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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6 캠핑이 좋아서 25 | 박찬은

관매도 톳칼국수에서 진심을 느끼다

 
 
 
 
 
 
 
 
 
 
 
 
 
매주 금요일, 박찬은 작가의 '캠핑이 좋아서'를 보내드립니다.

🏕️ 캠핑이 좋아서 25 | 박찬은

관매도 톳칼국수에서 진심을 느끼다

 

“12시 배 놓쳤는데 오늘 관매도 갈 수 있는 방법 없지? 다른 섬에서 들어가는 방법은?” 수백 번 섬을 여행한 섬 전문가라 해도 이미 떠난 배를 잡아줄 순 없었다. 섬 캠핑 구루 김민수 여행작가에게 외연도, 굴업도와 함께 ‘3대 블랙홀 섬’으로 관매도를 추천받았으나 육신의 지배를 착실히 받은 손가락은 4시 알람을 꺼버렸다. 지금은 6시 반. 그리고 진도항까지는 5시간 거리로 400킬로미터를 운전해야 했다. 결국 진도항 대합실과는 다음 날 아침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발권을 마친 후 배낭을 메고 일어서는데 진도항 매표소 창구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엇! 저희 한 명 빼고 모두 신분증 없는데요?” “그럼 얼른 저기 기계로 등본 떼세요!"(매표원) 10분 뒤 배는 떠나는데, 어머니 포함 가족 셋을 데리고 왔다는 회색 원피스의 그녀는 파랗게 질려 있었다. 간만에 떠나온 여행일 텐데 10분 안에 3명의 서류를 다 뗄 수 있을까. 내가 어제 배를 놓쳐서일까, 그녀가 아침부터 서둘렀을 가족여행을 망칠까 봐 보는 내가 다 불안해졌다.


헉, 출발 5분 전! 남 걱정할 때가 아니군. 배낭을 멘 채 엔진을 돌리고 있는 배를 향해 줄달음쳤다. 크레모아 선풍기와 스노우픽 컵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철컥거린다. 집채만 한 배낭을 둘러멘 채 헐레벌떡 배에 뛰어오른 나에게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진다. 하아, 크롭티를 괜히 입었나. 대합실에 배낭을 내려놓고 캔맥을 든 채 사람이 적은 3층으로 향한다. 그러나 또다시 시선이 쏟아진다. ‘아맥(아침맥주)’이 그렇게 이상해? 맥주 캔을 짐짓 가방 뒤에 감추던 그때, 바람에 머리 주변에서 뭔가 팔락거리는 게 느껴진다. 알고 보니 급하게 마트에서 산 뒤 태그도 떼지 않은 채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 역시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남 일에 관심이 없다.


배는 조도와 관사도, 소마도와 모도, 대마도(
大馬島) 5개의 섬을 거쳐서야 관매도에 닿았다. ‘국립공원 1호 명품마을’이라는 소개가 눈에 띈다. 무려 ‘국립’과 ‘명품’이라는 명사가 함께 붙어 있다. 국토해양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지정한 관매도는 야영장 솔숲마저도 산림청 ‘아름다운 숲 대상’ 출신이다. 일말의 불안도 없이 잘 자란 엄친아, 1등을 놓치지 않는 섬만의 여유롭고 고급 진 바이브. 선착장에서 500미터 정도 걸으면 야영장에 도착하는 데다, 야영장 운영 시즌이 아닌데도, 깔끔하게 정비된 화장실과 개수대를 오픈해 객들을 배려하고 있다. 하루 먼저 관매도에 입도한 A를 만나 얼음과 캔맥주 등 보급품을 전달하고, 관매도 특산물 쑥막걸리를 사러 ‘선미네집’으로 향했다.

선미네집 할아버지는 막걸리를 사러 온 우리에게 수박부터 쥐여 주었다.

“수박 키우신 거예요?”

“사 왔어, 허허.”(할아버지)

“한데(덮거나 가리지 않은 곳) 어디서 자?”(할머니)

“텐트 치고요.”

“그랑께! 무서워 갖고~!”(할머니)

“나쁜 사람 없잖아요(웃음). 여기 쑥으로 막걸리 담그신 거예요?”

“천지가 쑥이여. 해풍을 맞아서 맛이 좋아. 뒤끝도 없고 다음 날 머리도 안 아프고.”(할머니)

막걸리 한 되(1.8리터)를 들고 텐트로 향했다. 진한 쑥 향기와 함께 어우러진 신맛에서는 특유의감칠맛도 났다. 막걸리를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불타오르는 우리 얼굴처럼 관매해변의 서쪽 하늘도 빠른 속도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사이 수류탄처럼 해를 숨겨놨다가 때가 되어 한날 한시에 하늘 전체로 폭발시키는 느낌. 이날부로 내 서해 낙조 최고봉은 관매도로 바뀌었다.

