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을에서]


가장 더딘 인간


이재철 목사
 

봄이 시작됨과 동시에 만물이 생명의 용트림을 하고 있습니다. 자고 나면 매화꽃이 피고, 자고 나면 개나리가 피고, 자고 나면 조팝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꽃들이 마치 경쟁하듯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냅니다. 어제까지 아무 조짐이 보이지 않던 단풍나무도 하룻밤 사이에 가지마다 눈부신 잎들로 뒤덮였습니다. 민들레 쑥을 포함하여 온갖 풀들 역시 순식간에 마당을 점령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작년 11월에 입양한, 당시 태어난 지 한 달 반밖에 되지 않은 어른 손바닥만 했던 강아지는, 불과 5개월 만에 어엿한 성견이 되었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그렇게 폭풍 성장한다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다른 동물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렇게 생명이 용트림하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성장이 가장 더딥니다.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십수 년을 필요로 하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늘 겸손해야 합니다. 성장이 가장 더딘 생명체이면서도 교만한 인간보다 더 추한 존재는 없습니다.

[지금 이 책]



열두 살 소년 광조는 장례식 날 아침, 혼자 변소 안에 들어가 하늘을 향해 주먹질하면서 "아버지는 바보야! 못난이야!"라고 소리쳤다.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은 자신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차가운 거절을 의미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머니 오정모 집사는 아버지 순교 3년 뒤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자녀들에게 남긴 유산은 오직 시편 37편 25, 26절이었다. 형님들은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큰형 주영진 전도사는 공산당에 체포되어 순교자의 길을 이었다. 청년이 된 후에도 방황은 계속되었다. 기념일 행사마다 순교자 자녀라는 갈채가 쏟아졌지만, 이면에는 끝 모를 고독과 가난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순교자와 남겨진 가족이 겪은
고난과 섭리

2024년 4월 21일은 주기철 목사 순교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의 숭고한 정신은 한국 교회의 얼을 지탱하는 힘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학자와 작가들이 논문과 미디어 자료들을 만들어 그의 이야기를 전승해 왔지만, 주기철 목사의 순교 신앙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일에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다. 그는 아버지의 순교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고, 주기철 목사의 가장 든든한 동지이자 두 번째 아내였던 오정모 집사의 임종을 목도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자료가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조명했다면, 《나의 아버지 주기철》은 드러나지 않은 가족의 시간까지 담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 순교자와 남겨진 가족이 겪은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되기까지의 여정을 아들 주광조의 시선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오후의 정원]


일상오복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


강화도 외포리에 아내와 함께 자주 가는 꽃게 매운탕 집이 있다. 인사교회 권사님이 하시는 집인데 된장과 애호박을 넣고 끓여 낸 국물 맛이 구수하고 시원하기 그지없다. 2년쯤 전인가 아내와 함께 그 집을 찾았다. “잘 지내셨지요?” 하는 내 인사말을 받아 권사님은 마치 일러바치듯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 냈다.
“저, 한동안 가게에 못 나왔어요. 한 달 전 새벽기도를 하던 중 우리 교회 혼자 사시는 노 권사님 생각나서 기도회 마치고 집에서 반찬 몇 가지 만들어 그 권사님 댁에 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오른손 팔목이 부러졌어요. 한 달간 깁스를 하고 지내다가 이제야 깁스를 풀고 가게에 나왔어요.”
깁스를 푼 팔목을 내게 보여 주는 권사님 얼굴에 “착한 일 하려고 했던 내가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합니까?”라는 식의 섭섭한 원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 다친 곳은 어떻습니까?”
“뼈가 잘 아물어서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 없대요.”
“다행이군요. 그래, 손목에 깁스를 하는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뭘 해요? 가게도 못 나오고 집에서 쉬기만 했지요.”
“권사님 소원대로 되었네요. 권사님이 그동안 ‘20년 넘게 가게 일에 매달려 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피곤해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꿀 같은 휴식이었겠네요. 그래, 집에서 한 달간 지내면서 뭐하셨어요?”
“할 게 뭐 있나요? 성경 보고 기도하는 것 밖에…”
“그래요? 한 달간 성경 보며 기도하셨으니 믿음도 더 좋아지셨겠네요. 그럼 가게는 어떻게 하셨어요? 문을 닫았어요?”
“아니에요. 내가 다친 것을 보고 아들 내외가 나와 계속 가게 문을 열었어요. 그동안 가게를 좀 맡아 보라는 내 말을 듣지 않던 아들 며느리가 한 달간 가게 일을 해보더니 이제는 가게를 맡겠다고 하는군요.”
“잘되었네요. 한 달간 깁스를 한 채 생활하기가 불편했을 텐데, 세수는 어떻게 하셨어요?”
“남편이 다 해주었어요. 머리도 감겨 주었어요. 시집와서 처음 받아 본 호강이었어요.”
멀찍이 서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 얼굴에 계면쩍은 미소가 번졌다.
“권사님, 한 번 다치셔서 다섯 가지 복을 받으셨네요. ‘일상오복’(一傷五福) 말입니다.”
“…?”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그렇게 원하시던 휴식을 취하였으니 첫 번째 복이요, 다쳤던 손목이 더욱 단단해졌으니 두 번째 복이요, 쉬는 동안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에 매진하여 믿음이 굳어졌으니 세 번째 복이요, 가게를 어찌할까 고민하시더니 며느리가 맡기로 했으니 네 번째 복이요, 꿈에 그리던 남편 사랑을 받았으니 다섯 번째 복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다음 주일에 감사헌금 해야겠네요. 호호.”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짜증과 의문으로 시작했던 대화가 감사와 기쁨으로 바뀐 것은 ‘나 중심’에서 ‘그분 중심’으로 생각이 바뀐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그날 이후 방문할 때마다 가게 분위기가 젊고 환하게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쁜 며느리가 개발한 세 메뉴도 늘어났다. 나오미와 룻처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요” 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보기가 참 좋다.
[읽기의 순간들]



