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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언니의 상담실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사연은 주변 사람들에게 '완벽주의자'라는 평을 듣는 지은씨의 이야기예요.
지은씨는 이런 평가가 조금 부담스러우신 것 같아요.
남들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할 때, 조그마한 실수라도 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고 자꾸 남 탓을 하게 된다는 솔직한 마음을 보내주셨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평가하는 나'의 모습이 과연 얼마나 일치할까요?
아니, 애초에 일치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드네요.
이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 해소할 수 있을까요?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을 우리는 어떻게 보듬어주어야 할까요?
* 편지 속 이름 및 편지에 등장하는 모든 예시 등은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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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부속 의료원에서 수련했으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에서 석사를 수료했다. 많은 내담자들이 지닌 다양한 상처에 사회 환경 및 젠더 이슈가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고, 이 문제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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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 언니에게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고 완벽주의자라고들 합니다. 학창 시절에 과제를 하거나 시험을 준비할 때 그런 소리를 들었고, 회사에 들어온 후에도 비슷한 평을 들었어요. 그런데 스스로 생각할 때는 제가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완벽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본 제 모습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많이 덤벙대고 깜박깜박할 때도 많고…
저는 그저 실수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실수하는 제 모습이 너무 싫고 마음에 들지 않아 두번 세번 확인하고 챙기려 하지만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고가 생기면 본능적으로 남 탓을 하려 드는 것 같아요. 물론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요.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힘들고, 다른 핑계를 찾는 제 모습에 실망하는 것 또한 스트레스입니다. 적다보니 그냥 스스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제가 처한 냉정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타인에게도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타고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더 꼼꼼하게 챙기고 행동하는 습관을 들여서 자괴감이 생길 기회를 줄이는 게 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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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씨에게
아마도 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비추어 지은씨의 편지를 읽을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어, 나도 그런데!’라고 생각할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자기 주변의 ‘완벽주의자’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완벽주의’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말인 듯해요.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익숙하게 쓰는 단어의 의미를 스스로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고, 그리고 다들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고 믿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살살 잘 해체해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칭찬으로 쓰기도 하고(“봉준호 감독은 완벽주의자다”), 욕까지는 아니라도 누군가를 약간 나무랄 때 쓰기도 해요(“너 너무 완벽주의인 거 아니야? 적당히 해”). 이렇게 양면적인 의미가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의 단골 질문인 ‘자신의 단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무난한 답변으로 완벽주의가 많이 사용되는 것 같기도 해요. 확실히 완벽주의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어요.
지은씨의 괴로움에 초점을 맞추기에 앞서, 완벽주의가 가진 순기능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볼게요. 혹시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라는 밈(meme)*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말인데요. 학문적 영역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완벽주의의 부정적 측면이 주로 부각되었지만, 이후에는 완벽한 처리를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에서의 적응에 더 유리하고 구성원으로서 잘 기능한다고 알려지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조명되었어요.
그래서 일단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주변 사람들이 의미한 지은씨의 완벽주의가 무엇이든, 그리고 지은씨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고민하는 그 ‘특성’이 여태까지의 성취와 집단에의 적응에 기여한 점도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 떠올려주세요. 나를 힘들게 하는 면이기도 하지만, 서둘러 싹 다 몰아내야 하는 존재이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야 현재 상황을 더 잘 파헤쳐볼 수 있습니다.
*밈(meme)이란 마치 유전자처럼 복제되고 다른 집단이나 세대에 전달될 수 있는 문화 요소를 의미합니다.
최근에는 인터넷상의 유행어, 사진(짤) 등을 통칭하여 밈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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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도 혹시
'불완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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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은씨의 고민으로 가볼게요. 지은씨는 오랜 시간 꽤 일관되게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들어온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지은씨가 그 말을 대단히 불쾌하게 여긴다기보다는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나를 완벽에 가까운 사람, 혹은 대단한 성취를 추구하는 야심가(?)로 보는 것만 같아 당황스러운” 마음이랄까요?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믿는 그들을 언젠가 실망시키기라도 할까봐 염려하는 마음도 있지는 않을지 궁금하고요.
어쨌든 지은씨는 지금 1)자신이 생각하는―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엄청나게 높지도 않은―기준과, 스스로의 진짜 능력 사이에 갭이 있다고 여기고 있고, 특히 2)남 탓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이제 1)과 2)로 나눠서 이야기해볼게요.
지은씨가 완벽주의자 칭호를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1) 때문이죠. 그리고 아마도 지은씨는 어떤 일을 무사히 달성하고 나서도 “이얏호! 이번에도 잘 해냈군”이라고 기뻐하기보다는 “휴, 사고 없이 겨우 끝났군. 살았다…”라고 안도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지은씨는 완벽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무슨 말장난이냐고요? 지은씨는 ‘잘해내야지’가 아니라 ‘실수, 흠, 책 잡히는 일이 없게 해내야지’라고 마음먹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should)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은씨는 왠지 압도적 성취 추구의 냄새가 나는 완벽주의자라는 별명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은씨의 완벽주의는 대단하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결함이 생기거나, 파국적인 일이 일어나거나, 비난받을 가능성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로 보여요.
