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다 보면 가끔 좀 섭섭할 때가 있다. 내가 만든 소설 속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 세계는 실존하는 세계가 아니니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작가는 소설 한 편을 쓸 때 적게는 몇 달, 길게는 몇 계절 넘게 그 이야기 세계에 마음을 쏟는다. 하루에 열 시간 넘게 골몰할 때도 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는데도 그 세계는 오직 머릿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 세상의 무엇도 만질 수 없고, 그 안의 인물들 역시 직접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한 번도. 조각가라면 조각품을 만지고, 연극인이라면 세팅된 무대 위에서 소품으로 쓰이는 의자에 앉아볼 수 있을 텐데.
내게 글쓰기의 외로움은 그 ‘실체 없음’에서 종종 온다.
물론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비롯된 상상이 타인에게로 전해져 누군가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되는 건 분명 소설의 멋진 면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소설 속 세계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여행자처럼 걸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안에서 담벼락을 만져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애틋한 그리움이 있지만 결코 닿을 수는 없어서, 나는 대신 현실에 그 세계를 상징하는 작은 사물을 하나 마련해둔다. 바로 ‘토템’이다.
요새 나의 토템은 젤리다. 재작년부터 작업용 배낭, 커다랗고 까만 그 가방 안에는 곰 젤리 두 알이 들어 있다. 당연히 비상식량 목적은 아니다. 자그마한 지퍼백에 주황색 곰 젤리 하나, 연두색 곰 젤리 하나를 같이 넣어서 가지고 다닌다. 주황색 젤리는 처음엔 주황색이었는데 이젠 색이 많이 바래서 거의 노란색에 가까워졌다.
재작년에 나는 젤리에 관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세계관을 확장해서 연작으로 기획해 작업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연작소설이 될 거라곤 예상 못 했다. 아무튼 연작의 첫 번째 이야기가 된 그 단편을 쓰던 때, 나는 꽉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소설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할수록 괜히 애꿎은 젤리만 더 많이 먹어댔다. 먹다가 젤리를 가만히 노려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져보고, 젤리 한 알을 입에 넣고는 씹지 않고 아주 천천히 녹여서 먹어보기도 했다. 체격 측정도 해봤는데 키는 2cm, 몸무게는 약 2~3g 사이로 나왔다. 뭐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젤리를 데리고 온갖 행동을 했다. 그러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주황색 곰 젤리 하나를 집어 들고 뜬금없이 혼잣말했다. “너라도 날 좀 도와줘…….” 그렇게 그 젤리는 다른 젤리들과 떨어져 홀로 아주 작은 지퍼백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젤리로 토템을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언젠가 Y 선생님께서 소설 쓸 때 늘 똘똘이 스머프 인형을 지니고 다닌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덕분일 거다. 작은 인형이 힘이 되어준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나는 소설 쓸 때 마음을 의지하는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으니까.
소설을 쓰는 동안 토템이 된 주황색 젤리를 만지작거리거나 여기저기 옮겨 놓아보며 상상을 이어 나갔다. 키보드 위에도 올리고, 창틀에도 올려보고, 핀 조명을 받는 연극배우처럼 스탠드 불빛 아래에도 놓았다가, 커피잔에 기대 세워봤다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 젤리라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소설이 또다시 막혀서 취재를 핑계 삼아 다시 젤리를 먹어대던 어느 날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진 곰 젤리 하나를 발견했다. 이번엔 연두색 젤리였다. 젤리를 수없이 관찰하다가, 그러니까 먹어대다가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공산품인데도 곰 젤리의 형태가 조금씩 다를 때가 있다는 거다. 어떤 젤리는 좀 더 홀쭉하고, 어떤 젤리는 좀 더 뚱뚱하고, 가끔은 표정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뒤틀려 보이는 곰 젤리도 있었다. 얼굴이 이지러진 그 연두색 젤리가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녀석을 먹지 않고 지퍼백 안에 같이 넣어줬다.
그런 시간을 거쳐서 소설은 마무리됐다. 그 소설에는 주황색과 연두색 젤리가 등장하는데 사실 토템 젤리의 색에서 따온 것이다. 색깔이 같아서인지 이제는 토템 젤리들이 단지 토템이 아니라 소설 속 젤리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속 세계에서 문득 떨어져 나온 조각 같달까. 나는 결코 찾아가 문 두드릴 수 없는 세계에서 실수로 떨어져 이곳으로 흘러든, 유일한 조각.
토템 젤리는 지금까지 가방 안에서 함께하고 있다. 이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가방에서 꺼냈다. 지금은 책상 위에서 바깥바람을 쐬어주고 있다. 연작소설이 다 마무리될 때까지 이 녀석들은 나와 계속 함께할 거다.
토템 젤리들은 이젠 색도 바랬고, 표정과 배의 오돌토돌한 무늬도 좀 희미해졌다. 작은 몸에서 기분 좋게 나던 향긋하고 달콤한 과일 향도 다 날아갔다. 그런데도 두 녀석을 손바닥에 올려놓을 때면 나는 위안을 얻는다. 아주 구체적이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 어째선지 그 존재는 내가 그동안 마음 쏟은 세계가 가짜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 세계가 비록 허구이지만, 가짜가 아니라 오히려 진실과 아주 가까이 맞닿은 곳이라고. 내가 마음을 다하는 이 일이 전혀 무용하거나 덧없지 않다고도.
젤리를 손 위에 두고 다른 손을 그 위에 포갠다. 그렇게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잡고 있으면, 어쩐지 앞으로도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작은 위안을 손에 쥐고 나는 글을 써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