 종전 국내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스크린 쿼터제'를 했던 것처럼 'OTT 콘텐츠 쿼터제'라는 규제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EU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보니 더더욱 그런 논의가 힘을 얻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쿼터제는 결과적으로 국내 콘텐츠 산업을 보호하기 보다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게 제레미님의 지적입니다. 관련해서, 쿼터제의 주요한 내용과 현황 설명 및 국내 현실에 비춰볼때 쿼터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제레미님의 주장을 한번 읽어보시죠. 일상적으로 즐기는 OTT 서비스 이면의 중요한 정책적 쟁점에 대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글로벌 OTT의 공세에 맞선 정부의 진흥 또는 규제 이슈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OTT 콘텐츠 쿼터제’이다. 콘텐츠 쿼터제는 가깝게는 우리나라의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도입했던 ‘스크린쿼터제’를 연상시킨다. 

타국의 사례로는 2018년 유럽연합(EU)의 쿼터제 도입이 인용되고 있다. 해외 OTT들이 최소 30% 이상 유럽 저작물을 의무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포함한 EU시청각 서비스 지침서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유럽연합이 문화 잠식에 대한 우려를 방어하고 자국의 미디어 플랫폼들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보호 정책을 펼친 사례이다. 2018년 11월 브뤼셀에서 승인된 EU 시쳥각 미디어 서비스 지침으로 넷플릭스, 아마존, 디즈니 플러스 등 SVOD 거인들은 2021년부터 유럽 구독자들에게 30%의 유럽 콘텐츠 할당량을 제공해야 한다. (아래 표를 보면 영국을 제외하면 EU 국가의 넷플릭스 콘텐츠 비율은 20% 초반 수준이다)

또한 EU의 국가들은 OTT 사업자가 운영하는 각 유럽 영토 내에서 수익의 일정 비율을 해당 국가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국가별 맞춤 법률을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해외 OTT들의 구독자 수익 중 20%~25%를 유럽 콘텐츠에 투자하고 이중 85%를 프랑스어 콘텐츠에 투자할 것을 법률화 한다고 전해졌다.

국내의 일부의 언론학자들과 규제기관들의 논의 과정에서 유럽연합이 택한 30% 쿼터제를 토종 OTT의 보호 정책으로 선택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의견이 피력되고 있다. 글로벌 OTT들이 한국에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국내 콘텐츠를 30% 이내로 편성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 규정이다. 다만 30%의 편성 기준의 분모가 무엇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OTT들이 서비스하는 전체 카탈로그 총량의 30% 인지, 고객의 이용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분량인지 등의 논쟁 요소는 많다. 

OTT 콘텐츠 쿼터제의 명분은 자국의 콘텐츠 산업 보호이다. 콘텐츠 산업은 크게 제작 영역과 이를 유통(delivery) 하는 플랫폼 영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쿼터제의 기본 전제는 해외 OTT들이 타국의 문화 콘텐츠를 다량으로 제공하여 가입자가 늘고 이로 인해 국내 콘텐츠의 소비가 감소하기 때문에 국내의 문화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 콘텐츠의 편성 또는 큐레이션 비율을 적정 수준으로 제한함으로써 문화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일까? 5가지 이유로 이는 실효성이 부족한 정책이다.
이유 #1 :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때문에 한국에서 성공하고 있다
산업적으로 보면 넷플릭스로 인해 콘텐츠 제작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충분한 자금을 수혈하며 기존 외주제작사와 방송사간에만 존재했던 제작 시장의 외형을 넓혔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성과와 무관하게 제작비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콘텐츠 권리 전체를 사들이는 방식의 계약인데, 제작자들은 넷플릭스에 콘텐츠 권리를 넘기는 대신 광고주의 개입 등 추가적 고민 없이 제작에만 몰입할 수 있다. 기존에는 통상 제작비의 70% 정도에 해당하는 방영권료만 보장 받다 보니, 나머지 수익은 제작사가 직접 PPL 등 추가 광고주 영입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유건식 소장이 전파진흥원의 전문가 리포트(2020년 12월 발행)를 통해 넷플릭스와 현장에서 업무를 했던 제작자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을 보자.

