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저는 두 개의 다이어리를 씁니다. 집에서 쓰는 예쁜 다이어리에는 감정과 생각을 휘갈겨요. 그 내용이 어찌나 구구절절한지, 제가 갑자기 감옥에라도 잡혀가게 되면 그 다이어리부터 불태워달라고 할 거예요. 반면 회사에서는 사은품으로 받은 다이어리에 원고 마감일, 편집 일정, 회의 일정 등을 메모합니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가 호기심에 열어보아도 아무런 타격이 없을 정도로 딱딱한 내용뿐이죠. 그런데 딱 하루, 한 페이지 빼곡하게 사색을 늘어놓은 날이 있어요. ‘결정적 한순간’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진 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이었어요. 만약 누군가 연애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갖게 됐다면, 그에게 ‘결정적 한순간’은 언제일까? 모든 것의 시발점인 첫 만남? 대판 싸운 다음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던 점을 다름으로 받아들인 순간? 서로가 그리는 미래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별한 순간? 지난 연애를 반추하다 어떤 깨달음을 얻은 순간? 모든 순간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 적당해서... 결정적 한순간이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에요.
소설이라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통해 ‘결정적 한순간’, 그러니까 선택과 변화의 순간들을 되짚어보는 일은 그래서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소설 바깥의 순간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가 선명해지지만, 그 안에서는 좀 더 빨리 알 수 있잖아요. 어떤 만남이 인간을 성장케 하는지, 어떤 경험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지, 어떤 선택이 어떤 길을 걷게 하는지를요.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순간조차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4의 테마는 ‘결정적 한순간’입니다. ‘다른 존재가 되어야만 나아갈 수 있는 삶의 결정적 한순간’이라는 근사한 카피를 달고 있는 이번 시즌에서는, 인생의 갈림길이나 선택의 순간에 놓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다섯 편의 소설을 소개합니다. 각각의 작품 모두 읽는 재미는 물론, 살아가는 데 큰 힌트가 되어줄 거예요. 그럼 우리 매주 금요일에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