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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3매 |  최갑수

네, 이거면 충분해요

어제 배우 김의성 형과 함께 후쿠오카에 왔습니다. 3년 만의 여행이었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 약간 겁이 나더군요. 아무리 비행기를 많이 타도 이 무서움을 사라지지 않습니다.


공항을 빠져나와 돈가스와 맥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전갱이 튀김도 시켰습니다. 기름을 잔뜩 머금은 전갱이 튀김은 더 이상은 고소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더군요. 입술에 묻은 튀김 기름을 닦으며 이 맛있는 튀김을 한국에서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일행이 탄 차는 산등성이를 따라 난 위태로운 도로를 비틀비틀 달려 야메 시의 어느 민박집으로 들왔습니다. 차창 밖, 산골짜기 아래 드문드문 서 있는 집 담벼락에는 홍매화가 붉은 점처럼 피어 있었습니다. 민박집은 일본 남자와 필리핀 여자 부부가 운영합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사내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마당을 돌아다니며 모이를 쪼아먹는 커다란 닭도 있고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여자 대학생 여섯 명이 머물고 있더군요. 나흘 때 머물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 산골짜기 민박집에 말입니다. 뭐랄까, 조금은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민박집 주변으로는 녹차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야메는 일본에서 가장 좋은 녹차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김의성 형과 저는 녹차밭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주인장이 우려 준 녹차에는 진한 생풀 맛이 났습니다.

저녁 식사는 여대생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들이 밥과 미소된장국, 채소 절임, 고기볶음, 샐러드 등을 준비했더군요. 그냥 자연스럽게 한 자리에 앉아 먹게 됐습니다. 상 위에 식사가 차려지자, 못 보던 할아버지며 청년이 와서는 우리와 함께 앉아 맛있게 식사를 하고 사라지더군요. 아무도 그들이 누군지 묻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선 그냥 이런 식으로 먹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밥과 국을 안주 삼아 마트에서 사 온 사케를 나눠 마셨습니다. 세 가지 종류를 사 왔는데, 하나는 약간 거칠었고, 다른 하나는 밸런스가 좋았고, 다른 하나는 마일드하며 달았습니다. 서로의 취향에 따라 맛있게 마셨습니다.


저녁을 먹고 민박집 마당에서 불을 피웠습니다. 후쿠오카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모닥불을 피우다니요. 일주일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쌀알을 뿌려놓은 듯 떠 있었습니다. 카시오페아, 오리온,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서 반짝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떠올려 보는 별의 이름이었습니다. 고개가 아프도록 오래오래 그 별들을 바라보았는데, 저 어느 별에서도 우리와 같은 이가 지구를 바라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쪽이 찡해졌습니다. 서쪽 하늘 낮은 곳에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있었는데, 인공위성일 확률이 높다고 하더군요.

“10년 뒤에 어떤 모습일 거 같아요?” 김의성 형이 손바닥을 펼쳐 모닥불을 쬐며 이번 여행을 함께 한 동행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해요.” 동행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은 인생일 수도 있어요.” 김의성 형은 이렇게 말하며 모닥불 앞으로 당겨 앉았습니다. “저는 이제 별다른 욕심 없어요. 그냥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여행하고, 적당히 즐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이겠지요. 아, 어쩌면 이게 큰 욕심이려나……?”


지금까지 여행작가로 살아오며 일본은 수십 차례 다녔지만 이런 여행은 처음입니다. 산꼴짜기 녹차밭 사이에 자리한 민박집에서 여행을 온 일본 여대생들이 차려 준 소박한 음식을 처음 보는 사람과 나눠 먹은 후, 모닥불을 쬐며 우리는 십 년 뒤에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를 이야기하는 여행이라니요. 게다가 우리의 머리 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둥글게 회전하고 있습니다. 별인 척 반짝이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인공위성도 있고요.


누군가가 지금의 저에게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요?” 하고 묻는다면 저 역시 “이런 여행을 조금 더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고 대답하겠습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이런 인생(여행)을 조금 더 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해주는 것 같아요. 여행을 하며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네, 이거면 충분해요."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의 대답인 것 같습니다.


