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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의 열한 번째 영화는 〈걷기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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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형 영화비평편지 여담
2021.9.9. | No.11.

🏃 열한 번째 여담 🏃
[노력에도 끝이 있다]

2020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습니다. 2주간의 열정, 어떻게 즐기셨나요? 저는 양궁에 맘졸이고, 야구에 소리치고, 배구에 타오르며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렇게 올림픽은 폐막했지만 스포츠는 여전히, 언제나 우리 곁에서 뛰고 있습니다. 아마 각자의 방법으로 이를 즐기고 계실 텐데요. 올림픽에 이어 패럴림픽의 축제를 만끽하신 분들, 여자배구의 매력에 빠져 코보컵을 보고 정규리그 개막을 기다리시는 분들, 이미 야구나 축구 등의 경기 관람이 일상이신 분들, 혹은 올림픽 스타들의 팬이 되어 TV 채널과 유튜브 속 선수들을 찾아 헤매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코트와 트랙 위 불타는 열정에 감동하다 보면, "나도 선수들처럼 몸과 힘에 열중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지 않으시나요?
 
하지만 평소 잘 하지도 않던 운동을 갑자기 시작하기란 쉽지 않죠. 그렇다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걷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걷기왕〉의 주인공 만복이와 함께요.
 

이만복, 17세, 경보에 재능이 있…나?
 
걷기로 했으니 한번 걸어 봅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곳에서 잠시 창을 닫고 열 걸음만 걸어 보세요. 매일같이 걷는 걸음인데, 막상 오직 '걷기'를 위한 걸음은 어딘가 어색하지 않나요? 영화 속 만복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선천적 멀미 증후군이 있어 매일 두 다리로 왕복 4시간의 등하교를 하지만, 경보를 위해 코치님 앞에서 걸을 땐 어설프죠.
 
"공부는 하기 싫은데 뭘 해야 될지는 모르겠고
운동은 왠지 쉬울 거 같지?"
 
수지 선배의 말처럼, 역시 ‘잘’ 걷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남수지, 육상부 선배, a.k.a.수파르타
 
만복과 수지가 출전하는 육상 종목인 경보는 비인기 종목인 탓에 출전 선수도 많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적습니다. 나름 올림픽 정식 종목인데도요. 그러고 보니 2020 도쿄올림픽 경보에 우리나라 선수도 출전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최병광 선수가 남자 20km 경보에서 37위를 기록했답니다.
 
영화는 경보의 중요한 두 가지 규칙을 소개합니다.
 
첫째, 두 발이 동시에 지면에서 떨어지면 반칙
둘째, 지면을 딛는 다리의 무릎이 굽혀지면 반칙
 
이처럼 〈걷기왕〉은 잘 걷는 법을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수지 선배와 친해지고, 운 좋게도 인천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하게 된 만복은 출발신호와 함께 빠르게 선두로 치고 나갑니다. 끝까지 걸어 결승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하는데도 말이죠. 이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입니다. 아버지는 '1등으로 TV 탄 딸'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각자의 일로 조용한 교실 속 담임선생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제자를 응원합니다. 캐스터와 해설 위원은 오버 페이스로 걷는 만복이 '너무 빠르다'고 지적하며, 함께 걷던 선수들은 조급해져 덩달아 페이스를 올리죠. 이 장면에서 알 수 없는 것은 열심히 걷고 있는 만복의 생각뿐입니다.
 
천천히 가도 괜찮고, 꿈이 없어도 괜찮고, 조금 헤매도 괜찮다는 청춘 드라마의 교훈은 이젠 어쩌면 시시해졌죠. 하지만 이 영화는 솔직하게 클리셰를 밟는 연출을 가볍고 유쾌하게 수행하며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한국 B급 코미디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실없는 웃음, 어딘가 무서운 육상부 선배, 부상을 딛고 큰 대회에 출전한 주인공. 흔해빠진 요소들은 심은경이기에, 〈걷기왕〉이기에 귀엽습니다.
 
잠깐, 제가 혹시 "부상을 딛고"라고 했나요? 말을 고쳐야겠네요. 부상은 절대 딛고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부상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은 스포츠 영화로서의 〈걷기왕〉이 주는 교훈이에요. 나에 대해, 나의 몸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혹자는 몸이 상하더라도 독한 노력으로 무언가를 일구는 것이 진정 가치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몸을 유심히 관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태인지 알아보는 것은 발을 내딛는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래야 나의 페이스에 맞춰 걸어나갈 수 있는 거니까요.
 
아, 근데 나 왜 이렇게 빨리 달렸던 걸까?
어쩌면 그냥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떠밀려 강제로 걸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걷는다는 자각도 없이, 오늘의 일정이나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며, 혹은 몇 걸음 앞서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그러다 내딛는 걸음걸음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오면, 잠시 비켜서서 멈춰 보세요. 바쁘게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고정해버리는 겁니다. 노력하지 마세요, 멈춰도 괜찮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걷기왕〉은 잘 걷는 법을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잘 걷는 법은 결코 빠르게, 열심히, 노력해서 걷는 게 아니에요. 천천히 가고 싶을 땐 천천히 가고, 멈출 수 있을 땐 멈추는 것도 '잘 걷는 방법'이죠. 우리는 서로에게, 나 자신에게 열정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기요, 저기요! 계속 뛸 거예요 말 거예요?"
"아니요, 그만할래요."
 

 
계속 뛰어가실 건가요?
 
210909_세림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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