“불완전하면 안 돼” 밑에는 “내가 불완전하지 않다면 망하거나 비난받을 일도, 소외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다시 말해 “내가 불완전하다면 끝장이 나거나, 비웃음을 사거나, 몰락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을 수 있어요. 지은씨가 이 문구를 문자 그대로 머릿속에서 되뇌면서 지낸다는 뜻은 아니고요, 은연중의 무의식적 믿음 같은 것을 말하는 거예요. 고통스러운 감정(수치, 굴욕, 거절)에 대한 지은씨의 두려움이 이른바 완벽주의(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가진)라는 이름을 가진 생각과 행동양식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면에서 완벽주의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 중 “자기 자신의 잠재적인 손상을 예방하거나 복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완벽(=불완전하지 않음)과 관련한 전략들의 집합”이라는 서술이 아마도 지은씨에게 제일 많이 겹쳐지는 정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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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실수나 사고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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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실수, 오류, 결함 등에 대해 지은씨는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요? 실수, 혹은 불완전함과 관련한 과거의 기억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불완전한 결과에 대해 주로 받았던 피드백은 무엇이었나요? 자신의 ‘실수’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지은씨 안에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연결되어 있나요?
물론 누구도 실수나 사고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일도 누군가에게는 눈앞이 하얘지고 죽고 싶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속상하고 민망하지만 끝장날 정도의 강도까지는 아닐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무심하고 무책임해 보일 정도로 감흥 없는 일일 수도 있어요. 각자의 이런 면은 타고나는 기질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주변으로부터 받는 메시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소한 실수도 잘 용납되지 않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에서부터, 가까운 중요한 타인들(가족, 선생님, 동료)로부터 받은 암묵적 또는 명시적 피드백이 그것입니다. 지은씨 자신은 어떤 피드백을 받아왔다고 느끼는지를 떠올려보는 일은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드디어 2)로 가볼게요. 지은씨는 스스로가 남 탓을 많이 하고 너그럽지 못하다고 했어요. 저는 지은씨가 자신을 ‘도덕적 품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만 같은데, 제 생각이 맞나요?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지은씨를 위로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못되거나 착한’ 유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지은씨는 그냥 두려운 겁니다. 실수에 대한 타인의 비난도 두렵지만, 무엇보다 지은씨가 자기 자신에게 비난받는 일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사고가 생겼을 때 (그 사고가 타인의 탓이건 아니건 간에) 마치 생존 본능처럼 타인에게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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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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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시도들이 지은씨에게 앞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씩 말씀드릴게요. 타인을 대하는 지은씨의 내적 태도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지은씨가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반드시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남 탓만 하고 못났지?’가 아닌 ‘나는 나의 실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 내가 실수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내게 어떤 두려움을 안겨주지?’라고 물어봐주세요. 자신의 두려움과 전제를 살피면서 어떻게든 거기에 의문을 제기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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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실수는 견딜 수 없는 치욕이다.
→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일까? 견딜 수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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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변인들 중 지은씨가 보기에 아주 무책임하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타인의 실수에 유연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사람을 찾아서 관찰해보세요. 한번 비결을 물어봐도 좋고요. 그러면서 ‘실수는 화끈거리고 민망한 경험이지만 나를 파국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는 않는다’는 증거를 찾아보고 스스로에게 계속 친절히 설명해주세요. 자신이 정말 안전하다고 믿어도 되겠다는 수긍이 가야 우리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면, 원망하는 자신을 남 탓만 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바로 평가해버리는 대신 그저 그 원망의 이유를 담백하게 탐구해보세요. 예를 들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애썼는데, 저 사람의 실수로 나도 함께 도매금으로 불완전해 보일까봐 속상하고 화가 나는구나’라고요. 타인에 대한 원망감 자체를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타인에게 올라오는 원망감을 너무 빨리 벌하지도, 반대로 급하게 정당화하려 하지도 않고 그냥 두고 관찰하다보면 원망 너머에 있던 나의 두려움(예: 비난받는 일은 너무 고통스럽다)과 욕구(예: 안전하고 싶다)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그 원망감 자체도 덜 괴로운 수준으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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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아주 살짝 움직이게 하는 힘,
그 힘이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워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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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조금 더 테크닉(?)적인 제안을 드리려 합니다. 삶의 모든 면에서 갑자기 전복적인 변화를 시도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다시 주저앉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일단은 회사 외의 영역에서 도전할 만한 취미를 하나 설정해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지은씨가 일 이외의 영역에서는 완벽주의의 면모를 가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일은 완벽주의적으로 대하면서 나머지 영역은 ‘완전 아무렇게나’ 대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회사에서 좀더 편안해지기 위한 시도를 해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주세요. 경력이나 고과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심리적인 민망함이나 굴욕감, 분노만 상대하면 되는(물론 이것만으로도 큰 도전이지만) 종목을 정하는 거예요. ‘내가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어설픔을 잘 허용하는구나’ 또는 ‘역시 일에서의 모습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구나’ 등 다양한 감상을 가질 수 있어요.
