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술집의 100년을 말한다, 경리단길 <한국술집 안씨막걸리>

2023.04.05.

오늘의 에디터 | 쇼블 @__jaeseo

이야기를 담고 싶은 F&B 기획자. 불로소득을 꿈꾸며 매일 야근을 하고 있다.

낮술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한적한 평일에 연차를 써서 낮술 한 잔을 해야겠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는 한국 술집의 원형을 찾겠다는 비전하에 10년 동안 운영되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 등에서 경험을 쌓은 안상현 대표가 우리 술의 맛이 와인, 맥주, 사케보다 떨어지지 않는데 가치를 인정 못 받는 것에 의구심을 갖고 도전했다. 그렇게 외국을 따라 하지도, 국뽕에 취하지도, 유행에 휩쓸리지도 않는 100년 가게를 만들고자 시작했고 그 노력은 미슐랭 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되며 작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안 대표가 말하는 한국 술집의 원형은 단순히 좋은 술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반주’라는 이름으로 식사와 술을 곁들인 그 문화를 팔고 있다. 모든 음식과 술들이 서로에게 조화가 이뤄지는가의 관점에서 선택되고 만들어진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기는 힘든 외관이다. 오른쪽 상단에 작은 글씨로 상호를 적은 것 외에는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외부에서는 알기 어렵다. 좁은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차가 가득 들어찬 경리단길과 달리 작은 정원이 고요하게 맞이해준다. 이 정원을 보고서야 가게의 외벽이 외부와의 구분을 통한 새로운 경험으로의 초대를 말하는구나 혼자 해석해볼 수 있었다.

솔방울 모양을 띤 사람 형태의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면 천장의 웅장한 대들보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가운데 둥근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전체적으로 어둑한 공간에 하이라이트 조명이 놓여있다. 술과 음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조명을 세팅한 듯하다. 그 덕분에 다른 손님들과의 물리적인 간격이 넓지 않음에도 동행인과 음식, 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음식은 크게 한입거리, 안주, 밥과 반찬 그리고 마무리 음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나물과 같은 음식은 절기상 맞는 재료로 변경되고 메뉴들 또한 제철에 맞게 바뀐다고 하니 최신 메뉴들은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방문 전에 확인해보자.

음식을 뒤로 하고 페이지를 넘기면 소주, 청주, 탁주의 순서로 술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카테고리마다 저마다의 분류법으로 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드링킷은 ‘반주’의 취지에 맞게 3가지 음식을 주문한 뒤, 아래 1인당 30,000원의 페어링 코스를 주문하여 음식에 맞는 술들을 추천받아 마셔보았다. 하나의 술이 아니라 음식과 함께 먹는 ‘반주’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드링커이라면 이 코스를 추천해 드린다.

첫 잔 / 청포도 / 탄산감

🍶 꽃잠

🍶 도수 : 6.0%

🍶 가격 : 10,000원 (한 병)

높기 보다는 넓은, 화려하기보다는 차분한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여행자들에게 쉼의 공간이 되어주는 ‘별무리’라는 이름의 민박집이 있다. 여행자들의 목축임이자 동네 사람들의 새참이었던 막걸리가 2016년부터 ‘꽃잠’이라는 이름을 얻고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꽃잠’이라는 이름은 ‘아주 잘 잤다’ 혹은 ‘잠깐 자더라도 깊게 잘 잤다’는 뜻이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의 첫 잔은 ‘꽃잠’이었다.

지리산의 맑은 물과 쌀 그리고 누룩으로만 빚었다. 가벼운 바디감에 삼키고 난 뒤 목을 치는 탄산감이 좋다. 거기에 더해 청포도의 달콤함과 싱그러움이 함께 있어 첫 잔으로 한입거리 메뉴들과 제격이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페어링 코스를 주문하여 ‘꽃잠’으로 첫 잔을 받았다면 반드시 당부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아끼지말고 쭈욱 들이켜서 드세요” ‘꽃잠’의 매력인 바디감, 탄산 그리고 청포도의 달콤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깝더라도 한 번에 다 마셔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아깝다면 한 병 더 주문하자.

조청 / 가벼운바디 / 기름진음식

🍶 우렁이쌀 청주

🍶 도수 : 14.0%

🍶 가격 : 55,000원 (한 병)

1930년 논산의 작은 양촌마을에 문을 연 양촌양조장에서 빚은 술이다. 전통 양주법을 고수하고 있으며 재래식 자연 통풍 구조를 갖춰 주조 시 온도와 습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해뒀다. 이곳에서 빚어내는 ‘우렁이쌀 청주’는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우렁이를 사용하여 무농약으로 재배한 논산 찹쌀로 빚어내고 있다.

