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와인의 4가지 차이점. 커피 vs 와인 BB Letter #008 | 2021. 5. 19. 독자님은 팟캐스트나 오디오클립 들으시나요? 저는 이동할 때 즐겨 들어요. 오늘은 몇 달 전에 Lab 연구원 데릭의 소개로 알게 된 팟캐스트 하나를 소개하려고 해요. 루시아 솔리스Lucia Solis의 팟캐스트 <Making Cofee>의 루시아는 와인메이커 출신의 ’커피 가공 전문가’입니다. 7년 동안 와인메이커로 일하다가 커피로 커리어를 전향했어요. 그러니 와인과 커피의 업계 특성이나 제조과정 차이가 선명하게 보였겠죠? 이 에피소드에서 루시아는 과일을 재료로 한 두 가지 사랑받는 음료 — 커피와 와인 — 를 네 가지 면에서 조명하며 대비를 보여줍니다. 전문용어 범벅이 아니면서도 핵심을 꿰뚫어보는 관점이 흥미로워서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에피소드 내용 전체를 번역한 게 아니라 제가 인상적으로 들은 내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리한 거라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발견하신다면 제보 부탁드려요.) 와인메이커가 왜 커피 팟캐스트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Lucia_Solis #Making_Coffee 왜 와인메이커가 커피에 대한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문을 열어볼까 해요. 저는 UC Davis에서 포도 식물학과 와인을 전공했어요. 그 후 와인메이커로 오래 일하다가 커피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커피 산지의 가공 시설mill들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저는 원래 커피도 안 마셨던 터라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몰라서 불안해질 때 저는 열심히 읽어요. 발효와 프로세싱에 대해 나와있는 연구자료들을 닥치는대로 찾아 읽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배경지식을 빨리 따라잡으려고요. 곧 알게 된 사실은, 동료 생산자들은 제가 읽은 자료의 내용 대부분을 모르고 있다는 거였어요.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 중에 커피 업계에서 상식이 아닌 것도 많았고요. 생산자들의 상식과 연구소에서 발간되어온 자료 사이의 지식 격차가 엄청나게 크더라고요. 지난 5년간은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었어요. 제가 커피 가공 관련 실험을 설계할 때 바탕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연구자료들이 있는데요. 그것들을 좀 더 쉽게 만들어서 공유하는 데 힘쓰고 있어요. 커피와 와인은 자주 비교되는 분야죠. 어떤 면에서는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 빌려올 수 있는 개념들도 많아요. 오늘은 커피와 와인이 어떻게 다른지 네 가지 관점으로 살펴볼게요. 와인 vs 커피 0. 커피는 콩이 아니라 과일이다 1. 제조 과정에서 '발효'는? 필수다 vs 옵션이다 2. 열매들이 익는 속도는? 동시에 vs 따로따로 3. 최종 고객과의 거리? 가깝다 vs 멀다 4. 열매에서 원하는 것은? 씨앗만 빼고 다 vs 씨앗만 전제 : 커피는 과일이다 콩이 아니라 제일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전제가 있어요. 커피는 콩이 아니라 과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걸 누가 모르냐, 누가 커피를 진짜 ‘콩’이라고 생각하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라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콩 coffee bean’이라는 단어가 ‘커피라는 음료가 과일에서 온다’는 연결고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원재료(과일)와 완제품(음료) 사이의 연결고리를 어느 정도로 강하게 인식하는지를 보면, 와인과 커피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 ’와인은 포도로 만든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좋은 와인을 즐기려면 = 좋은 포도 열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죠. ☕️ 반면 커피의 경우, 맛있는 커피를 즐기는 방법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건 뭘까요? 추출brewing이에요. 프렌치프레스와 케멕스 같은 추출 도구의 차이, 물과 원두의 비율 같은 것들이요. 그 다음은? 로스팅이죠. 라이트 로스팅인지, 다크 로스팅인지, 로스팅 프로파일 차이가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가 뒤를 잇습니다. 그러면, 커피열매가 커피 음료의 퀄리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게도 거의 다뤄지지 않아요. 커피가 과일이라는 인식, 즉 이 커피 음료 한 잔이 커피체리로 만들어지는 거라는 인식이 더 선명해지면 뭐가 달라질까요? 