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안녕하세요, 님. 아침 기온이 부쩍이나 매서워진 요즘입니다. 이번 편지는 육아휴직 중인 정우님이 보냅니다. 얼마전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경험을 했다는데요. 어떤 이유였을까요? 바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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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암막 커튼 사이로 아침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여기까지는 지난번 글과 똑같이 시작하는 아침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매일 아침마다 듣던 익숙한 알람 소리가 아니다. 그럼 이건 무슨 소리지? 이건.. 전화벨 소리잖아?!

눈이 번쩍 떠졌다. 머리맡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황급히 들어 올렸다. 화면 정중앙에 ‘유치원 버스 등원 선생님’이라고 발신인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전화받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 화면 오른쪽 위 시계를 확인한다. 아침 아홉 시 정각. 

침대에서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다. 목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누가 봐도 지금 막 잠에서 깬 목소리로, 그러나 손만큼은 팀장님 전화받을 때처럼 두 손으로 공손히 

“아,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늦잠을..”

보통의 아침 아홉 시는 초등학생인 첫째와 둘째가 집을 나선 지 20분이 지난 시간이고 유치원생인 막내가 집 앞에서 버스를 탄 지 10분이 지난 시간이다. 바꿔 말하면 초등학생들은 이미 교실에 앉은 채 1교시가 막 시작할 시간이고 유치원생은 버스로 유치원에 막 도착할 시간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 유치원 버스는 집 앞에서 우리를 10분 정도 기다리다가 더는 기다리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전화를 했을 것이다.

며칠 동안 심한 몸살감기를 앓았다. 전전날 종합감기약을 먹고 오랜만에 일찍 잠들었던 터라 그 다음 날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러다 진통제 효과도 다 해 늦게까지 끙끙대다 결국 새벽에 종합감기약과 진통제를 칵테일처럼 말아먹고 뻗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아내가 새벽에 일찍 출근한 날이라 이 핸들이 고장 난 0.1톤 숙면 트럭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사람이 없었다. 아침에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더 늦게 일어날 뻔했다. 통학하는 아이들의 안전뿐만 아니라 통학하는 아이들 아빠의 늦잠까지 깨워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도 될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들 방으로 가 왜인지 닫혀있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은 깨어있었다. 다행인 건 아이들을 억지로 깨워 비몽사몽 중인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고 불행인 건 아이들이 방문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보고 있던 태블릿을 이불 밑으로 황급하게 숨겼다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게임을 하고 있었냐, 유튜브 보고 있었냐, 태블릿은 어디서 찾았느냐고 잔소리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아홉 시야”

아이들은 이불 밑에 숨긴 태블릿을 다시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번엔 아이들 몸이 셋이 한꺼번에 튕겨 올랐다. 용수철처럼. 평소 같았으면 몇 번을 말해야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을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잠옷을 벗어 던지고 서랍장을 열어 옷을 꺼내입는다. 매번 까먹어서 챙겨줘야 하는 양말도 스스로 꺼내서 신는다. 다 알아서 할 수 있었구먼 (이날도 바지를 거꾸로 입은 아이가 하나 있긴 했다). 

나도 얼른 안방으로 돌아와서 나갈 채비를 했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이미 자켓 위에 가방까지 메고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지각하게 됐다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해달란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담임선생님들의 연락처를 모를뿐더러 어떻게 연락해야 될지도 모르고 이미 수업이 시작했을 터라 교무실이나 행정실로 (매번 어디로 전화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전화를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선생님께 말씀드려. 아빠가 늦잠 잤다고.. 미안해”

초등학생 아이들은 망했다는 표정으로 먼저 집을 나섰다. 의미는 없지만 아이들의 뒤통수에 대고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마저 준비를 마치고 막내와 주차장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아내다.

“선생님이 전화하셨는데 둘째가 학교를 안 왔대!”

“아, 미안. 내가 늦잠을..”

아내도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을까. 나도 놀랐다. 매번 비상 연락처 첫 번째 칸에 내 전화번호를 남기지만 대부분의 비상 연락은 굳이 두 번째 칸에 있는 아내 전화번호로 가는 게 놀랍다. 막내는 기분이 좋은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종알종알 말이 많다. 유치원 버스가 가는 길을 그대로 아빠와 같이 가는 게 신기하단다. 아이를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나서야 내가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영상의 제목이 ‘내가 매일 아침 네 시 반에 일어나는 이유’였다는 생각이 나 헛웃음이 났다. 

‘늦잠을 잔 아빠’라니. ‘아침 네 시 반에 일어난 어린이’만큼이나 생소한 단어의 조합이다. 아이들은 아빠의 늦잠으로 어쩌면 지각 처리가 됐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게으른 학생으로 평가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아빠가 늦잠만 자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런 소리를 듣는다 한들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글을 마무리하고 아이들 방으로 가서 잠든 아이들을 한 번씩 본다. 다리를 만져 춥지는 않은지, 이마를 쓸어 덥지는 않은지 가늠한다. 잘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큼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가 또 있을까. 시계를 본다. 하필이면 새벽 네 시 반이 가까워 오고 있다. 이제는 몸을 잔뜩 웅크려 침대로 갈 시간이다. 내일은 부디 전화벨 소리가 아닌 알람소리에 느긋하게 일어나기를. 그러나 용수철처럼 몸이 튕겨 오를 마음의 준비도 한편에 하며. 내일, 아니 오늘 하루도 무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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