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저는 요즘 뜨거운 것에 얼굴을 데어 통원 치료를 받고 있어요. 매일 진료를 받은 뒤 상처 부위에 레이저를 5분쯤 쬐고, 소독하고 드레싱을 하는데요. 레이저 치료를 할 때 빛을 피하려고 안대를 써요. 며칠 전에는 담당 간호사가 안대를 벗겨 주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밝아지세요.” 아마 안대를 벗으면 눈이 부실 테니 조심하라는 뜻이었을 텐데, 높임말을 잘못 쓰는 바람에 조금 우스운 문장이 되어 버린 거죠. 그런데 그 말이 어쩐지 좋더라고요. 바쁜 일정과 이런저런 걱정으로 어두운 마음을 안고 살던 저에게 건네는 계시 같았달까요. 삶의 신비는 이렇게 느닷없이 훅 들어오더라고요.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처럼요. 이 글을 읽는 구독자님, 밝아지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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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자주 하는 착각은 계획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리라는 믿음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고 하면서도 모든 걸 주관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막연함, 혹은 모호함 위로 디지털 화면이 이야기하는 모든 숫자와 기호를 진리, 아니면 최소한 기정사실 정도로 믿기 시작한 것 같다.
나도 그랬다. 한국에서 한 달을 보내고 미국에 돌아가서 다음 여정을 준비하고, 줌으로 대학원 코스의 첫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도쿄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그 정도는 흔한 일이니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공항 구석에서 밀린 일을 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다 매우 낯선 이야기를 들었다. 화산재로 인해 결항한다는 소식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화산 폭발이 내 발을 묶었다. 행선지도 아니고, 출발지도 아닌 중간 어느 공항에서. 게다가 나리타 공항은 24시간 여는 공항이 아니어서 우리는 공항을 나가야 했다. 다행히 호텔을 제공해서 잠을 잘 수는 있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포럼에 참석할 방도를 찾아야 했기에 난감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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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고향은 어디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다리위에 세워진 나무 한그루 집 한채를 그린 단순한 작품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서도호 전을 보면서 나를 포함하여, 두개의 문화 사이를 오가는 많은 이들의 고향을 생각하게 된다.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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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이 두려움의 정체를 곰곰이 따져 보았다. 사실 지구 곳곳에서 재해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데, 거대한 화산 여러 개가 활동 중인 인도네시아에서 공항이 폐쇄된 것쯤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그럼에도 내가 만나고 싶었던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청년들과 가톨릭 청년들, 그리고 내가 맡기로 한 역할, 이 모든 것을 두고 계획을 새로 짜고 항공편을 다시 구해야 하는 난감함 앞에서, 도대체 내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허술하고 또 우연에 기대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고생 끝에 한국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편을 구했지만, 다시 연결편이 결항이었다. 할 수 없이 한국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는데, 익숙한 공항임에도 매우 낯설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익숙하지만 낯선 (uncanny)” 느낌에 심호흡을 여러 차례 했다. 마침 공항에 나와준 조카의 얼굴을 마주하고, 날씨 이야기도 하고, 요즘 핫하다는 종묘를 지나니 긴장감이 풀려갔다. 옛날 종묘의 모습이 아직 남은 채로, 나처럼 후줄근하게 늙어가는 건물과 골목길을 보면서 마음에 깊은 위로가 다가왔다.