그렇게 되면 훌륭한 커피체리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게 진행될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원재료와 완제품 사이의 강한 연결고리’에 대한 인식이 와인업계에서 차용해오면 좋을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자, 이제 와인과 커피가 어떻게 다른지 하나씩 살펴볼까요? 1. 만드는 과정에서 발효는? 필수다 vs 옵션이다 요즘 커피 업계에서 ‘발효’가 트렌디하게 다뤄지죠. 하지만 사실 ‘발효’는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인류가 사용해온 가장 오래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커피 제조과정에도 먼 옛날부터 사용되어온 방법이고요.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할 때, 우리가 그 중에 필요로 하는 건 열매의 씨앗(생두)인데요. 그러려면 씨앗을 둘러싼 주변부, 즉 점액질을 포함한 과육과 껍질은 제거해야 해요. 커피에서 '발효'는, 씨앗만 남기기 위해 사용되어온 방법이에요. 씨앗을 제외한 주변부 조직이 씨앗으로부터 잘 떨어져나갈 수 있게 미생물이 분해하게 해주는 거죠. 이게 바로 커피와 와인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효'가 꼭 필요한지 아닌지요. (널리 사용되는 수세식Washed 가공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내추럴 커피에서의 발효 이야기는 이번 편에서는 논외로 하고 따라가보아요.) 발효중인 탱크들 : 포도즙에서 와인으로 변신하는 과정. 🍷 발효 없이 와인 없다 와인은 포도즙을 발효시킨 음료입니다. 발효를 거치지 않으면 와인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와인에서 발효는, 음료의 스타일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발효되는 온도와 시간, 사용하는 효모 등의 과정을 통해 각 와이너리 특유의 향과 맛이 만들어집니다. 발효는 와인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과정이죠. ![]() ![]() (1) 커피 발효탱크 (2) 발효탱크에 넣을 때의 모습. 커피씨앗이 점액질에 싸여있다. 커피씨앗을 둘러싼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씻어내기 쉽도록 약 12-24시간 동안 발효되게 둔다. ☕️ 커피에서 발효는, 점액질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 우유가 요거트가 되려면 발효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음식으로 생각해보면 김치, 된장, 간장, 막걸리.) ‘발효’라는 단어를 쓰니까 마치 커피도 발효음식인가? 하고 헷갈리지만, 커피생두를 얻기 위해 발효 과정이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필요한 건 '점액질 제거'죠. 미생물이 씨앗을 둘러싼 점액질을 부드럽게 분해시키면 씻어내기 쉬워지니까, 매끈한 씨앗만 남기기 위한 방법으로 발효를 사용해온 거예요. 장애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니 그 과정은 최대한 단축될수록 좋고요. 점액질을 제거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점액질 제거기'가 있습니다. 수압과 마찰로 점액질을 씻어내는 기계예요. 생산자마다, 목표로 하는 생두의 특성에 따라 어느 방법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요점은 커피생두를 얻기 위해 발효 과정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 간단하게 짚어보는 커피 가공 과정 (1) 커피열매를 따서 과육을 벗긴다. (2) 점액질에 싸인 커피씨앗 상태로 발효탱크에 들어간다. 점액질을 제거하고 잘 말리면 (3) 조약돌처럼 매끄러운 파치먼트가 된다. 이렇게 뽀송뽀송하게 안정된 상태로 거대한 bag에 담겨 산지에 있는 창고에 보관된다. 그러다가 구매자에게 배송할 시점이 되면 배송 직전에 가공소dry mill에서 크림색의 파치먼트 껍데기까지 벗겨낸다. 그제서야 드러나는, (4) 소위 그린빈green bean이라고 불리는 '씨앗'이 우리가 아는 '생두'다. 2. 열매들이 익는 속도는? 동시에 vs 따로따로 🍷 포도는 한 송이에 달린 알알의 열매들이 다같이 익어갑니다. 그뿐 아니라 한 덩쿨에 매달린 여러 포도송이들도 거의 같은 속도로 익어요. 그래서 포도는 수확기가 되면 한 구역을 한꺼번에 수확합니다. 한 장소에 두 번 이상 수확하러 가지 않아요. 그리고 포도알마다 익은 정도가 비슷하기 때문에 와인을 만들기 위해 한꺼번에 즙을 냈을 때도 비교적 균질한 용액이라고 볼 수 있죠. 커피는 완전히 다릅니다. ☕️ 같은 가지에 매달린 열매끼리도 따로따로, 각자의 속도로 익습니다. 한 가지에 연두색에서 붉은색까지 각양각색의 열매가 매달린 사진 많이들 보셨죠? 딱 알맞는 정도로 붉게 익은 열매만 수확하려면 같은 나무에 3-4번에 걸쳐서 다시 가야 해요. 몇 단계에 걸쳐서 수확할지는 농부의 상황에 따라, 다시 말해 노동력과 자본이 허락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요. 여러 번 수확할 자본과 시간 여유가 없어서 한 번에 수확한다면 익은 정도가 각각 다른 열매들이 그 이후 공정에 함께 들어갑니다. 익은 정도에 따라 당분도 다르고, 수분함량도 다르니 각 씨앗의 상태도 무척 다를 거예요. 그 씨앗들을 추출해서 커피를 만든다면, 여러 다른 포인트들이 섞인 맛이 나겠죠. 이번 컵과 다음 컵의 차이도 클 거고요.
