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오이레터는 정지윤 작가님의 두번째 글을 만나봅니다. '이주가사노동자'는 조정훈 의원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법안'을 발의하면서, 주목을 받는 주제입니다. 비공식영역 노동자, 외국인, 젠더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제 15호
이주가사노동자 논의,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할까?

국제 노동계의 마지막 현안, 가사노동자

     

2011년 6월 16일, 국제노동기구(ILO) 제 100대 총회에서는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협약(Convention on Decent Work for Domestic Workers)’을 채택하였습니다. 가사노동자 문제는 여성노동과 비공식 노동, 비정형 불안정 노동, 이주노동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국제 노동계의 마지막 현안’ 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협약에 대한 표결에서 찬성 396표, 반대 16표, 기권 63표라는 압도적 찬성을 기록하였으며, 한국 정부도 협약 채택에 찬성표를 던진 바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사노동자들은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로부터 배제되어 일터 내 부당대우, 착취, 폭력, 성적 학대가 자주 일어나지만 마땅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협약마련의 시작이었습니다. ILO의 협약의 핵심은 ‘가사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하되 다른 노동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협약 전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C189 - Domestic Workers Convention, 2011 (No. 189)



한국에서 가사노동자가 ‘노동자’가 되기까지


2011년 ILO 협약 채택에 찬성표를 던지기는 했지만, 한국정부는 아직 협약비준을 한 상태는 아닙니다.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되므로 비준에 앞서 관련 국내 법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었을 때부터 ‘가사사용인은 적용에서 제외한다(제11조)’는 문구로 인해 가정 내에서 일하는 모든 가사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인권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69년이 지난 2022년 6월 16일, 국제 가사노동자의 날에 맞추어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가사근로자법은 가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정부가 인증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사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으로는 가사노동자가 근로자임을 인정하는 최초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가사근로자법 법령 전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등에 관한 법률



이주가사노동자 도입 논의


현재도 외국인이 국내에서 가사근로자로 일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재외동포(F-4)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한국 영주권자의 배우자, 결혼이민 비자로 입국한 장기 체류 외국인이기 때문에 가사·돌봄 분야 취업이 가능합니다. 여기에 국내 제조업, 건설업, 농업·어업 분야에 취업하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도 앞으로 가정에서 돌봄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확대하겠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개편방안입니다.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 계획을 밝히면서 여성, 노동, 이주민 관련 전문가들은 제도의 섣부른 도입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5일 외국인 가사근로자 대국민 토론회에서 고용부는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도입하기에 앞서 다양한 실태조사와 여론조사를 거쳐 서울시와 함께 구체적인 안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더불어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고용허가제(E-9 비자)를 통해 시행한다는 방침이어서 ‘최저임금보다 더 싼 노동력을 활용’ 하자는 일부의 방향과는 선을 그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주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보장되면 이제 우리는 인구절벽의 위기, 인종주의와 성차별을 잘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요?



여성x이주민x가사노동자가 교차하는 곳에서


ILO에서는 2019년 기준 전 세계 7,560만명의 가사노동자가 존재하고, 이중 76.2%는 여성입니다. 돌봄을 비롯한 가사노동이 가난한 국가 출신의 이주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혹실드는 ‘전지구적 돌봄 사슬’(Global Care Chain)'로 규명한 바 있습니다. 한편 일본 사회학자 오가와 레이코는 동아시아의 경우 지역 및 국내의 젠더, 계급, 민족에 따라 돌봄 사슬이 구성된다고 밝히면서, 이를 ‘지역적 돌봄 사슬’(Regional Care Chain)'로 규정하였습니다.


러셀 혹실드 "Global Care Chain and Emotional Surplus Value". 2014

오가와 레이코 "Care and Migration Regimes in Japan, Taiwan, and Korea". 2017


한국사회에서도 지역적 돌봄 사슬 속 외주화된 가사노동자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60-70년대 빈곤한 농촌에서 상경한 저연령-비혼여성들이 식모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80-90년대에는 중년의 도시 빈곤층 기혼여성들이 파출부로 나섰습니다. 2000년대 이후 노인돌봄, 아이돌봄을 비롯한 가사영역에서 조선족 이모들의 얼굴을 만나곤 합니다. 저임금, 고용불안, 비공식 노동, 부당대우, 폭력노출 등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지역, 계급, 민족 등 그 시대의 취약 여성 집단이 비공식 가사노동시장에 유입되어 그 역할을 전담하게 된 이유에는 가사노동 자체가 저평가되어 온 역사가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


가사노동자법이 시행된지 이제 약 1년이 지났습니다. 표준화된 고용관계가사노동자를 노동법의 적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를 약화시키는 주요한 기제가 되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ILO의 협약에서는 모든 가사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가사노동이 지속적으로 저평가되어 온 구조 속에서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이 무엇인지를 상기하는 동시에,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도 이 권리의 토대가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16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국가인권위원장 성명 "외국인 가사노동자, 차별없이 노동권 보장되어야"


글쓴이: 정지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건강권팀)



*더 읽을거리

최영미, 윤지원, 표대중. 이주 가사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서울시 노동권익 증진활동 지원사업. 2017.

구미영, 오은진, 장미혜, 최영미.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최서리, 마루하 아시스, 김경미. 가사분야 외국인 고용의 쟁점: 해외사례 연구. IOM 이민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2013-04.



지난 기사 대한 구독자님의 질문
'precautionary principle'을 사전예방주의 원칙으로 표현하셨는데, 그간 사전주의원칙 혹은 사전예방원칙 등의 용어가 사용돼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사전예방주의 원칙 이라는 용어를 표준적인 용어로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이동욱 작가님의 답변
중요한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의사소통 및 위해소통에서 용어의 정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Precautionary principle은 사전예방, 사전주의, 사전배려, 사전대비 등의 용어로 번역하고 있으며, 하나의 단어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전예방•주의 원칙의 의미로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만 이 역시 표준 용어는 아닙니다. 명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영문 용어를 함께 병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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