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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이 좋아서! |  박찬은

첫 해변 캠핑의 추억(Feat. 홍반장)  

“저기요~”

밤바다를 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내게 다가온 청년. 이것이 드디어 말로만 듣던 바닷가 헌팅인가? 헌팅이 처음인지, 무척이나 결연한 그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여기 해변이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 12시부터는 폐쇄됩니다. 나가주셔야겠는데요.” 헌팅이 아니라 ‘퇴거 명령’이었다. 오바에 육바까지 더해 김칫국을 통째로 드링킹했던 고성 아야진 해변의 이 에피소드 이후, 밤바다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쓸데없이 방어 심리가 생겨났다.


“좀 도와드릴까요?”

이번에도 헌팅은 아니었다. 바닷가에 정장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차림새의 나는 금방이라도 강풍에 날아갈 듯한 텐트를, 떠나는 연인 붙잡듯 절박하게 붙잡고 있었다. 7cm 힐은 꽃게 숨구멍처럼 모래밭 위에 뽕뽕 구멍을 내며 자꾸만 나를 모래톱 위에 화분처럼 심어 놓았고, 타이트한 H라인 스커트 때문에 뒤뚱거리며 어정쩡한 자세로 팩(텐트를 바닥에 고정해주는 일종의 못 역할을 하는 도구)을 박느라 20분째 사투 중인데 헌팅이 웬 말이랴.  

 

스커트에 힐만 신고 모래 캠핑에 도전하다니


때는 바야흐로 캠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몇 년 전 가을, 안면도 북쪽 끝에 위치한 백사장항이었다. 이름부터 무려 ‘백사장’이 아닌가. 입을 열면 모래가 그대로 씹힐 만큼 바람이 강한 그곳에서, 접지력 좋은 샌드 팩은커녕 짧은 일반 팩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 앞에 선 콩쥐처럼 헐거운 모래톱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다. 생애 첫 퇴근박 장소를 하필이면 바람 부는 모래 해변으로 택한 과거의 나야, 정신 차려! 당시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이미 사이트 피칭을 마치고 새우를 구워 소주잔을 기울이던 옆 텐트 일행이었다.

 

일주일 내내 쓴 기사를 대차게 까인 후 발작적으로 차를 몰아 도착한 해변이었다. 노트북 속 ‘안면도대하축제’ 팝업 광고가 돌연 눈에 띄었고, 그 광고 속에서 문득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새우가 보였고, 그 패기와 생명력을 내 것으로 치환하고 싶었다. 그러나 옆 텐트 베테랑 캠퍼들의 30분 넘는 실랑이에도 팩은 번번이 쓰러졌고, 대하 어판장과 식당도 하나둘 문을 닫고 닫았다.


“저희가 쳐놓은 텐트가 2개니까, 1개 빌려드릴게요! 일단 요기부터 하세요!” 낯선 타인의 호의를 거절하기에는 배가 너무 고팠고, 스커트와 힐 차림으로 이 고생을 했는데 결국 실패한 텐트의 후줄근한 주름이 대차게 까인 기사만큼이나 고달프고 서러웠다. 무엇보다 이미 내 코가 백사장항을 맴도는 새우 굽는 냄새에 크게 벌렁대고 있었다.    

 