 
선미네집 할아버지 말대로 막걸리를 됫병 마셨는데도 다음날 숙취는 1도 없다. 해풍 맞고 자란 쑥이라 그런가. 커피에 크로와상으로 아침을 먹은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 근데 샤워할 곳이 있었나. 야영장에서 100미터 거리 식당으로 향해본다. “사장님, 혹시 여기서 샤워 좀 할 수 있을까요? 요금 드릴게요.” “여기 우리 씻는 덴데, 여기서라도 할래요?” 그녀를 따라 들어간 곳은 식용유가 가득 쌓여 있는 창고. 일어서면 국자와 가위가 걸려 있는 뻥 뚫린 창 너머로 소주에 백반을 드시고 있는 손님들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식용유 옆에서 쪼그려 앉아 샤워를 할 뻔한 위기를 극복하고, 화장실에 달린 샤워기로 A와 바닷물을 헹궈내며 길게 킬킬댔다. “야, 비누칠하다가 실수로 일어서면 손님들 안구 테러다.”(웃음)

머리를 말린 뒤에는, 재료가 동나서 어제는 실패했던 톳칼국수에 재도전했다. “밀가루에 톳이 들어가면 찰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반죽해놓고 하루 숙성시켜요.” 지금도 매일 톳가루를 넣은 밀가루를 반죽하고 숙성시켜 내놓는다는 톳칼국수 사장님은 옷 한 벌당 수백 번을 재단하는 왕실 재단사처럼 결연하게 반죽 앞에 손을 모았다. 자신의 철학대로 시간을 들여 기꺼이 완성해 낸 것들은 옷이든 음식이든 장인 정신이 서려 있는 법. 그녀의 조언대로 칼국수 위에 톳장아찌를 얹어 먹어본다. 톡톡 터지는 신선한 톳의 맛이 숙성을 거친 아들 톳칼국수와 명쾌한 컬래버레이션을 이룬다. 야, 이런데 쑥 막걸리를 어떻게 또 안 시키냐. A와 나는 WBC 마운트에 선 투수와 포수처럼 빠르게 수신호를 주고받은 뒤 막걸리를 주문한다. 7가지 기본 찬만으로도 막걸리는 쭉쭉 들어갔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백반을 먹고 있던 여행객 부부의 시선이 다시 느껴진다. 아까부터 우리 테이블 위에 놓인 2리터짜리 쑥 막걸리 병을 흘깃흘깃 보던 눈이다. 남편이 말한다. “여보, 저거 다 마시면 당신 못 알아보겠는데. 사장님, 막걸리 반 되는 없지요?” 새로운 술 맛보고 싶은 저 심리는 내가 잘 알지. 한 잔 드릴까 보다. 하지만 A가 팔꿈치로 날 말린다. 그들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 할 때에서야 A가 술잔을 건넨다. “맛이라도 보실래요?” “고맙습니다! (꿀꺽꿀꺽) 맛있네!” 식당에서 파는 막걸리를 옆 손님과 나누는 것을 식당 주인이 껄끄러워 할까 봐 나중에야 술을 건넨 것이었다. 술을 중심에 둔 어줍잖은 인류애로 관매도 소상공인의 하루 장사에 영향을 끼칠 뻔한 나를 A는 그렇게 구해주었다. 

모닥불과 막걸리는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둘러앉아 함께 불을 쬐고, 막걸리 한 되를 나누어 마시는 마음. 배는 놓쳤지만 수박을 얻어 먹고, 샤워실을 빚졌으며 쑥막걸리로 남에게 보시하는 여행. 배 안에서 관매도로 들어갈 때 만났던 흰색 원피스의 그녀를 만났다. 가족 여행을 무사히 마친 걸까. 다음에 관매도를 찾으면 30년 사진 기자로 생활하다 바다를 실컷 찍어보고 싶어 항해사가 됐다는 선장도 만나고, 말린 생선을 식칼로 잘라 고추장과 함께 내어주는 섬집 슈퍼에도 가봐야겠다. 조도 면장 딸이 어쩌다 쪽배 타고 관매도로 시집왔는지 그 사연을 들어봐야지. 여행을 한다는 건, 어쩌면 읽어주길 원하는 일기를 쓰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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