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평범하게 달콤하게 나에게 끌려..."

작년 여름, "덕질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로 시작하는 레터를 보낸 적이 있다. (링크) 이때도 덕질을 접은 지 오래 되었던 때라 많은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시간 왜 이렇게 빠른지-다시 그 시절을 곱씹어보게 하는 계기가 생겼다. 얼마 전 친구들이 동방신기 콘서트에 다녀왔다. 물론 그들을 ‘동방신기’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의 기억 속에 그 오빠들은 동방신기로 남아 있으니 별 수 없다. 나는 친구들이 동방신기를 좋아할 때 에픽하이, 서태지, 그리고 굳이 SM 중에 꼽자면 슈퍼주니어(조금 부끄러움)와 샤이니(당당함!)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 설렘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구경꾼의 자세를 취했다.


30년 전 취향 때문에 욕을 먹는다면... 

친구들이 당연하게도 티켓팅에 실패하고,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년 간의 사회생활로 쌓인 재력을 활용해 암표를 구매하고, 다시 한번 노래들을 복습하며 설레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하면 되었다는 말이다. 대망의 콘서트 당일, 어마어마한 굿즈 줄에 한 번 놀라준 뒤 친구들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는데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진 속 친구의 얼굴이 고등학교 때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다시 자세히 보자. 외모는 달라졌지만 그때 그 표정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그때의 생기, 광기, 열기, 패기와 객기까지 그대로 뿜어져 나온다. 사진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고등학교 교실 뒤편에서 쉬지 않고 터지던 괴성이 그대로 들리는 것 같다. 사진만 봐도 귀가 아픈 기분이 들 수 있다.

‘오빠들’의 새 앨범이 발매된 다음 날 등교하자마자 내 귀에 본인 MP3 이어폰을 꽂아넣던 친구의 다급함. 내 귓구멍과 잘 맞지 않는, 어색한 이어폰의 감촉 너머로 들려오던 전주. 뭔진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못 들어봤던 특이하고 멋있는 소리라고 느꼈던 음악(지금이라면 ‘돈 냄새 쩌네’라고 평했을 것이다). 그때 그 교실의 조도와 우리가 서 있던 1분단과 2분단 사이 통로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한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교실 앞에서 친구들이 따라 추던 오빠들 춤이 그대로 재생되고, 그때 걔네가 교복 치마를 가슴 위로 올려 입었던 것까지(근데 대체 왜?) 생각나버린다. 와, 나 지금 시간여행 했네.

중고등학교 때 서태지를 열정적으로 좋아했지만(그의 생일은 아직도 곳곳의 비밀번호에 흔적을 남기고) 그땐 지금 같은 ‘덕질’이란 걸 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콘서트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참여했고 다른 팬 언니들하고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 놀았고 급기야 라이브와이어 뮤직비디오에 참여(?)했다. 막상 적고 나니 덕질 못했다고 한 것 치고는 제법 잘 털었어…

떤 거 치고는 상당히 잘 털었던 중딩 시절  


그 덕질은 고3이 되고 대학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멈췄다. 그런데 강의실에서 졸음을 참던 어느 날 문자가 미친듯이 쏟아졌다. 졸음도 쏟아지고 문자도 쏟아지고. 급기야 엄마한테는 전화가 오기 시작해서 강의실을 빠져나와 전화를 받았는데 다짜고짜 “너 뉴스 봤어?”. 맞아요, 그 날은 서태지의 이혼 뉴스가 한국을 강타한 날이었답니다. 결혼이 아니라 이혼 뉴스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지만 이미 내 덕질은 멈춰 있었기에 큰 충격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건 따로 있었다. 연락 안 한 지 오래인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계속 문자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내 기억보다 훨씬 더 심각한 팬질 - 당시에는 ‘덕질’이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 을 하는 친구였다. ‘너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간다고 빠져나가서 전화로 콘서트 티켓 예매했잖아’ ‘너 중간고사 기간에 뮤비 출연해야 된다고 파주 갔잖아’ ‘너 무슨 법 폐지하라고 여의도에 집회하러 갔잖아 오빠 지켜준다고’(방송재심의 하라는 거였다)… 미친 거 아니야? 정작 내가 기억하는 건 어디선가 새 앨범의 피아노 악보를 구해 쳐보겠다고 애쓰던 주말, 그때 연희동*에서 만났던 언니들이 내가 중딩이란 걸 알고 난처해 하다가 사줬던 만두국의 맛 같은 것들인데.