이런 시도는 지은씨를 좀더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스스로에게 어설픔을 허용하기가 여전히 어렵다면, 그냥 나 자신이 ‘실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인 척’ 연기를 해보세요. 너무 억지로 터프하게 행동하시라는 것까지는 아니지만요. 내가 그동안 지켜봐왔던, 실수를 좀 하지만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는 누군가를 떠올려봐도 좋고요. 심정적으로는 몰입이 안 되더라도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큰 바위를 살짝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좀 되시면 회사로도 한번 눈을 돌려보기로 해요. ‘오염시키기’라고 이름 붙여본 전략을 제안하고 싶은데요. 아마도 지은씨는 업무 분장을 명확히 하기 어려운 영역에서조차 여기까지는 내 책임, 저기서부터는 저사람 책임 이런 식으로 마음속에서 최대한 구분해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쪼잔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클린하게 설정해야 불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냥 이제부터는 그 구분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해보세요. 일은 평소처럼 하되 (마음속에서의) 책임 소재를 일부러 흐트러뜨려 놓는 거죠. 범인을 찾고 싶어도 못 찾게요. 그러면 어떤 실수는 그냥 우리 모두의 탓이 되면서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일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의 전체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보세요. 이 프로젝트는 회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즐기고 싶은지. 이 일이 나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보람과 기쁨, 아니면 짜증은 무엇인지.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종류의 경력과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지. 이 일을 하면서 동료들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은 점이 있지는 않은지... 실수를 막고, 불완전함을 피하고, 사고 없이 넘어가는 것 이외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무사함 아니면 사고라는 두 종류의 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예요.
긴 얘기 들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지은씨는 과연 어떤 취미를 선택하시게 될까요?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면서, 저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참고문헌
- Cheek, J., Kealy, D., Hewitt, P. L., Mikail, S. F., Flett, G. L., Ko, A. & Jia, M. “Addressing the Complexity of Perfectionism in Clinical Practice,” Psychodynamic Psychiatry, vol.46 no.4, 2018, 457~89면.
- Stober, J. “The Frost Multidimensional Perfectionism Scale: More perfect with four (instead of six) dimension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vol.24 no.4, 1998, 481~9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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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시 오지 않는 것들』(최영미 지음, 이미출판사 2019)
이 시집의 첫번째 시 「밥을 지으며」가 생각나면서 추천하고 싶었어요. (참고로 “밥물은 대강 부어요”로 시작해요.) 유머러스함과 솔직함과 슬픔, 그리고 우아하지만은 않은 일상 같은 것들이 책 안에 담겨 있는데요, 지은씨에게는 어떤 감상을 가져다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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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오는 것들」(미아 한센-러브 감독 2016)
바쁘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던 고등학교 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의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나탈리는 다시 균형을 잡게 되는지, 그리고 일상의 위기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가지며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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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비밀의 화원」(이상은)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라는 가사를 담고 있는 이 노래가 지은씨의 편지에 대한 다소 직관적인 추천일지도 모르겠어요. 적당히 힘이 빠져 있는 투박한 느낌의 목소리와 잔잔한 기타 소리 역시, 지은씨에게 잠시나마 대단히 직관적인 편안함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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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모임이 있습니다. '왈이의 마음단련장'이라고 하는 명상 클래스도 운영하고 계신 노영은 님께서 올해부터 시작한 모임입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가 만들어서 유명해진 게임, 캐시플로우를 삼삼오오 모여 함께 즐기면서 자본주의 경제흐름에 대해 이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경제적 자유란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입니다. 노영은 님의 인터뷰를 언니단을 통해 듣고 싶기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언니단원들과 함께 캐시플로우를 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늘 언니단 레터를 통해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_언니단 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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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단원들을 위한 새로운 코너를 오픈합니다! 언니단원들과 동네에서 풋살을 하고 싶다든가, 개인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든가, 요즘은 이런 멋있는 언니에 꽂혔는데 같이 읽고 싶은 기사가 있다든가! 언니단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식이라면 무엇이든 좋아요. 소박한 지면이지만 언니단 레터에 실어드립니다! 망설이지 말고 버튼을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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