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DMZ 피스트레인 후기🕊️

전국 최대 히피 모임 ‘DMZ 피스트레인 2025’ 일요일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역대 다녀온 DMZ 중 감히 최고였는데요. 아직도 뻐렁치는 제 심장을 부여잡고 후기를 낋여왔어요.

먼저 DMZ의 가장 큰 매력인 숨은 보석 같은 해외 아티스트 라인업이 또 한 번 빛을 발했습니다. 23년도는 ‘HMLTD’ · 24년도는 ‘Porridge Radio’였다면, 올해 제 픽은 두 펑크 밴드 ‘TENDOUJI’와 ‘Lambrini Girls’였어요. 얼굴에 큰 글씨로 ‘사랑’을 페인팅하고 무대에 올라 대낮부터 관객들과 40분을 내리 달린 텐도지. 마지막 곡인 ‘Tokyo Ash’에서는 저도 정줄을 놓아버렸습니다. 음원부터 범상치 않았던 람브리니 걸스는 처음 보는 충격적인(positive)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곡 ‘Help Me I’m Gay’ 때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과 ‘퀴어 연대’를 외치는 등 사회 이슈에 대한 소신 발언, 무대 매너, 관객과의 호흡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공연 중반부터는 예상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후두둑 빗소리가 들리자마자 커다란 비닐에 속전속결로 짐을 담은 후 홀연히 돗자리를 뜨는 관객들에게서 위기 상황에 더욱 빛을 발하는 K-국민성의 면모를 느꼈습니다. (우천 대비 두꺼운 비닐 챙기기… 메모)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할 때 마침 ‘김뜻돌’이 무대에 올랐는데요. 2년 전 같은 자리에서 죽음과 이별에 맞서 노래하자 외치던 그녀는 더 큰 사랑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 ‘속세탈출’ 무대로 다 함께 원을 만들며 뛰다가 마지막 곡 ‘요가난다’에서는 나란히 줄지어 서로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는 시간을 가졌어요. 비가 내려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흐르는 내 눈물을 감출 수 있었으니까...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jisokuryClub’, ‘와와와’까지 평화 열차는 쉼 없이 달렸습니다. 와와와 공연 중에는 기상 악화로 무대 옆 스크린까지 나가는 바람에 한층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밴드의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그 광경이 착붙이었습니다.

가장 기대했던 ‘Japanese Breakfast’는 넓은 장르 스펙트럼이 특히 돋보이는 밴드였습니다. 슈게이즈, 인디, 신스팝을 현란하게 넘나드는 와중에 현악기 소리가 웅장하고 로맨틱했던 ‘Paprika’ 무대가 가장 좋았어요. 바닥에 진흙 웅덩이가 생기고 폭우로 눈 뜨기가 좀 힘들어질 즈음, 밴드는 김장미의 ‘햇님’이라는 커버 곡으로 공연을 마무리했습니다. 비록 햇님은 없었지만 가사처럼 다 함께 손을 잡고 라라라를 외치며 진흙탕을 휘졌던 그 찌뿌연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순간 모래 바닥이 아닌 안갯속 라벤더 꽃밭에 있다고 느껴질 만큼 근사했답니다.

비 오는 철원에는 마지막으로 ‘사랑과 평화’가 있었습니다. 궂은 날씨에 벌써 지쳐버린 젊은이들을 비웃듯,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이 정도는 거뜬하다며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와 같은 화려한 명곡 메들리를 쉬지 않고 들려주었습니다. 덕분에 모두가 “함께 가야 해”를 떼창하며 진흙밭에서 찐득한 동지애를 쌓았습니다. 귀가행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여기저기서 “함께 가야 해’를 함께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음악 하나로 불편함조차 그저 낭만이 되는 피스트레인. 이 정도로 이름값하는 페스티벌이 있을까요. 끊임없이 평화 에너지를 주고받는 아티스트와 관객들로 올해도 참 즐거웠습니다. 마침 올해의 절반이기도 했던 6월 15일. 오늘의 기억으로 남은 한 해도 꿋꿋이 살아가자는 뜻돌의 말처럼, 우리 모두 DMZ의 추억을 안고 즐겁게 살아갑시다. 그래도 좀 힘든 날이면 저는 사랑과 평화 선생님들의 메시지를 되뇌렵니다. 너무 기죽으면 안 돼. 우리 모두 함께 가야 해!

ps. DMZ 히든 라인업이었던 러쉬. 덕분에 공연장, 화장실, 심지어는 돌아가는 버스 안까지 향기로왔어요. 그래서 선생님들 펜타도 오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