*연희동에는 서태지 집과 전두환 집이 있었다. <응답하라 1994>를 참고하시길…


이렇게 어떤 추억은 나한테 없다. 그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대신 보관해준다. 도서관에 가면 엄청 많은, 나한테 없는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친구들을 만나면 나한테 없는 추억을 줄줄 알려준다. 내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너 그때 치마 올려입고 라이징썬 춘 거 생각나? 하면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것이다. 덕질을 한다는 건 누군가를 온 마음을 다해 열렬히 좋아한다는 뜻도 되지만 내가 기억 못 할 나의 추억을 대신 기억해줄 누군가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어떤 덕질은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를 둘러싼, 변죽만 울리는 기억들로 남는다. 2017년부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 그룹을 좋아했는데도 그 그룹의 노래나 활동이 잘 기억 안 난다. 물론 불후의 명곡들을 남겼다면 기억 나겠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으므로… 대신 기억나는 건 이런 것들이다.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널이 한 웃긴 리액션을 기가 막히게 따라한 친구의 모습, 그때 그 술집에서 우리가 앉았던 자리. 연말 시상식 행사에 들어가기 전 오늘 맨 정신으로는 못 본다며 나눠 마신 소주 1병, 시상식이 끝나고 나와 컴컴한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술 안 마셨으면 어쩔 뻔했냐고 스스로의 멱살을 쥐어뜯던 기억. 앨범 발매일에 서점 외근을 잡아준 직장 사수가 포토카드 교환까지 도와줘서 황송함에 몸둘 바를 몰랐던, 하지만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낄낄댔던 광화문 교보문고 맨바닥…

이 모든 순간은 함께 한 친구들이 있어서 아직도 생생한 거다. 혼자 했다면 그냥 까먹고 치웠을 텐데 친구들하고 같이 하면 서로 끊임없이 ‘추억팔이’를 하면서 서로의 기억에 빈 부분을 끼워 맞추고 영원히 복습할 수 있다. 이제 그 그룹은 갔고(간 지 오래됐고) 멤버들은 뿔뿔이(대체로는 군대로) 흩어졌고 친구들은 2D 세계로 갔지만 우리는 아직도 친구다. 각자의 부모는 이 친구들을 맘대로 부른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인터넷 친구들’ 혹은 ‘오타쿠 친구들’ 그리고 가끔은 ‘등산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니 덕질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앞서 한 말을 바꿔야겠다. 놀이를 제외한 모든 행위는 변죽을, 혹은 변죽만을 남긴다… 솔직히 5년 전에 했던 프로젝트 자체가 너무 감동적이었고 기억에 남는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싸이코패스거나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 병에 걸린 녀석이겠지. 우리 대부분은 닥쳐온 현재에는 과녁의 정가운데를 향해 몸을 던지지만, 결국 뒤를 돌아보면 그 주위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파문 밖에는 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파문은 너무 아름다워서 영원히 곱씹게 되는 무엇이다. 내가 겨냥했던 <부메랑>이니 <켜줘> 같은 과녁은… 질끈 눈 감을 밖에

 


다음 주에는 저의 오타쿠 친구들과 첫 해외여행을 가요. 2017년부터 가자고 했던 걸 이제야? 하지만 마침내! 이기도 한 여행입니다. 오랜만에 아주 신나고 기대되는 여행이라 이런 길고 긴 주책을 떨었군요. 여행에서는 강제로 워너원 무대 영상을 관람하는 시간이라도 가져볼까 합니다. 도대체 뭘 위해서? 그야 우리의 아름다운 파문, 변죽, 웃음사냥을 위해서죠.

다음 레터에서는 한 2년 전부터 예고했던 애비 이야기를 슬슬 시작해볼까 합니다. 너무 웃긴 에피소드가 많아서 오래 묵히고 말았어요. 이제야 옳게 된 초겨울 날씨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추천합니다😎]

  • 김해인, <펀치: 어떤 만화 편집자 이야기> 링크

아주 오랜만의 추천 같습니다. 요즘 현생에서 하도 뭘 많이 추천하고 다녔더니 자꾸 헷갈리네요. 그중에서... <펀치: 어떤 만화 편집자의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일본) 만화 좀 보셨다면 무조건 좋아하실 거예요. 웃음과 눈물 그리고 벅차오름! 재미있는 만화가 주는 거의 모든 것들을 이 책도 줍니다. 거기에 살짝 더하자면 직장인의 애환을…    

p.s. 밀리의 서재에도 있어요^^

이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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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02-6461-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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