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손을 씻지 않은 의대생이 브랜드를 받는 장면 — 브랜드를 도구로 여기는 경영 [그림 2] 손을 씻은 산파가 브랜드를 받는 장면 — 브랜드가 문화이자 경영의 목적이 되는 경영
여기서 질문이 시작된다.
당신은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브랜드로 경영하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브랜드를 특정 부서의 관리 대상으로 다루는 방식을 '브랜드 관리(Managing Brand)'라고 부르겠다. 브랜드가 고객에게 한 약속을 기업 전체의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는 방식은 '브랜드 경영(Management by Brand)'이라고 부르겠다. 교과서의 정의가 아니라, 기업 안에서 브랜드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들여다보기 위한 구분이다.
브랜드 관리에는 상표를 보호하고, 디자인과 메시지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고객의 반응과 브랜드 자산을 점검하는 일이 포함된다. 모두 브랜드에 꼭 필요한 일이다. 브랜드 경영은 이 관리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브랜드의 약속을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채용, 조직 운영, 가격, 유통, 투자에까지 적용한다. 둘의 차이는 브랜드를 얼마나 중요하게 말하느냐에 있지 않다. 브랜드가 실제로 어떤 결정을 바꾸느냐에 있다.
브랜드의 약속은 어디까지 작동하는가
광고에만 머무는 약속은 마케팅 문구에 불과하다. 파타고니아는 오래 쓸 수 있는 옷을 약속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광고 밖으로 끌고 나왔다. 제품의 내구성을 높이고, '원웨어(Worn Wear)' 프로그램으로 판매 이후에도 고객의 옷을 고쳐 준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까지 냈다. 약속이 문구를 떠나 경영의 기준이 된 경우다.
이런 브랜드가 원가 상승에 부딪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재의 품질을 낮출 수도 있고, 가격을 조정하거나 제품 구성을 바꿀 수도 있다.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정답은 없다. 다만 오래 쓸 수 있다는 약속이 의사결정의 기준이라면, 당장의 원가 절감만이 아니라 제품의 수명과 고객의 신뢰에 미칠 영향까지 저울에 올려야 한다.
브랜드로 경영한다는 것은 이런 판단을 반복하는 일이다. 무엇을 만들지뿐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않을지, 어떤 매출을 얻을지뿐 아니라 그 매출을 위해 무엇까지 허용할지를 정하는 일이다.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는 이러한 선택을 거치면서 비로소 구체적인 의미를 얻는다. 고객이 경험할 수 없는 철학은 선언에 머물고, 직원의 판단에 쓰이지 않는 가치는 조직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매출을 관리하되, 매출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매출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관리해야 할 지표다. 수익과 현금흐름이 받쳐 주지 않으면 제품을 개선하는 일도, 직원을 고용하고 고객을 지원하는 일도 이어 갈 수 없다. 철학을 지키겠다는 의지만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는 없다. 문제는 매출이 모든 결정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때 생긴다.
매출이 떨어지면 기업은 할인, 상품 확장, 유통망 확대, 광고 투자를 검토한다. 이 방법들 자체가 브랜드를 해치지는 않는다. 물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매출이 떨어진 원인에 맞는 대응인가, 그리고 고객에게 한 약속과 함께 설 수 있는가.
고객이 품질에 실망해 떠나고 있는데 할인 행사만 반복한다면, 구매는 잠시 늘어도 불만의 원인은 그대로 남는다. 반대로 고객이 제품의 가치를 몰라서 사지 않는다면, 전달 방식을 고쳐야 한다. 같은 매출 하락이라도 원인에 따라 처방은 달라야 한다.
그래서 브랜드 경영자는 이번 달의 매출과 함께 그 매출이 만들어진 과정을 들여다본다. 고객이 만족해서 다시 샀는지, 과도한 할인으로 수익이 깎였는지, 판매 현장에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브랜드를 잘 만들면 매출은 따라온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이 인정하는 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적절한 가격과 경로로 전달하며, 계속 제공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브랜드 경영은 이 전 과정을 함께 책임지는 일이다.
근시안 다음은 난시다
마케팅과 브랜딩은 서로 맞서는 활동이 아니다. 고객을 이해하고, 가치를 제안하고, 구매와 사용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두 활동은 맞물려 돌아간다. 다만 단기 판매를 끌어올리는 활동이 브랜드가 오래 쌓아 온 약속과 부딪히는 순간이 있다. 실제 성능보다 부풀린 광고로 구매를 유도하거나, 신규 고객을 잡으려고 기존 고객이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그렇다. 당장의 성과는 생기지만 신뢰는 그만큼 깎인다.
반대의 병도 있다. 브랜드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왜 구매를 망설이는지는 살피지 않는 경우다. 기업에게 중요한 가치가 고객에게도 의미 있으리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1960년 테드 레빗은 자신을 운송업이 아닌 철도업으로만 여긴 철도 회사들의 병을 '마케팅 근시안'이라 불렀다. 마케팅의 병이 근시라면, 브랜드의 병은 난시다. 근시가 가까운 것만 보는 병이라면, 난시는 초점이 한 점에 모이지 않고 여러 곳으로 흩어지는 병이다. 광고는 이쪽에, 가격은 저쪽에, 고객 응대는 또 다른 곳에 상을 맺는다. 고객의 눈에는 흐릿한 브랜드만 남는다. 첫 문단에서 말한 말과 일 사이의 거리가 바로 이 난시다.
