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상임위,

원전과 천연가스 그린 택소노미 제외 요구 결의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6월 14일, 유럽연합의 경제통화 상임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 상임위원회의 합동 회의에서 천연가스와 원전을 ‘EU 그린택소노미’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원전과 가스는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기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있지만, ‘지속가능한’ 에너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란?

'녹색분류체계'라고도 해요.

어떤 산업이 녹색 산업인가, 어떤 경제활동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가를 따져 그 범위를 정한 것입니다.

2020년에 유럽연합(EU)에서 처음으로 만들었어요.

이 정책 기준은 친환경 투자를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합니다.

친환경 사업으로 선정되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1조 유로 규모의 그린딜 예산을 쓸 수 있고, 탄소배출권 거래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도 하며, 투자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요.

배경

지난 2월 EU 택소노미에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을 조건부로 포함한 수정안(이자 최종안)이 확정됐습니다. 이 안은 7월 초 유럽의회 본회의의 표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의 택소노미 최종안은 사실 프랑스와 독일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작용한 결과물입니다. 프랑스는 원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노후 원전이 많은 만큼,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상당한 규모의 신규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한편 독일은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 천연가스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장해왔습니다. 결국 최종안은 프랑스와 독일의 정치적인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본회의 통과가 무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택소노미에 천연가스와 원전을 포함하는 것이 ‘푸틴에게 전쟁 자금을 대주는 것' 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는 유럽이 천연가스와 우라늄을 러시아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U는 지난해 기준으로 가스 수요의 약 40%, 농축우라늄 수요의 약 20%를 러시아에서 수입했습니다. 택소노미를 통해 천연가스 발전과 신규 원전 건설 등을 지원하게 되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 에너지 안보 차원의 위기의식을 느낀 것입니다. 독일 또한 택소노미 최종안에 반대할 것이라고 밝힌 상황입니다.

이러한 반(反) 푸틴 정서는 서로 다른 성향의 교섭단체들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좌파당(the Left)”에서부터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리뉴 유럽(Renew Europe)”에 이르는 다섯 개 단체가 택소노미 최종안 채택을 막기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난 6월 8일, 이 5개 교섭단체가 한 자리에 모여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원을 합법적으로 “그린워싱”하게 두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배경엔 '푸틴에게 전쟁자금을 줄 수 없다'라는 공통된 문제인식이 깔려있고요.

이들의 결의안은 14일 2개 상임위의 합동 회의에서 76대 62로 채택되었습니다.

결의안 채택의 효과는?

사실 상임위의 결의안 채택은 어떠한 절차상 효력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결의안 채택과 무관하게 택소노미 최종안 채택 여부는 7월 초 예정된 본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의미는 분명합니다. 최종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결의안 채택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인 동시에, 반대 여론에 큰 모멘텀을 제공합니다.

한국도 영향이 있을까?

이번 결의안 채택에 국내 에너지 업계도 긴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EU택소노미에서 원전이 제외된다면 국내 산업에도 직간접적인 악영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EU 택소노미 최종안에 원전이 포함됐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한국형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야한다는 주장의 주된 근거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단으로 원전 발전 비중 확대를 밝힌 만큼 한국형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습니다. 그러나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유럽연합(EU)의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서 원전 포함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고준위방사선폐기물과 사고저항성 핵연료 기준을 K택소노미에도 반영하겠다고" 했었는데요, 만약 원전 자체가 EU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을 시 국내 에너지 정책도 일부 변하게 될 여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