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2025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뉴스레터를 받아 보시는 날은 어느덧 3월이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늦게나마 새해 인사를 드려보려 해요.

  신정과 구정, 입춘을 거쳐 이제는 '아직이야..!'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올해에 안착해 버렸는데요. 올해 목표를 세우셨거나, 세우려고 하신 분들이라면 조금 초조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언젠가부터 신년 목표를 세우지 않게 되어서 아무 걱정 없이 매일을 즐기고 있는데요(하하). 사실 이건 제 정신건강을 위해서 하게 된 선택이었어요.

  새해의 목표를 세우고, 월별로 목표를 세우는 것이 마음 편한 저(J)이지만 워낙 게으른 탓에 목표를 성실히 달성한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 몇 년을 반복하다 보니 연말에 제게 남는 건 자책감과 낮아진 자신감 뿐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그냥 신년 목표를 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예 안 세우지는 못하고 (지독한 J의 피), '아프지 않기', '기회가 왔을 때 겁 좀 그만 먹기'와 같은 큼직한 목표를 세우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결국 연말이 되면 다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래도 잊어버린다는 건 한해를 무탈하게 보냈다는 이야기니까 그것 나름대로 좋았던 한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요새의 저는 삼만 번째 좌우명인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 이 말을 참 좋아해요. 나에게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나중에 뒤를 돌아봤을 때 작고 귀여운 무언가라도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믿거든요. 설령 돌아봤을 때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더라도(사실 그럴 리 없죠), 매일을 나에게 충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신년 목표를 세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해보았는데요. 혹시 신년 목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쯤 마음의 짐을 덜어 놓으셨길 바라며, 또 신년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나가고 계신 분들에게는 응원의 말을 보내며, 뉴스레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

📮

1월의 첫 도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1959년 발표된 사강의 대표작입니다. 오래된 연인과의 고루한 관계 속에 머물러 있는 주인공 폴과 그의 오래된 연인 로제, 그리고 폴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젊은 남자 시몽이 등장하죠. 작중 폴의 나이는 39세, 시몽의 나이는 25세로 둘의 나이 차이와 그로 인한 열정의 차이가 작품 내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언뜻 보면 도파민 팡팡 터지는 삼각관계 로맨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요. 저도 사실은 '뻔한 삼각관계 로맨스'를 생각하곤 '취향에 안 맞아도 읽어야지' 하며 펼쳤다가(난... 모임장이니까) 사강의 섬세한 필치에 몰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남성의 심리까지도 예민하게 포착하여 세 명의 관계가 단순히 애정 혹은 욕망에 따른 것만이 아님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는데요. 결말에선 모두가 '아'를 외쳤을지 모르지만, 작품 내 완결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가장 적절한 결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저희가 깊게 이야기 나누어 본 주제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

마지막 선택에 대하여

폴은 정말 신여성인가

  제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면서 작중 인물에 대해 통일되게 느꼈던 생각은, '이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사유로 외롭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루하거나 비도덕적이거나 충동적인 상태에 빠져 안정적인 애정을 나누지 못하는 세 인물들은 각자의 이유로 외로우면서도, 그 사실을 지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듯 폭풍과 같은 삼각관계에 놓였다가 빠져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남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선 나부터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관계의 가장 기본인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특히나 폴이 결국 외로움에 자신을 다시금 던지고 만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폴의 이미지와 그녀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어 보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폴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것과 다르게 전혀 (시대적으로 보았을 때도) 신여성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작품 속의 폴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과 집이 있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보이죠. 그렇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현재'의 폴의 삶은 폴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폴에게 직업은 이혼 후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을 뿐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느껴졌고, 독립된 삶 속에서 무한한 외로움을 해소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전남편과의 이혼을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더 외로운 사람으로 느껴졌고, 외로운 사람의 안타까운 마지막 선택이 더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로제와 시몽, 당신 앞에 두 명의 남자만 있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청춘의 이미지가 있다면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자주 하는 활동 중의 하나가 밸런스게임인데요. 작년에는 양귀자의 『모순』 때 진진이에 빙의해 선택을 해 보기도 했죠.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들은 선택을 괴로워 하셨지만, 로맨스가 첨가된 문학작품일수록 이런 활동이 재미있잖아요? 이번에도 선생님들을 괴롭게 하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말해 뭐해 시몽이었는데요. 오... 생각보다 로제를 고르신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이 사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익숙한 사람에서 빠져 나오기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안정감이 주는 매력을 무시할 수 없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마음 놓고 사랑을 할 만한 대상을 찾아 헤매는 과정들은 결국에는 안정된 애정을 획득하고 누리기 위한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폴의 선택에, 또 선생님들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 홀로 한 줄 사유해 보기