안다. 여행지에서 타인의 갑작스러운 친절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라는 것을. 주로 혼자 다니며 여행지를 취재하는 내게 원하지 않는 친절을 베푸는 빌런들의 습격은 게임 업데이트 메시지만큼이나 비일비재했다. 등산을 하면서는 산악회원들이 “여자분 혼자 산에 오셨네.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라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권하고, 식당에서 혼술이라도 할라치면 얼굴 불콰한 누군가가 "왜 혼자 드세요? 안주 살게”라며 오지랖을 부렸다. 그러나 내 짧은 캠핑 일대기 속에서 빌런은 가끔이었고, 캠핑 초보를 긍휼히 여기는 홍반장들은 자주, 어디에나 있었다. 손에 익지 않은 새 타프를 함께 들러붙어 쳐주느라 자신들의 식사도 중단했던 포천 계곡의 옆 사이트 일가족, 폭우를 맞으며 부서진 텐트를 함께 보수해준 가평의 캠장님, 강풍과 함께 내 멘탈도 날아갈 뻔했던 후진항에서 바람처럼 나타나 ‘오다 주웠다’는 바이브로 모래주머니를 두고 사라졌던 캠퍼 고수까지. 이번 역시 새우와 소주를 내어준 이웃 홍반장의 친절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난 그 쌀쌀한 가을 날씨의 서해안 바닷가에서 영원히 극복 못할 ‘해변 캠핑’ 트라우마를 얻었을 것이다.

좋은 이웃은 어디에나 있다


일단 팬 위에 새우가 타지 않도록 소금을 깔고 새우를 눕힌 후 뚜껑을 덮는다. 딱딱한 껍질 아래 반짝이던 새우의 투명한 살이 불에 달궈져 하얗게 변하면 반대쪽으로 한번 뒤집어준다. 머리는 잘라 나중에 한데 모아 버터에 튀기듯 구워 먹는다. 꼬리 끝 색깔이 더 화려하다는 자연산 대하 대신 꼬리 끝이 암갈색인 양식 대하였지만 우린 파리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 온 듯 천천히 새우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음미했다. 이렇게 맛있는 새우를 먹었는데 나쁜 일이라곤 일어날 리가 없다. 자연산이면 어떻고 양식이면 어떤가. 출신 성분에서 자유로운 새우들이 흰 소금 위에서 상모를 돌리며 내 입 속에서 한바탕 사물놀이를 벌여댔다.


홍반장 일행과 나는 비슷한 또래에 고만고만하게 힘든 서로의 고민에 대해 진중하게 상담했다. 정작 데스크에게 대차게 까였던 낮의 일은 뇌리 너머로 새하얗게 사라졌고, 우린 새우를 넣은 해장라면까지 먹으며 새하얗게 밤을 불살랐다.

 
물론 여행지에서 나의 안전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내 공간과 시간을 타인에게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하는 순간도 분명 있다. 배낭에 호신용 호루라기와 고춧가루 스프레이를 상비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늘 꽁꽁 싸매고 살 수는 없다. 가끔은 타인의 친절을 의심하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좋을 때도 있다는 얘기다. 빌런들이 모래밭 속에서 가끔 나오는 깨진 유리병이라면, 좋은 이웃은 그걸 충분히 덮고도 남는 모래사장처럼 많았다. 그렇게 만난 이들이 내게 보여준 각자의 우주는 가끔 기대치 못한 좋은 곳으로 날 데려가곤 했다.


다음날 아침, 이름부터가 지나치게 귀여운 해상인도교 ‘대하랑꽃게랑다리’ 위에 올라서니 고무 작업복을 입은 홍반장 일행이 물 속에서 뜰채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오는 봄엔 꽃게축제가 시작되겠지. 대하랑꽃게랑 다리를 지나 드르니항에 가서 꽃게를 먹고 가을엔 대하를 먹으러 다시 백사장항엘 와야겠다. 그리고 다시 해변의 홍반장을 만나면, 이번엔 내가 100점 짜리 자연산 대하 구이를 대접할 것이다. ✉️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 Words |  반드시 갚아야 할 것


당한 것은 반드시 갚는다. 멋진 말이죠. 세상을 살다 보면 복수와 응징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처절한 복수와 무자비한 응징이 인생을 편하게 할 때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 인생에 더 도움이 되는 건 ‘신세 진 것은 반드시 갚는다.’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인생을 더 풍성하고 보람차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alone&around

📎 Clip |  질문에 관하여


‘청문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청하고 질문하는 스승을 의미합니다. 경청하고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이 곧 스승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_ 구본형, 『마음편지』 중에서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이 사람이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집중해서 읽고, 밑줄도 치고, 질문도 하는 것이 그 책을 최대한으로 읽어 내는 방법이다. 반대로 글을 쓰는 일 역시 나에게 집중하고, 질문하고, 답하고, 다시 질문하는 일이다. 책은 저자의 경청과 독자의 경청으로 완성된다.

