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문 22호 2025년 9월 20일 토요일
ヽ`、ヽ``、9월 주제 <소설과 사물>ヽ`ヽ`、、ヽ
2cm의 용기

박소희


소설을 쓰다 보면 가끔 좀 섭섭할 때가 있다. 내가 만든 소설 속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 세계는 실존하는 세계가 아니니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작가는 소설 한 편을 쓸 때 적게는 몇 달, 길게는 몇 계절 넘게 그 이야기 세계에 마음을 쏟는다. 하루에 열 시간 넘게 골몰할 때도 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는데도 그 세계는 오직 머릿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 세상의 무엇도 만질 수 없고, 그 안의 인물들 역시 직접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한 번도. 조각가라면 조각품을 만지고, 연극인이라면 세팅된 무대 위에서 소품으로 쓰이는 의자에 앉아볼 수 있을 텐데.

내게 글쓰기의 외로움은 그 ‘실체 없음’에서 종종 온다.

물론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비롯된 상상이 타인에게로 전해져 누군가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되는 건 분명 소설의 멋진 면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소설 속 세계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여행자처럼 걸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안에서 담벼락을 만져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애틋한 그리움이 있지만 결코 닿을 수는 없어서, 나는 대신 현실에 그 세계를 상징하는 작은 사물을 하나 마련해둔다. 바로 ‘토템’이다.

요새 나의 토템은 젤리다. 재작년부터 작업용 배낭, 커다랗고 까만 그 가방 안에는 곰 젤리 두 알이 들어 있다. 당연히 비상식량 목적은 아니다. 자그마한 지퍼백에 주황색 곰 젤리 하나, 연두색 곰 젤리 하나를 같이 넣어서 가지고 다닌다. 주황색 젤리는 처음엔 주황색이었는데 이젠 색이 많이 바래서 거의 노란색에 가까워졌다.

재작년에 나는 젤리에 관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세계관을 확장해서 연작으로 기획해 작업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연작소설이 될 거라곤 예상 못 했다. 아무튼 연작의 첫 번째 이야기가 된 그 단편을 쓰던 때, 나는 꽉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소설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할수록 괜히 애꿎은 젤리만 더 많이 먹어댔다. 먹다가 젤리를 가만히 노려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져보고, 젤리 한 알을 입에 넣고는 씹지 않고 아주 천천히 녹여서 먹어보기도 했다. 체격 측정도 해봤는데 키는 2cm, 몸무게는 약 2~3g 사이로 나왔다. 뭐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젤리를 데리고 온갖 행동을 했다. 그러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주황색 곰 젤리 하나를 집어 들고 뜬금없이 혼잣말했다. “너라도 날 좀 도와줘…….” 그렇게 그 젤리는 다른 젤리들과 떨어져 홀로 아주 작은 지퍼백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젤리로 토템을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언젠가 Y 선생님께서 소설 쓸 때 늘 똘똘이 스머프 인형을 지니고 다닌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덕분일 거다. 작은 인형이 힘이 되어준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나는 소설 쓸 때 마음을 의지하는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으니까.

소설을 쓰는 동안 토템이 된 주황색 젤리를 만지작거리거나 여기저기 옮겨 놓아보며 상상을 이어 나갔다. 키보드 위에도 올리고, 창틀에도 올려보고, 핀 조명을 받는 연극배우처럼 스탠드 불빛 아래에도 놓았다가, 커피잔에 기대 세워봤다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 젤리라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소설이 또다시 막혀서 취재를 핑계 삼아 다시 젤리를 먹어대던 어느 날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진 곰 젤리 하나를 발견했다. 이번엔 연두색 젤리였다. 젤리를 수없이 관찰하다가, 그러니까 먹어대다가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공산품인데도 곰 젤리의 형태가 조금씩 다를 때가 있다는 거다. 어떤 젤리는 좀 더 홀쭉하고, 어떤 젤리는 좀 더 뚱뚱하고, 가끔은 표정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뒤틀려 보이는 곰 젤리도 있었다. 얼굴이 이지러진 그 연두색 젤리가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녀석을 먹지 않고 지퍼백 안에 같이 넣어줬다.

그런 시간을 거쳐서 소설은 마무리됐다. 그 소설에는 주황색과 연두색 젤리가 등장하는데 사실 토템 젤리의 색에서 따온 것이다. 색깔이 같아서인지 이제는 토템 젤리들이 단지 토템이 아니라 소설 속 젤리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속 세계에서 문득 떨어져 나온 조각 같달까. 나는 결코 찾아가 문 두드릴 수 없는 세계에서 실수로 떨어져 이곳으로 흘러든, 유일한 조각.

토템 젤리는 지금까지 가방 안에서 함께하고 있다. 이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가방에서 꺼냈다. 지금은 책상 위에서 바깥바람을 쐬어주고 있다. 연작소설이 다 마무리될 때까지 이 녀석들은 나와 계속 함께할 거다.