3. 최종 고객과의 거리는? 가깝다 vs 너무너무 멀다 Linville Falls Winery. 포도밭에서 소비자가 받는 최종 제품인 와인까지 만들어진다. 🍷 포도 재배하는 사람 = 와인 제품 만드는 사람 = 판매하는 사람 와이너리(양조장)는 포도농장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그게 아니어도 농장과 가까이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직접 포도를 재배하고, 즙을 짜고 발효시켜 와인을 만들고, 병에 넣어 제품으로 완성해 판매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와인을 만드는 사람은 고객으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들을 수 있게 돼요. ‘올해 샤르도네 품종 와인 너무 좋아요. 지난 해보다 이런 점이 더 좋았어요.’ 같은 이야기들이요. 그러면 양조장이나 포도농장에서는 '올해 특히 여름에 더웠는데 이런 특징이 있었으니 내년에는 더 일찍 혹은 늦게 수확해야겠구나, 발효시간이나 온도를 어떻게 해야겠구나' 하는 식으로 제조과정에 반영할 수 있어요. ![]() ![]() 커피 농장 & 생두 가공소 dry mill 그 후에도 소비자에게 닿기까지 갈 길이 멀다. ☕️ 커피는,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 굉장히 여러 단계로 쪼개져 있습니다. 우선 커피나무를 키우는 농부가 생두 가공시설 (dry mill) 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가공시설 운영자와 수출업체도 다른 경우가 많고요. 수출업체가 로스터리와 카페까지 보유한 경우도 굉장히 드물죠. 그러니까 산지 밖에 있는 생두 수입업체와 로스터리를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커피가 음료로 전해졌을 때 그 의견이 농부나 가공시설 운영자에게까지 전달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커피 정말 맛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또 만들어주세요.” 같은 이야기들이요. 그러니까 마음에 쏙 드는 커피 한 잔을 만났다면, 그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에요. 수많은 단계를 거치는 동안 그 커피의 품질이 단계마다 잘 관리되었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똑같은 커피를 다시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일 겁니다. 비록 같은 농장에, 같은 로스터를 거친 커피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4. 열매에서 원하는 것은? 씨앗만 빼고 다 vs 씨앗만 포도 단면. 와인에서 씨앗은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은 것. 🍷 껍질, 과육, 즙까지만. 씨앗은 노노. 커피체리 열매 단면. 가장 안쪽의 생두(씨앗)만 남기는 게 목표. ☕️ 필요한 건 씨앗 뿐. 커피와 와인의 제조과정을 비교하고 참고하는 경우가 많지만, 목적이 반대인 거죠. 한 쪽은 씨앗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 다른 한 쪽에서는 씨앗만 뽑아내는 것. 그러니까 스페셜티 커피 프로세싱에 와인 제조 방법론을 차용해오려고 할 때는 대부분의 와인제조 프로세스가 씨앗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 <Making Coffee> Ep.1. A Winemaker's Perspective on Specialty Coffee 독자님, 어떻게 읽으셨나요? 나뭇가지 하나를 들여다보다가, 확 멀어져서 업계 생태계의 거시적인 관점까지 넘나드는 생각 여행이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커피를 식물로도 보고, 제조 과정도 보고, 커피업계의 가치사슬까지. 커피만 들여다볼 때보다 와인과 대조시켜서 보니 커피의 특징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 같지 않나요? <Making Coffee> 팟캐스트는 앞으로도 들어보면서 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소개해볼게요. 독자님도 같이 나누고 싶은 콘텐츠가 생각나신다면 여기 가볍게 남겨봐주세요! :) − 김소연 Soy, 로스터리 디렉터 (단독으로) 계획짜기가 취미입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생각이 많습니다. (상호작용) 호들갑을 곁들인 하트 이모지를 자주 남깁니다. 심지어 진심입니다. 매번 어떻게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번 레터 읽으면서 좋았던 점, 아쉬운 점, 제안하고 싶은 것, 어떤 이야기든 짧게라도 남겨주시면 더 재미있고 도움되는 주제로 준비해볼게요. 아무쪼록 남은 한 주도 맛있는 커피 혹은 와인과 함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만나요! :) 소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