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안부가 도착했습니다.
[함께 듣고 싶은 음악]
샘김 - 그 여름밤 
비어있는 삶, 다정한 공터 텅에서 쓴 일기들

0723

  • 텅에서, 흐리고 이슬비

  • 아주 큰 연잎이 무성해 보이는 마치 나무 같은 아주 큰 식물을 보았다. 이름이 무얼까. 갓파가 우산 대용으로 쓰고 다닐 것 같은 생김새. 작은 친구들이 우산으로, 비 피하기용으로 들고 다녀도 될 것 같다. 너무 귀엽겠지.



  • 피크닉에서 나오는 길. 높은 담장 위로 여름이 잔뜩 피었다. 붉은 주황빛 능소화들이 활짝. 궂은 장마를 잘 버텨주었구나. 무궁화도 보았다. 내 왼손에도 있는데.



  • 피크닉에서 최근 작고하신 류이치 사카모토의 전시를 열어 보고 나오던 길이었다. 전시 규모가 작았을지 몰라도 마음의 울림이 꽤 컸다. 곱씹는 지금도 피부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니까. 언제 그의 음악을 처음 듣게 되었을까.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이름과 음악은 늘 친근했다.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익힌 것처럼. 낯설었던 적이 있나. 그래도 처음은 있었을 텐데 그 처음이 이상하리 만큼 생각나지 않는다. 살아오다보니 자연스레 내 삶에 스며든 인물과 음악.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행과 착오, 실패 그리고 성공을 거듭했을까. 그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별이 되어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유독 오늘 여름 향기가 짙고 감미로운 것 이때문 일까



  • 휴일의 종착지는 빈번이 그래왔듯이 텅에 왔다. 책을 읽는 내내 보드라운 향기가 피어오른다. 드라이한 파우더리함이 아닌 비누향 같은 산뜻하고 밝은 향기가 순식간에 휘감아 온다. 누구의 향기일까.
  • [두고 온 여름]을 앉은 자리에서 완독했다. 하루에 완독했던 적이 있었던가. 읽는 속도가 빨라진 것일까. 이전보다 독서를 많이 하면서 무언가에 집중하기를 잘하게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무어든 꾸준히 하면 늘고야 만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단정한 반복이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성취가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감으로 차곡히 쌓인다.


0726(수)


어김없이 텅. 퇴근 후에 찾은 건 두 번째다. 자리에 앉은 건 처음이지만. 입사하고 얼마 안되었던 금요일. 홀로 앉을 한 자리 없을 만큼 자리가 꽉차서 앉지 못하고 돌아왔던 날이 있다. 다행히 수요일 저녁은 꽤 한산하다. 아주 조용하지도, 너무 시끄럽지도 않은.

피로도가 높은 주간이다. 아직 수요일이라니. 그렇다고 이번 주가 빠르게 지나가지 않길 바란다. 다음 주면 첫 해외 출장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잘할 수 있을까. 비행기를 2시간 이상 타야 하는 것도 무섭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만큼 날 두렵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모든 이동 수단이 무섭지만, 비행기와 배는 특히 그렇다. 운에 맡길 수밖에.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올 수 있다면. 귀한 경험이 되길.


텅의 밀크티는 적당히 달다. 달곰한 맛. 달곰하다는 말은 최근뉴스레터를 보다 알게 된 단어인데 감칠맛 있게 달다는 뜻을 가지고, ‘달콤하다’보다 여린 느낌을 준다고 한다. 귀여운 단어다. 달곰. 계속 곱씹어 본다. 곱씹어 볼수록 달아지는 단어 같기도 하고. 담백하고 달달한 사랑은 달곰한 사랑인가. 달콤보다 부드럽고 다정한 느낌. 모두에게 달곰한 사랑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0806(토)

텅에서.


‘Loleatta Holloway - Cry to Me’를 들으며.

어김없이 무언가를 그으며 적어 보는 일기는 텅에서만 쓰게 된다. 거의 텅만 찾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괜히 머무르다 가고픈 마음이 한 획, 한 획을 긋게 만드나 보다. 열흘 만에 찾아왔다. 지난 주말은 금주에 떠난 베트남 해외 출장 준비로 들르지 못했기 때문에 주 1회는 꼭 찾아오던 방앗간을 들르지 못해서 나름 섭섭한 마음이 가득했다는 것.


이어폰에서 ‘Sam Cooke - A change Is Gonna Come.’이 나오고 있는데 도입부가 너무 좋아 바로 화면을 톡톡- 두드려 제목을 확인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여성분께서 꽤 짙은 향수 냄새가 난다. 달콤한 꽃향기. 프루티함이 더해진. 동시에 성숙함이 묻어나는 향기. 알 수 없는 실루엣이 머릿속을 휙휙 스쳐 간다.


개인의 삶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각자의 삶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들게 된 것일까. 너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요즘이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삶의 시작과 끝이 모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일까.


시작과 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과정만큼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더 밀도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무겁게 눌러앉는다. 밀도 있는 삶을 위해서 지금 부족한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당장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것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무료함도 잠시 마음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뒤따르는 조바심.


여유를 가지는 법 또한 밀도 있는 삶에서 중요하겠지만 여유를 가져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누려야 할까. 나에게 없는 것을 하고자 한다면 ‘척’을 하다 보면 진짜 그렇게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다. 여유 있는 척, 마음 넓은 척, 괜찮은 척. 남용하는 것은 안 좋겠지만 ‘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정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꾸며왔던 모습이 곧 내가 되는 순간.


금주 베트남 출장을 다녀와서 비로소 여행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여행은 참 좋구나. 그래서 다들 이따금 훌훌 털어버리고 여행이라는 쾌락을 느끼러 털어버리고픈 마음을 챙겨 떠나는구나.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올해에 떠날 계획을 세워야겠다. 혼자서. 제주든. 일본이든. 혼자서 해외여행을 해 본적은 없으니 가까운 일본도 좋겠지 싶다. 나의 마지막 스물셋, 스물다섯을 이왕이면 멋지게 갈무리 짓고 싶으니 구월엔 떠나야겠구나.


성장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움과 무능력함의 고개를 마주해야 한다.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따갑게 쏘아대도 그 뿐이다. 쏘아댈 뿐. 내 삶을 이끄는 것은 그들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운영한 지 벌써 2년하고도 반이 흘렀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끈끈한 마음과 다정한 마음이 넘쳐나는 공간을 꾸리는 건 정말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일이다. 누군가가 위로받는 공간이자 나 또한 위로 받는 소중한 공간. 내게 위안이 되는 공간을 직접 구축해 나간다는 것은 지치는 삶에도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요즘 자주 느낀다. 자주 힘들어서인지. 갈수록 나만 챙기게 되는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훑어보게 되는 시간. 조금 더 다정해지는 순간. 다정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해준다. 나의 낭만이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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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의 글을 소중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정한 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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