“믿어져?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도 없다는 게…….”

좋아했다고 믿었지만, 더 이상 좋아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 있나요?

📮

1월의 두 번째 도서

달과 6펜스

  여담으로, 뉴스레터를 적기 위해 서머싯 몸의 삶을 슬쩍 들여다봤는데 서머싯 몸의 삶도 고갱만큼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저처럼 나무위키 좋아하시는 분은 한번쯤 탐독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완벽주의자, 스트릭랜드

  『달과 6펜스』는 아무래도 캐릭터성이 강하다 보니, 개성 강한 주요인물들에 대해 이야기 위주로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대해 다양한 논평을 함과 동시에 다른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토론해 볼 시간이 주어져 좋았어요.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스트릭랜드의 모델인 고갱의 삶이 『달과 6펜스』에서 그려진 모습들보다 더하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함께 기함했던 재미있는 기억도 있습니다.

  기행을 숨기지 않는 스트릭랜드 - 아마 스스로는 기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 에 대해 모임원 모두가 깊이 탐구한 결과물을 공유해보았는데요. 충종적이고 대책 없이 그려지는 작품 속에서의 모습과 달리, 저는 외려 스트릭랜드가 완벽주의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갑작스럽게 자신이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을 버리고 대책 없이 떠난 스트릭랜드의 모습에서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런 면모들도 모두 이상주의자인 그의 머릿속에서 그려놓았던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스트릭랜드가 마흔에 화가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자신이 그려놓았던 '재미 없지만 기본은 하는 이상적인 중산층 가장'으로서의 삶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 후 '어떤 계획도 없고 무엇에도 미련을 두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삶 역시도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삶이라고 생각해요. 가름의 순간이 있었을 뿐 두 삶 모두 스트릭랜드에게는 자신의 이상대로 완벽하게 구축해 놓은 삶인 거죠. 결과적으로 스트릭랜드는 집을 떠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철저히 자신만의 머릿속에서 살지 않았나 싶네요.

지독히 닮은 두 사람, 스트릭랜드와 더크

더크 스트로브의 결정에 관하여

   또한 캐릭터를 논하면서 더크 스트로브와, 그와 스트릭랜드의 관계에 대해서도 집중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스트릭랜드와 더크가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판이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사실 이 둘은 굉장히 닮은 사람이고, 그러한 면에서 볼 때 더크의 선택이 납득이 가기도 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둘의 지향성은 상이해 보이지만, 사실상 예술을 향한 진심은 놀랍도록 닮아 있어요. 둘은 세간의 평가와는 다른 심미안을 똑같이 갖고 있죠. 예술을 향한 순수함도 그렇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크는 아내의 강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트릭랜드를 집에 들였고, 사건의 끝에는 스트릭랜드에게 함께 하자는, 독자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죠. 이러한 대목들은 더크 역시도 결국은 아내를 향한 사랑보다 예술을 향한 사랑이 더 우선이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홀로 한 줄 사유해 보기

이상적인 삶에 대하여: 에이미

누구보다 생기있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생각해 볼까요?

저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다가왔던 사람은 스트릭랜드의 전 부인, 에이미였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갖춘 데다 야무진 생활력이 돋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독서모임 자생[自生]

소올이 운영하는 소규모 독서모임입니다.

매주 다른 도서를 선정하여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토요일 오전 10시-12시 운영되며, 문토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소올의 도서대출카드]는 3월부터 매월 1일 아침에 발송됩니다.

3월 15일에는 2월의 기록을 담아 한 차례 더 발송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