토템 젤리들은 이젠 색도 바랬고, 표정과 배의 오돌토돌한 무늬도 좀 희미해졌다. 작은 몸에서 기분 좋게 나던 향긋하고 달콤한 과일 향도 다 날아갔다. 그런데도 두 녀석을 손바닥에 올려놓을 때면 나는 위안을 얻는다. 아주 구체적이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 어째선지 그 존재는 내가 그동안 마음 쏟은 세계가 가짜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 세계가 비록 허구이지만, 가짜가 아니라 오히려 진실과 아주 가까이 맞닿은 곳이라고. 내가 마음을 다하는 이 일이 전혀 무용하거나 덧없지 않다고도.

젤리를 손 위에 두고 다른 손을 그 위에 포갠다. 그렇게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잡고 있으면, 어쩐지 앞으로도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작은 위안을 손에 쥐고 나는 글을 써나간다.(*)
₊⁺⊹ⅽ[ː̠̈ː̠̈ː̠̈] ͌
°𓅪 티테이블을 정리하며

소설 쓸 때 내게 꼭 필요한 물품의 리스트를 적어봤다.

① 인공눈물과 손목 보호대
② 커피
③ 빵, 초콜릿, 젤리 (이때 젤리는 식용이다)
④ 토템

인공눈물과 손목 보호대는 오랫동안 안구건조증과 손목 건초염을 앓는 내게 우선순위 1번이다. 만약 저 둘을 실수로 집에 놓고 작업실에 오기라도 하면 무조건 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커피와 빵, 초콜릿, 젤리는 일종의 전투식량이다. 한계에 다다른 뇌를 조금이라도 깨워 굴리기 위한 용도.

마감이 임박하면 여기에 더 추가된다.
⑤ 고함량 비타민과 한방 피로 회복제

마감이 열흘쯤 남으면 나는 ⑤번의 잔여 수량부터 점검하고 보충해둔다.

고함량 비타민(한 병에 액상과 알약이 함께 든 이중 제형)과 한방 피로 회복제(한 병에 5,000원이나 한다!)는 평소에 매일 먹기엔 가격이 부담된다. 하지만 마감 앞에서는 거침없이 구매한다. 저 시기쯤 되면 이미 심신이 상당히 피폐해서 그때부턴 무조건 약(?)의 힘으로 버티는 거다. 저 둘을 입에 털어 넣고 있자면 뭐랄까 도핑하는 기분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면서 버티고 있을까? 힘들지만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방문자님, 오늘 다회도 즐거우셨나요?
아래는 이전 호를 읽고 보내주신 의견들입니다.
함께 감상해주세요. 



✎・.。.:*남겨진 쪽지들 *.:。*

˖◛⁺˖ 작가님들은 다르지만 왠지 저번화와 이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저희 집 첫째가 떠나고 꿈에 한 번도 안 나오더니 어느날 꿈에 나타나 한껏 투덜투덜 거리고는 홀가분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미신을 잘 믿지는 않지만 신기하게도 그날이 그 친구가 떠난 지 딱 49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꿈에 나온 적이 없습니다. 제 친구는 인사하고 잘 떠난거라 그렇게 믿습니다.
6년 전 광복절 날 저는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전화를 받자마자 새어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줄줄 흘리며 횡설수설 병원에 가봐야할 것 같다고 말하고 짐을 챙겨 달려갔습니다. 그 전날 정해진 면회 시간이 지나서까지 야근을 한 탓에 하루 못 보러 갔는데, 서운해서 그런건가, 제발 내가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라고 읊조리면서 도착했습니다. 고통 때문에 괴로워 배를 까고 누워 하늘만 보고 있던 친구가 제 목소리를 듣고는 표정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제 옆에서 편안히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느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눈물이 또르륵 떨어지고, 밥을 먹다가도... 시시때때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나고 온통 생각이 그 친구로 가득찼던 그 감정을요. 아마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반려동물과 같이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같이 그 힘든 마지막 구간을 지날거라 생각합니다. 힘내라는 말보다는 좀 더 많이 생각하면서 그리워하시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뭐니뭐니해도 느티에게는 세상 최고의 집사님이었을거예요! 고양이 만만세!!


˖◛⁺˖ 작가님 글을 따라 읽으면서 키보드를 검색하고 노트를 검색하고 고양이 블럭을 검색하고  느티와, 떠난 나의 고양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감상을 쓰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정말 완벽하죠!
그리고 어쩌면 키보드와 고양이가 있다면 나도 글을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답니다. :)



이번 호에 보내주실 의견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아래에 다음 모임에 관한 짧은 힌트를 남겨두었어요.
9월 24일의 티타임을 기대해주세요.
<전자인간과 지우개똥>

때로는 부산스럽게, 이런저런 부산물들을 남기면서 읽고 쓰는 일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연필(모든 작가들의 친구 블랙윙 연필이나, 스타일핏 멀티펜의 샤프를 쓴다)로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어디선가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다)을 떼었다 붙여가면서, 틀린 글씨를 지우며 지우개똥(미술학원을 다닐 때 샀던 톰보우 지우개를 쓴다)을 남기면서, 짜투리 종이를 실로 엮어 만든 수제노트에 만년필(카웨코 스포츠가 손에 감기는 맛이 좋다) 잉크가 종이에 스미는 동안 잉크 냄새를 맡으면서, 커피(가능하면 디카페인을 고르는데 주로 패키지가 귀엽다는 이유로 프릳츠 원두를 산다)를 마시다 책에 흘려 지저분한 얼룩을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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