난시를 고치려면 고객의 필요와 브랜드의 약속을 한 초점 위에 놓아야 한다. 고객의 요구에 응하되 모든 요구를 따르지는 않고, 정체성을 지키되 익숙한 방식을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그 초점을 맞추는 데 네 가지 질문이 쓸모 있다.
"이번 활동은 어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가?" "고객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 경험은 우리가 해 온 약속과 일치하는가?" "이 방식을 지속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마케팅의 성과와 브랜드의 신뢰를 한 렌즈로 보게 해 준다.
브랜드다움은 조직이 공유하는 판단 기준이다
장 노엘 캐퍼러(Jean-Noël Kapferer) 교수는 샤넬에 명시된 브랜드 플랫폼이 없다고 말한다. 샤넬의 직원들은 '샤넬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고, 끊임없이 '이것이 충분히 샤넬다운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지식은 종이에 적을 수 없는 암묵적 지식이라고 한다.
샤넬은 적지 않아도 된다. 백 년 넘게 같은 질문을 해 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브랜드에는 그런 시간이 없다. 브랜드다움의 의미를 창업자나 몇몇 임원만 알고 있으면, 직원들은 경영자의 취향을 짐작하거나 결정할 때마다 승인을 기다린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야 한다.
브랜드다움은 결국 자기다움이다. 남과 무엇이 다른지가 아니라 무엇이 나다운지를 먼저 묻고, 그 답을 직원 누구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꺼내 쓸 수 있는 말로 바꿔 두어야 한다.
'고객을 존중한다'는 가치가 있다면, 고객이 불만을 제기했을 때 누구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 정해야 한다.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출시 일정을 늦추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의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 '직원의 성장을 돕는다'면 교육과 평가, 업무 배분에서 그 원칙이 드러나야 한다.
이런 기준은 문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사례를 함께 검토하고, 판단이 달랐던 이유를 토론하고, 결정 이후의 결과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은 브랜드의 가치를 자기 업무와 잇는다. 적는 일은 시작이고, 그 문장이 몸에 붙을 때까지 묻고 또 묻는 일이 나머지다.
모든 직원이 브랜드에 참여한다는 말은 모든 결정을 함께 내린다는 뜻이 아니다. 샤넬에서도 결정은 대여섯 명이 내린다. 다만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모든 직원이 알고 있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 안에서 브랜드의 약속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판단할 수 있으려면, 공통의 기준과 함께 그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
정체성을 지키면서 방법을 바꾼다
이제 막 고객을 만나기 시작한 브랜드와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 온 브랜드에 필요한 판단은 같지 않다. 같은 브랜드라도 시장과 고객, 경쟁 환경이 바뀌면 이전과 다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성공 사례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기업에게서 배울 것은 무엇을 했는가보다 왜 그 결정을 내렸고 어떤 조건에서 효과가 있었는가다.
브랜드가 성장하면 조직의 운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창업 초기에는 몇 사람이 수시로 대화하며 결정할 수 있지만, 조직이 커지면 경험과 감각을 다른 사람에게 건넬 체계가 필요하다. 상품과 유통 경로가 늘어나면 고객이 접하는 경험의 차이도 관리해야 한다.
이때 원칙과 방법을 구분해야 한다. 고객에게 주려는 핵심 가치는 지키면서, 그것을 구현하는 제품과 서비스, 기술과 업무 방식은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예전 방식을 되풀이한다고 정체성이 지켜지지는 않는다.
하나의 시장 안에도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진 고객이 있다. 어떤 고객은 가격과 기능을, 어떤 고객은 사용 경험이나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앞에 둔다. 브랜드는 이 차이를 이해하되, 서로 충돌하는 약속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브랜드의 일관성은 모든 고객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서로 다른 접점에서도 고객이 같은 약속을 확인할 때 생긴다.
브랜드 경영자도 함께 자란다
브랜드 창업자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 출발하지 않는다.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나고 조직을 운영하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지식과 경험을 발견한다. 위기를 겪고 나서야 당연하게 여겼던 판단을 돌아보기도 한다.
중요한 일은 경영자의 현재 지식이 브랜드 성장의 천장이 되지 않게 하는 데 있다. 모든 문제에 직접 답하려 하기보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배우고, 필요한 전문성을 조직 안팎에서 구해야 한다. 고객의 경험을 듣고, 현장의 의견을 검토하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경영자가 보여 주는 태도도 기준이 된다. 원칙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데 비용이 드는 순간에도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직원들은 선언문보다 실제로 어떤 행동이 인정받고 보상받는지를 보며 조직의 기준을 배운다.
브랜드를 키우는 과정은 자녀를 키우며 부모도 함께 자라는 과정과 닮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돌봄과 관계가 달라지듯, 브랜드가 커질수록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직접 만드는 능력이 중요했다면,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같은 원칙 아래 판단하고 협력하도록 돕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브랜드는 경영자의 철학에서 출발하지만, 그 철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직원의 실천과 고객의 경험을 거치면서 의미와 신뢰를 얻는다. 그래서 경영자는 자신이 의도한 브랜드와 고객이 실제로 경험하는 브랜드 사이의 거리를 끝까지 살펴야 한다.
브랜드 경영은 기업이 한 약속을 조직의 판단과 행동으로 옮기고, 그 결과를 고객의 경험과 사업의 성과로 확인하는 일이다. 한 번의 성공적인 출시나 인상적인 광고로 끝나지 않는다.
당신의 브랜드가 고객에게 한 약속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약속 때문에 오늘 기업의 어떤 결정이 달라졌는가?
브랜드로 경영하는 일은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데서, 다시 말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손을 씻는 데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