출처 : 넷플릭스 국내 TV 콘텐츠 제공현황’(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20.2 : 데이터재구성
리포트에서는 넷플릭스가 적은 콘텐츠(11.8% 수준)만 가지고도 월 방문자 1천만 명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있다. 넷플릭스 (국내) 오리지널 드라마와 영화는 1년에 6~10편 이내로 제작될 뿐이고 대부분의 콘텐츠는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국에서 방영된 드라마의 익일 또는 종영 이후 재방영되는 콘텐츠들로 채워지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 드라마를 소비하는 MZ세대들에게 해당 드라마의 저작권자는 방송국이 아닌 넷플릭스로 인지될 정도로 플랫폼의 견인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제공되는 국내 방송 드라마는 토종 OTT인 웨이브와 티빙에 나누어 제공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도 중복 상영되고 있는 탓에 토종 OTT의 구독자의 성장이 억제되고 있는 것이다. 11~15% 수준의 넷플릭스 국내 콘텐츠 편성량을 30%로 늘리면 토종 OTT는 고객들에게 더욱 선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특히 방송국들의 1차 방영 직후 넷플릭스로 향하는 드라마들의 경쟁력은 창고에 갇혀있던 구작 콘텐츠들과 비교하면 몇 배로 가치가 높다. 
이유 #2 : 넷플릭스가 만든 국내 콘텐츠는 지역적으로 타겟팅 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유럽의 콘텐츠 쿼터제를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넷플릭스에 ‘로컬(local)’ 이란 물리적 지역 단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넷플릭스의 로컬은 190개국의 고객들의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 분류에 적합한 세그먼트 된 콘텐츠 단위를 상징한다. 

실제로 유럽의 콘텐츠 쿼터제 발표 이후 오리지널로 구매한 스페인의 드라마 ‘종이의 집’은 미국 내 히스패닉 구독자를 모으고 유지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그리고 ‘종이의 집’은 전세게적으로 오리지널 열풍을 일으켰다. 이전 데이터 이기는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오리지널 제작량이 지속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데이터로도 오리지널의 제작량과 구독자의 증가는 지역적으로 비례하여 나타난다.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로컬의 국내 콘텐츠들은 결국 해당 국가를 넘어 문화와 언어 또는 동일한 취향을 보유한 구독자 집단을 향해 서비스된다. 그러므로 콘텐츠에 출연하는 배우가 한국인 일지라도 스토리와 주제, 표현의 수위 그리고 주제는 글로벌한 문법을 따른다. 넷플릭스가 오히려 ‘쿼터제’를 환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30% 쿼터제로 인해 더 많은 한국형 스토리가 발굴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면 제작 산업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콘텐츠에 국적이 무의미한 시대가 되었다. 한국형 좀비 ‘킹덤’이 아시아나 남미에 방영되면 그 나라의 구독자는 ‘킹덤’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인식한다. 콘텐츠 시청 뒤에 남겨진 좋은 평판을 활용하여 한류의 산업적 연계나 확산이 제한적이다. 콘텐츠의 소유주가 넷플릭스 이기 때문이다. 

국내 콘텐츠의 오리지널 제작이 증가한다는 것은 한국형 스토리의 글로벌한 확대에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뒤에 만들어질 후방 생태계 조성 주도권이 한국 제작사에 없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비’ 수익에 머물 수밖에 없다. 결국 쿼터제는 콘텐츠 제작 산업의 종속도를 높이게 되는 ‘양날’의 검이다.
이유 #3 : 콘텐츠 카달로그를 줄여 구독자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30% 쿼터제를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가 주어진다면 사업자는 나머지 콘텐츠의 수를 조정하여 쿼터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다. 국내 콘텐츠의 쿼터를 채우기 위해 미국 드라마의 수를 줄이는 방식이다. 이는 현실적이지 못한 방법일 뿐더러 이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돌아간다. 

과거의 스크린 쿼터제는 한국의 영화산업의 경쟁력이 타국에 비해 낮아서 보호를 하지 않으면 한국형 콘텐츠를 스스로 생산해낼 자생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콘텐츠 제작 역량과 국내의 스토리와 IP 파워는 글로벌한 수준에 도달했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눈높이도 동시에 상승했다. 아울러 동시에 글로벌 OTT로 인해 문화적 취향은 국가와 언어를 초월하여 다양해졌다. 최근에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화이트 타이거’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인 계급 사회를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 인도의 역사를 공부해가면서 까지 드라마를 즐기려는 시도는 문화권을 넘나드는(크로스 오버 방식의) 문화 소비의 단면이다.