조청에 물을 탄 듯한 은은한 단맛이 난다. 청주, 약주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꾸덕하고 달달하기만 하다는 편견이 있어 선호하지 않았는데 이 술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저희가 가진 술들 중 가장 맑아요”라고 말할 만큼 가벼운 바디감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이었다. 함께 곁들일 음식으로는 기름진 음식이나 아래에 소개할 ‘직접 무친 나물’과 조화가 좋다. ‘우렁이쌀 청주’의 은은한 단 맛이 나물의 단 맛과 어우러져 감칠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달지않은 / 고급진 / 산미있는

🍶 대몽재 1779

🍶 도수 : 16.0%

🍶 가격 : 82,000원 (한 병)

한 달에 300병만 생산하다보니 업장에서도 메뉴판에는 올려두지 못 하고 페어링 코스를 주문한 손님에게만 한 잔씩 내어드리고 있는 술이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인 경주 최부잣집에서 만들고 있다. 1779년 경주 교동에 터를 잡은 뒤 “100리 안에 굶는 이가 없도록 하라”라는 가훈으로 지역 사회로부터 신망을 얻고 의병부터 독립투사까지 사회의 모범이 되어 오던 곳에서 빚은 술이다. 오랜 세월 가문의 가치를 지켜온만큼 잘 지켜온 양조법으로 빚은 술을 맛볼 수 있음에 먼저 감사드린다.

특히 이 주병(酒甁)은 눈에 띈다. 신라 시대 토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병으로 입구부터 내려오는 유려한 곡선과 두툼하여 안정적인 바디가 인상적이다. 이 디자인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 “브랜딩이란 무엇일까”하는 고민이 든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담담히 설명하고 있어, 수준이 다른 브랜딩을 경험한 것 같다.

달지 않은 술이다. 과하지 않은 누룩향과 약간의 신 맛이 마지막으로 서빙된 음식인 기름진 ‘한치 순대’와 잘 어울린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가 외국인 고객이 많은 것을 감안하여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당도있는 술들을 중심으로 준비하셨는데, 이 술은 유일하게 달지 않은 술이라고 소개해주셨다.

곡물향 / 중간바디 / 탄산감

🍶 안씨막걸리

🍶 도수 : 7.5%

🍶 가격 : 30,000원 (한 병)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업장의 이름을 따 빚은 첫 번째 술 ‘안씨막걸리’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가 컨셉을 정하고, 지난 바틀리스트 편(🔗)에서 소개한 ‘서울효모방’에서 빚어냈다. 의사, 엔지니어, 생명과학자, 물리학자 등 다양한 분양의 전문가들이 모여 전통주를 현대 과학의 문법으로 만드는 곳이다. 그만큼 <한국술집 안씨막걸리>가 원하는 맛을 가장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곳과 협업하였다고 한다.

달달한 곡물향이 매력적이다. 일견 곡물이라고 하면 걸쭉한 풀 바디 질감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과하지 않고 오히려 입 안에서 탄산감도 느낄 수 있어 그야말로 음식과 함께 먹기 좋은 술이라 할 수 있다. ‘안씨막걸리’는 김지현 작가의 8가지 도자기 병에 담겨져 나온다. 위 사진 속의 그림은 건축가가 그린 안씨막걸리의 공사 전 초기 스케치 도안이다. 나머지 7가지 병에 그린 이야기들은 주문과 함께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어떤 그림과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을지 기대하는 것도 좋다.

🌮 밀전병

🌮 가격 : 5,000원 (한 점 당)

밀전병 위 열무 김치와 돼지 갈비를 올리고 그 위에 옥수수 소스와 방아 잎으로 맛과 향을 더했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먹은 것들 중 단일 메뉴의 맛으로는 단연 최고였다. 전병은 쫄깃해서 씹는 재미가 있었고 매콤한 돼지 갈비와 달콤한 옥수수 소스가 조화로운 와중에 산뜻한 방아 향이 그냥 저냥 먹을 수 있는 음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주장한다. 밀전병을 한 입 먹은 후 ‘꽃잠’을 마셔보자.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면 입 안에 남은 밀전병의 잔향을 다시 한 번 끌어내어 준다.

🥗 직접 무친 나물

🥗 가격 : 3,000원

배는 부른데 막걸리 한 잔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냉장고에 있는 나물을 몇 가지 꺼내어 막걸리와 함께 먹곤 했다. 이 메뉴를 먹고 난 뒤에 그간의 기억이 훌륭한 경험으로 포장되고 앞으로도 나물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셔야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방풍나물과 쑥 그리고 호박으로 무친 나물이다. 들기름으로만 무친 것처럼 간이 매우 슴슴한데, 이것이 각 나물들이 갖고 있는 맛과 향을 더욱 끌어내어준다. 특히 3가지 나물 중 유일하게 고춧가루 양념을 한 쑥이 일품이다. 슴슴한 것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뿜어낸다.

🍽️ 한치 순대

🍽️ 가격 : 30,000원

한치 안에 돼지고기와 버섯을 다져 넣어 쪄냈다. 그리고 오징어 먹물 소스와 가루의 형태로 가공한 버터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 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음식이다. 한치 순대 한 점을 먹물 소스에 듬뿍 찍은 뒤, 버터 가루를 곁들여 먹어보자. 한치는 버터로 구워낸 듯 고소하고 질기지 않으며 오징어 먹물 소스는 마요네즈의 짭조름한 맛을 더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