내일 아침 일찍 인도네시아로 가면 밤 11시에 도착할 수 있고, 거기서 기차를 타면 새벽 3시쯤엔 도착할 거라고 스스로 위안했는데, 아침에도 항공편은 없었다. 그리고 이틀 후에야 공항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 포럼에 참석한다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며칠 동안 한국에서 보내기로 했다. 다음 행선지인 베트남으로 가는 항공편을 다시 예약하고 일정을 조정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인도네시아의 일정은 줌으로 대신했다. 줌으로 학교 수업을 하고, 포럼 강의를 했다. 머리에 히잡 을 쓴 젊은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정다웠다. 강의 후 질문을 하다가 아픈 세상에 대해 울음을 터뜨린 무슬림 여성의 모습에서 난 희망을 보았다. 이 세상, 이 작은 곳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이 세상의 아픔 때문에, 사람들의 고통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이 순간, 항공편 결항 따위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곳에 가기 위해 가슴 졸인 모든 순간, 컴퓨터 프로그램과 씨름하면서 새로운 항공편을 모색하는 그 순간들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 매끄러운 컴퓨터 화면과 장황한 정보 뒤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 세상을 향해 평화를 이야기하는데… 나 하나 거기에 참석해서 그 영광을 목격하지 못하는 것쯤이야… 그러고 보니 즈카르야가 세례자 요한을 품에 안고 드린 감격의 기도가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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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베트남의 오후 거리를 걸으면서, 거리에서 파는 음식과 그 향기가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조금은 거칠고, 또 세련되지 않아도, 사람사는 느낌이랄까, 정겨운 모습이랄까, 그렇게 나는 거리에서 고향을 느낀다.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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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짐도 풀지 않은 채 서울에서 며칠을 보내고 베트남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반. 무언가 무질서하고 북적거리는 베트남 공항이 반가웠다. 이 덥고 정신없고 시끄러운 베트남의 정경이 ‘사람이 산다는 건 이런 거야’라고 내 등을 두드리는 것 같다. 라캉은 실재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우리의 삶을 매끄럽고 부드럽게 가리는 삶의 방식과 담론을 상블랑(semblant)이라고 불렀다. 이 디지털 시대에 우연히 마주한, 상블랑이 무너지는 지금 이 순간에 삶의 유한함, 기계 작동이 가져다주는 거짓 안정감, 그리고 삶의 아픈 현장이 내 안에 한꺼번에 다가왔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우는 이들의 가슴 안에서 그리스도로 피어나신다. 우리 또한 그들 안에서 생의 진실이 피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나야 곧 그들의 눈물과 고통을 잊어버리겠지만). 이주민으로 고생한 내 학생 한나, 현대 미술관에서 눈물 흘리며 보았던 서도호의 전시를 떠올리며, 우리의 집, 우리의 고향은 결국 이곳과 저곳 사이의 어느 지점, 서로를 바라보는 그 시선 어딘가에 있고, 그렇게 지어진 집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굳센 희망을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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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신학 오디세이아3’ 코너에 함께 연재합니다.
🌗 지난 12호에 보내드린 9월 묵상 잘 하고 계신가요? 시간 내서 꼭 해보세요! 다음 《오브》는 9월 30일에 발행됩니다.
보내주신 소중한 답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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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오브는 마치 뜨거운 여름을 견뎌낸 끝에 뜻밖의 수확물(?)을 만난 것처럼 유용한 책과 성찰의 방법들이 담겨있네요. 감사합니다! 지난번 수녀님 웍샵에 참여하고 의식성찰에 관심이 생겼는데 구체적인 길을 알려주시니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랭스로 돌아가다 읽어보고 싶네요. 지난호에 시작된 저의 책읽기는 신경숙소설가의 '외딴방'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역시 책읽기는 좋아요 ㅎㅎ
⇒ 수확물이라고 하시니 농부가 된 것 같고 좋네요. 책 읽기를 통해 고구마 줄기처럼 통찰이 줄줄이 수확되길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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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 묵상거리와 좋은 책을 소개해줘서 감사합니다. 요번 달은 특히 수녀님이 <유명하다> 시를 보내 주셨는데 이 시가 정말 마음에 울렸어요. 우리는 보통 누구에겐가 유명한 것보다 무엇에 유명한가를 찾게 되는데. 이 시가 9월에 내 영혼대로 살아보는 거에 많은 성찰거리를 준거같아요. 한 달이 지나가는 거에 그냥 무심하지 않고 이렇게 달마다 묵상하고 생각할 거리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좋아하는 시에요. 나는 누구에게 유명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네요. 의미있는 9월 보내세요! 🙏
독자님의 답장이 저희에게는 가을 열매보다 더 반갑습니다. 📮 이제 곧 추석이네요. 쉼이 있는 명절 누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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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 : 출판사 옐로브릭
- 에디터 : 오수경·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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