밤이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기온이 많이 오를 것이라고 합니다. 하루 이틀 뒤 벚꽃이 화들짝 필 수도 있다고 하는군요. 운이 좋다면, 이번 여행에서 난분분 난분분 흩날리는 벚꽃비를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지금 일본 후쿠오카 지역을 여행 중이다. 새벽, 만박집의 닭 울음 소리를 들으며 이 레터를 쓰는 중이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나의 첫 차 수업 |  금진방

다구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주원장의 등장, 단차에서 산차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다구는 우리가 마시는 차인 ‘6대 다류’(녹차·백차·황차·청차·홍차·흑차)가 정립된 명말청에 그 모습을 갖췄다. 차의 역사가 5,000년이 넘는다고 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런 말을 하나 싶을 수 있겠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차의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순간을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사 수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주 드라마틱한 역사의 순간을 들여다보자는 이야기다.


현대 차 문화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명나라 창업 군주인 홍무제 주원장(1328~1398)의 등장이다. 평민 출신인 주원장은 황실에 차를 진상하는 공차 제도가 민초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몸소 경험하고 목도했다.

그는 평민에서 아주 극단적인 신분 상승을 통해 황제가 된 인물. 하지만 평민으로 살았던 때의 기억은 고스란히 그의 뼈마디마다 아로새겨져 있었다. 젊은 나이에 원나라 황제의 폭정에 반기를 들어 홍건적에 투신했던 그는 황제가 된 뒤, 당시 공차로 통용되던 차인 단차團茶의 제조를 금하고 산차로 차를 만들도록 칙령을 반포했다. 단차니 산차니 하는 것은 뒤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주원장의 칙령은 민생을 생각한 하나의 조치였지만 이것이 차 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주원장이 금지시킨 단차라는 것은 만들기가 굉장히 복잡하고 고단했다. 얼마나 고된 일이었으면 황제까지 나서서 칙령을 내렸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단차를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자. 당대에 단차를 만드는 첫 단계는 찻잎을 새순으로 따서 대나무 바구니에 넣고 찌는 것이다. 덖는 방식이 아니라 수증기로 차를 쪄서 열을 가하는 증제차의 제다 방식이다. 찐 찻잎은 절구에 넣고 찧어 쌀풀 등을 섞어 철제 틀에 넣고 찍어 낸다. 그리고 이를 꿰어 건조한다. 완성된 차는 공의 모양이거나 엽전 같은 모양이다. 간단히 요약해 글로 써도 복잡해 보이는 단차 제조 과정을 실제로 하려면 상당한 공이 든다.


백성의 고혈을 짜서 만든 단차는 도가와 선불교 승려, 상류층 문인, 귀족, 황족이 즐겼다. 단차는 즐기는 방법 역시 만드는 것만큼이나 복잡했다. 단차에 대한 기록은 중국에서 다성이라 불리는 육우가 쓴  『다경』에 잘 나와 있다. 육우는 중국 고대의 차 문화를 정리한 사람으로 그가 쓴 『다경』으로 인해 중국의 차 농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럼 단차를 우리는 방식을 알아보자. 먼저 단차를 구워 종이로 싸서 식힌 뒤, 차 맷돌로 갈아서 가루를 낸다. 가루 낸 차는 비단으로 체를 쳐 받는다. 찻가루가 준비됐다면 좋은 물과 숯을 구해 물을 끓이고, 첫 번째 물이 끓으면 소금을 넣고, 두 번째에는 찻가루를 넣고, 또 다시 끓어오르면 차를 찻사발에 떠서 마신다.

여기서 잠깐. 주의 깊게 음차 과정을 살펴보자. 우리가 요즘 마시는 잎차를 우리는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보일 것이다. 단차를 마시는 방식은 차를 우린다기보다 차를 끓이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중국에서는 포차법泡茶法과 자차법煮茶法이라고 구분 짓는다.

주원장 이후 단차 대신 산차를 마시게 된 사람들은 차를 끓여 먹던 기존의 자차법을 버리고 차를 우려서 마시는 포차법을 택하게 된다. 단차처럼 불에 구워 가루를 낸 뒤 물에 넣어 끓이지 않아도 되는 산차는 사람들이 자차법을 더 이상 따를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찻잎 형태인 산차는 잎에서 곧바로 차가 우러나기 때문에 자차법보다는 포차법을 이용해 우리는 게 더 낫다. 지유명차 서해진 갤러리GU 대표에 따르면 주원장 등장 이후 포차법이 완벽히 정립되는 데까지는 약 200년의 세월이 걸렸다. 어떤 문화가 정착되기까지는 응당 그만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오늘날과 같은 차를 덖는 방법 역시 이때 등장했다. 포차법이니 자차법이니 공자 왈 맹자 왈 왜 복잡한 소리를 해 대는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사를 알아야 더 의미 있게 차를 즐길 수 있다. 어쨌든 주원장의 칙령 반포는 현대의 다인들에게는 축복이 된 셈이다.