이원식, 영화감독 · 정감스토리 대표


몇 년 동안 진행하던 일본 선교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 나는 흐물흐물 많이 지쳐 있었고 정신적으로 꽤 소진돼 있었다. 그때 내게 선물이 하나 도착했다. 표지부터 강력한 첫인상의 책이었다. 책은 보혈을 상징하듯 온통 빨간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책 제목은 ‘전도의 정신’이었다. 지친 내게는 제목만으로도 다소 부담스러운 책이었지만, 그 강력한 빨강은 묘하게 내게 활력을 충전시키려는 듯한 누군가의 의지처럼 보였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 누군가는 분명 그분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온 선물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쓴 우치무라 간조는 1861년부터 1930년까지 살다 소천한 기독교 사상가이자 평론가, 작가였다. 많은 이들에게 일본 무교회주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책을 통해 다양한 전도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계를 위해 전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장 큰 위험에 내던지는 자이며 사회에 크나큰 패악을 끼치는 자라며 결단코 전도를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말한다. 명예와 공명심을 위해 전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당장 종교계를 떠나라고 외친다. 교회를 위해 전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전도로 경쟁을 하거나 신도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며 논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한다. 나라를 위해 전도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의욕 자체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며 종교의 일차적 목적은 국가나 사회개량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외친다. 하나님을 위해 전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런 얘기를 지금 한국의 교회에서 하다가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내 머릿속에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치무라 간조는 눈치 보지도 않고 피해 가지도 않고, ‘사람을 위한 전도자’가 되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전 존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전도 대상자에게 전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전도의 정신을 가져야 하며, 어떤 전도자의 자격과 몸가짐, 지적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제시한다. 그런데 책을 덮고 보면 결국 나의 신앙과 전도자로서의 자세, 그리고 오늘의 한국 교회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진다.
우치무라 간조가 자신이 살던 시대를 바라보던 시선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너무나 닮아 있음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지치고 희미해진 나의 전도심, 그리고 서로 뭉치기만 할 뿐 퍼져서 전도하지 못하는 공동체, 쇄신이 필요한 한국 교회가 생각난다. 우치무라 간조의 ‘전도의 정신’은 시간을 뛰어넘어 결국 나와 교회, 우리 시대에 던지는 강한 메시지임이 분명하다.
책의 마지막에 우치무라 간조는 오늘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법을 적었다. 그 글들을 읽으며 나는 지치고 소진된 나의 어려움에 처한 정신이 다시 충전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곧 일본에 가서 한 일본인 가족을 만나게 될 텐데, 그 가족을 어떻게 전도할까 기도하게 된다. 내가 받아 온 그 선물 같은 놀라운 은혜를 그들에게 전하고 싶어진다.
[가까이 또 멀리]

성경의 관심은 영원입니다. 그러면서 시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임을 말해 줍니다. 현대과학의 상대성 이론도 시간이 변하는 존재임을 보여줌으로써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시간은 우주가 움직이는 속도와 크기(중력)에 의해 길이가 변하는 신기한 존재입니다. 현대과학이 주장하는 138억 년이라는 오래된 우주의 시간이 성경에 큰 도전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과학적 주장이 성경의 진리를 무너뜨리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피조물인 시간을 넘어 영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영원은 길고 무한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해도 영원은 피조물인 시간의 개념을 벗어난 어떤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시간 속에 사는 유한한 피조물 인간에게 시간의 문제를 놓고 다투는 데서 벗어나 영원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 책 나옵니다


𝓃𝑒𝓌 교회가 모여 교회가 되는 교회
먼 남도 끝자락까지 수많은 교회들과 신학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교회가 있다. 작은 들숨 날숨들이 하나의 큰 호흡을 이루어 예수 제자를 낳고 이웃을 품으며 성장해 온 완도성광교회이다. 숨은 주역은 이름 없는 평신도들이다. 이 책은 성도들이 은사를 훈련받아 교회의 심장이 되기까지 41년 평신도 사역의 모든 것을 담았다.    
정우겸 지음 | 160쪽 | 2024년 5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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