콘텐츠의 편성 질서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는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객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이유 #4 : 토종 OTT들의 플랫폼 경쟁에는 ‘독’이다
필자는 일관되게 글로벌 OTT와 경쟁하려면 콘텐츠의 배타적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미국의 컴캐스트는 NBC Universal이 자사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HBO MAX에서 철수시키고 산하 스튜디오의 신작 영화를 피콕(Peacock)에서 독점 스트리밍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타전되었다. 미국의 OTT 시장은 자신이 생산한 콘텐츠를 자사의 OTT에서만 묶어두는 전략이 치열하게 전개 중이다.

현재의 한국 내에서 벌어지는 OTT경쟁은 동일한 한국 콘텐츠를 공통분모로 두고 싸우는 형국이다. 만일 해외 OTT들이 30% 까지 법적으로 국내 콘텐츠를 더 늘려야 한다면 공통분모의 크기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유럽연합의 30% 쿼터는 EU 단일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즉 국가별 쿼터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 시장을 하나로 놓고 30%의 쿼터를 따진다면 토종 OTT와 겹치는 콘텐츠의 양은 큰 수준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해외 OTT는 종합 아웃렛인데 토종 OTT는 전문 백화점가 되어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유 #5 : 콘텐츠 산업의 활력을 해외 OTT에 맡겨둘 수 없다
유럽연합이 쿼터제를 도입하려는 의도 중 하나는 해외 OTT를 통해 후퇴하고 있는 콘텐츠 산업을 일으켜 세우려는 시도이다. 유럽 전역의 방송사들은 지난 10년 동안 시청자 수가 감소하고 매해 정규직 직원이 5% 씩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방송사들의 광고 수익도 지속 감소하고 있다. 방송 플랫폼들이 더 이상 콘텐츠 산업의 인력 창출을 일으킬 수 없는 상태에서 해외 OTT들이 유럽 배우, 작가, 카메라맨, 촬영 장소들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시켜줄 것에 기대를 하고 있다. 결국 경제적 이유로 쿼터제가 추진되는 면도 강하다.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의 방송 산업도 해가 갈수록 위축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전 세계적인 OTT 영향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방송 산업의 플레이어들 스스로 토종 OTT를 육성하고,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를 수직 계열화하는 등의 주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토종 OTT들이 분산되어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플랫폼이 제작 산업을 리드하는 노력은 아직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만 2021년 5천5백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구독자 총매출을 능가하는 이 투자는 로컬(한국)을 지렛대로 글로벌 구독자 가운데  K-콘텐츠 취향 고객들을 장악하려는 의도이다. 지난 기고에서 정리해보았지만 토종 OTT들이 2023년까지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총액을 연간으로 나누면 총 6천억원 규모이다. 지금은 해외 OTT들을 쿼터제로 투자량을 늘리는 것보다 해외와 토종 OTT 간의 콘텐츠 총 투자가 제작 산업의 자율적 생태계 장악 역량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이냐에 대한 고민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쿼터제 보다 다른 영역의 규제를 살펴야 한다
결국 콘텐츠 쿼터제는 한국의 미디어 시장에서는 실효성이 낮은 정책이다. 특히 한미 FTA 체결로 미국의 OTT사업자의 규제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한미간 협상이 있어야 한다. 만일 이렇게 협상이 시작된다면 현재 지상파, 위성방송, 케이블 인허가 또는 투자영역에서 해외 자본의 진입 규제를 두고 있는 방송 서비스 부문의 개방 요청이 동시에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경쟁의 질서는 시장에 맡겨둘 필요가 있다. 글로벌 OTT의 약진으로 콘텐츠 제작 산업은 선진화와 종속화를 모두 노출하고 있다. 반면 미디어 플랫폼 산업은 조금씩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쇠퇴해 가고 있다. 그 중심에 콘텐츠가 있다. 그런데 OTT들이 생산해내는 오리지널 콘텐츠와 기존의 미디어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콘텐츠 사이의 질적 차이와 표현의 수위들은 그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고객들의 관심과 눈길은 스토리의 깊이와 자극적 수위, 낯선 문화의 호기심 때문에 해외 OTT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OTT와 방송 플랫폼 간에 상이한 콘텐츠 심의 규제는 이 간극을 더 키우고 있다. 규제 당국은 오히려 이러한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어떨까?
필자: 제레미 (제레미의 미디어 비껴보기 블로그 링크)

파워블로거로서 '제레미의 TV 2.0 이야기'를 연재했던 논객이자 미디어 현장에서 티빙과 옥수수 등 국내 토종 OTT를 두루 경험한 미디어 전문가. '제레미'의 현장 시선으로 플랫폼과 콘텐츠 등 미디어 업계의 다양한 이슈를 새롭게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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