포차법의 유행이 탄생시킨 차호


자, 이제 본격적으로 다구 이야기를 해보자.

차의 형태 변화는 차를 우리는 방법뿐 아니라 다구의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차를 제대로 즐기려면 포차법에 맞는 다구가 필요했다. 이때 중국 황실에서는 금, 은, 동, 도자기까지 여러 재료를 이용해 차호茶壺를 만드는 실험에 나선다. 말이 실험이지 이리저리 궁리해 최적의 차 맛을 내는 차호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다.


단차를 마시던 시대만 해도 차호의 효용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커다란 솥에 차 가루를 집어넣어 끓여냈기 때문에 차호보다는 찻사발이 주된 다구였다. 하지만 찻잎을 우려내야 하는 산차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찻잎을 우려내기 위한 차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됐다.

여러 실험을 거친 끝에, 중국인들은 자사紫砂라는 광물을 원료로 한 자사호紫砂壺가 차를 우리는 데 최적화된 다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명나라 초기 수도였던(3대 황제인 영락제 때 현재 베이징으로 천도한다) 난징南京 남쪽에는 자사라는 광물이 나는 이싱이라는 지역이 있었다. 자사는 광물이었지만 물을 더하면 점성이 생겨 흙처럼 차호를 빚을 수 있었는데, 자사로 만든 차호를 자사호라 부른다. 우리가 그렇게 애지중지해 마지않는 자사호가 바로 이것이다.

중국인들은 자사를 두들겨 차호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차호에 물고기의 비늘처럼 여러 겹의 층이 생기게 됐다. 이런 자사의 특성과 제조 방식은 보온성과 통기성이 강한 차호를 만들어 냈고 이는 산차를 포차하기에 가장 적합했다.

당시 차호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차는 자사호와 가장 궁합이 맞는 보이차가 아닌 우이암차였다. 보이차가 중원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들어서의 일이니 당시에는 우이암차가 차의 표준 역할을 했을 것이다. 포차법은 자차법과 달리 찻잎을 짧은 시간에 우려내야 하기 때문에 차 고유의 성분을 추출하려면 물의 온도를 유지하는 보온성이 중요하고, 찻잎이 쪄지지 않도록 하는 통기성 역시 중요했다. 그래서 보온성이 약한 경덕진의 도기는 포차에 적합하지 않았다. 장시성江西省 파양호鄱陽湖 동부에 위치한 경덕진景德鎭은 당시 최고의 자기를 만드는 곳으로 현대의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리차드 지노리Richard Ginori, 웨지우드Wedgwood 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그런 경덕진을 제치고 자사호는 당당히 포차법 시대를 호령한다.

당시 포차법을 위한 차호의 요구사항은 아래와 같다.


1. 통기성(숨을 쉬는 성질)이 있어야 한다.

2. 잘 우러나야 한다.

3. 보온성이 강해야 한다.

4. 향을 잘 잡아야 한다.


자사호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명나라 중기에 이르러서야 완벽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초기의 자사호는 사람 머리 크기만 했지만 포차법의 발달에 맞춰 현재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아마도 최고의 차 맛을 얻기 위한 부단한 실험의 결과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차법이 포차법이 된 것은 차 문화사에서 하나의 혁명으로 볼 수 있다. 자차법은 그 복잡성 때문에 누군가(다동, 차 노비 등)를 시켜 차를 우리도록 했지만 포차법으로 바뀐 뒤에는 차를 마시는 사람이 스스로 차를 우려 마시는 게 일반화됐다.

주원장의 애민정신으로 내려진 칙령 하나가 현대의 6대 다류가 정립되는 계기가 됐고, 포차법 역시 세대를 거듭해 발전하게 했다. 평민 출신 황제의 ‘작은’ 결심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오늘날 다인들의 즐거움이 됐으니 차를 즐기는 애호가라면 모두 주원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

차를 사랑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차를 마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차를 권한다. 대륙의 식탁 베이징을 맛보다 중국의 맛을 썼다. 미식가로도 유명한 그의 인스타그램 @gold_awesome에는 차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 이야기가 있으니 꼭 방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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