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흑과 백, 찹쌀과 멥쌀의 조화 옥돼지찰(블랜딩)
제공: 우보농장 이예호  
제공: 우보농장 이예호
요즘 장안의 화제라서 안 본 사람도 다 본 것 같다는 흑백요리사. 나도 재미있게 보았다.
이 시리즈가 남다른 것은 경연방식이나 출연진도 있겠지만 음식을 아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 

이전까지도 수많은 국내외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가 있었는데 성공한 쪽으로는 고든렘지의 헬스키친 (현재 시즌23까지 나왔다) 와 아이언셰프를 꼽을 수 있겠다. 국내의 마스터셰프코리아나 한식대첩 같은 프로들도 제법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나는 고든 렘지가 욕하는 것 보는 재미에 헬스키친은 보는데(다들 그 재미로 본다고 생각한다) 다른 프로는 거의 안 보는 편이었다.요리에 자체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그저 예쁜 그림 잡아주는 소품 역할이나 하고 있으니 이걸 요리프로라고 봐야할지 어떨지. 이번 흑백요리사는 요리사가 요리하는 과정도 보여주고,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기법으로 요리하는지를 말할 기회를 제법 길게 주어서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공부도 많이 되고 좋았더라는 것.

각설하고, 한식, 일식, 중식 등 아시아 요리를 하는 셰프들의 숫자가 당연히 많았는데 전편 수백 가지의 요리 중에 밥이 주인공이 되는 요리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1라운드 탈락의 비빔밥 정도일까. 아니, 그쪽도 '비빔'이 주지 '밥'이 주인공은 아니었다. 아직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밥을 연구하는 나같은 요리사는 별종 중의 별종인 것이다.  

그런데 하기는, 뭐만 하면 별종이긴 하다. 한주 관련해서도 일찌기 한주의 프리미엄화가 어쩌고 떠들어댔지만 그 때는 무관심 정도도 아니고 욕도 얻어먹고 그랬다. 갔던 길 한 번 더가는 것 어려운 것 없다. 시간 되면 다 따라오더라.


이번에 소개하는 쌀은 옥돼지쌀이다. 옥돼지라는 품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옥경과 멧돼지찰의 블랜딩을 한 쌀이다. 멥쌀에 찹쌀을 좀 섞는 것은 당금 시장에서 품질이 좀 많이 떨어지는 멥쌀에다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찰기와 윤기를 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그런데 물론 이 경우는 그것이 아니고 추구하는 바가 정확히 있다. 몇 번의 실험 끝에 대략 그 추구하는 바가 구현된 것이 옥돼지쌀밥이다.

옥경과 멧돼지찰에 대한 설명은 이미 뉴스레터로 보내드렸지만 브러시업이 필요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고.

13. 쌀중의 쌀, 왕의 쌀 옥경

18. 위풍당당한 외모와 식감, 멧돼지찰

추구하는 바는 진밥과 고들밥의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이 차이는 달걀을 아래로부터 깰 것이냐 위로부터 깰 것이냐 만큼 어려운 문제다.

돌아다니면서 행사를 하다보니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서 물조절 불조절 하는 것이 겁났는데 이제 그런 부분은 어느 정도 내공이 붙은 느낌. 하지만 많게는 20명 가까이 오는 행사장에서 밥을 지을 때는 이 화해할 수 없는 취향의 간극에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주로 사용하는 쌀이 귀도. 귀도는 그냥 한국인의 밥맛 취향이라 대충 중간 정도로 잡아서 지어놓으면 다들 만족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행사를 하던, 가게 손님이던 계속해서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나로서도 한 종류 쌀만 소개해서는 토종쌀의 다양성을 알리는 취지에 맞지 않다.

그래서 무르고 부드러우면서도 찰기 있고 동시에 꼬들한 밥을 어떻게 지을까 하는 이상한 궁리 끝에 나온 것이 옥돼지쌀이다.  

멥쌀이고 알이 굵은 멥쌀 옥경을 3, 찹쌀이고 알이 작은 편이면서 특유의 줄무늬와 그에 따르는 향이 있는  멧돼지찰을 2 정도로 섞는다. 잘 섞어서 물은 조금 많은 듯이 주고 압력솥에 밥을 짓는다(꼭 압력솥이 아니어도 상관 없는데 물은 대신 더 주어야 한다).

이러면 처음에는 밥이 좀 부드러운 듯한 느낌이 난다. 단맛도 좋고 향도 있는 이 밥을 한 술 뜨면 누구라도 일단은 만족하지만 식감의 취향이 단단한 쪽인 나같은 사람은 조금은 아쉬움이 있으 터. 하지만 쌀과 밥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한 5분 쯤 있으면 밥이 조금 식으면서 찰기가 두드러지고 강건한 씹는 맛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두 취향을 다 만족시키는 묘수가 생겨난 것. 뒤의 식감이 싫다는 분은 소스나 국물로 조금씩 적셔가며 드시면 계속 부드러운 식감 유지가 가능하다.

이 블랜딩을 성공하고 나서 어찌나 즐거운지. 단지 하나의 문제를 푼 것뿐 아니라 앞으로 수백 종의 쌀로 재미있는 블랜딩을 할 생각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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