_ 김겨울, 『책의 말들』 중에서


언젠가 팟캐스트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말했다. “나쁜 질문을 던지면 아무리 좋은 답을 찾아낸다고 해도 우리는 그다지 멀리 갈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을 던지면, 비록 끝내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답을 찾는 과정 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 있게 될 것입니다.”

_ 김민철, 『내 일로 건너가는 법』 중에서


당연한 관계, 다 안다고 믿는 관계, 언제든 내 편인 관계. 사실 ‘진짜 질문’이 필요한 건 이런 관계가 아닐까 싶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는 없다. 소중할수록, 사랑할수록,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대답해야 한다.

_ 이하루,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중에서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경쟁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마라 그 대신 ‘더 큰 성공을 위해 경쟁심을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자신에게 질문하라.

_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 1일 3매 |  최갑수

한정된 목적, 간결한 인생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이렇게 썼더군요. 이 문장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 서 있었습니다. ‘한정된 목적이라…….’ 글쎄요, 목적 또는 목표가 과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빈약한 것이 문제였죠.


그러다 보니 저는 혼자서 심플하게 살아가는 쪽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저란 인간은 단체나 모임, 동호회, 그룹 같은 것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아니예요. 직장생활 8년, 프리랜서 여행작가 생활 이십여 년을 하며 깨닫게 된 사실이에요. 사람과 어울리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함께 일을 하는 건 뭔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해요. 그런 점에서 여행작가라는 직업은 잘 선택한 것 같습니다.


여행작가라는 직업은, 무슨 일을 하냐면, 단순하게 말해 사진을 첨부한 여행 보고서를 쓰는 일입니다. 거짓말 같지만 이게 전부예요. 혼자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지에 가서 현지인 또는 여행자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슬그머니 셔터를 누르고 돌아오는 것이 여행작가의 일입니다. 돌아와서는 짐을 꾸려 다시 떠나죠. 낯선 여행지의 호텔에서 지난 여행에 대한 보고서를 씁니다. 사회생활이라고는 가끔 동료 작가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고 수다나 떠는 게 전부죠. 뭐,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깊은 관계는 불편해요. 그런 일을 하는 틈틈이 자전거를 타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죠. 제 대부분의 시간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따금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돈을 많이 벌기는 싫고(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하니까요), 그냥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면 로또를 사죠. 물론 지금까지 당첨되어 본 적은 없어요. 가끔, 아주 가끔 질투가 날 때도 있는데, 좋은 여행기나 멋진 사진을 볼 때,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여행을 떠나는 다른 작가들을 볼 때면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재능보다는 쿨함이지.’ 이렇게 생각하며 오늘 저녁에 먹을 파스타를 고민해버리는 쪽을 택합니다. 외로울 때가 자주 있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가 외롭지.’ 이렇게 생각하며 역시 프라이팬을 달구고 파스타 면을 볶는 것으로 견딘답니다. 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책없고, 제멋대로인 삶이군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저는 단체나 모임, 동호회, 그룹 같은 일에는 그다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이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키 상이 말했듯이 “세상에는 현악 사중주곡을 만드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상추나 토마토를 재배하는 인간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도꼬다이’가 어울리는 인간인 것입니다.


‘알아두면 좋을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이 쉽게 피곤해지는 요즘. 차라리 ‘색채가 없는’ 외톨이가 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푸념해봤습니다.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하고, 간결할수록 인생은 행복할 확률이 높다.’  이런 생각이 드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

최갑수는 시인이며 여행작가 겸 편집자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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