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아니라 아부지...!"

칰플릭스: 목요일 밤 방구석에서 치킨을 뜯으며 볼만한 넷플릭스 작품을 심야편지 에디터 H가 리뷰합니다.
2주에 한 번 치킨맛 리뷰 들고 찾아올게요!

- 🤓 에디터 H

"어머니...가 아니라 아부지...!"

김의환

카고 Cargo | 2018 | 104분 | 15세 관람가
샤프트 | 2019 | 112분 | 청소년 관람불가
장마가 오는 건지 마는 건지, 간 보듯이 애매하게 덥고 습한 날이 이어진다. 이번 주말과 다음 주에 휴가 계획이 있다면야 울상이겠지만,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을 지키고야 말 것이므로 해당 사항 없다. 여름이니까 호러 한 편, 액션 코미디 한 편을 챙겨보겠다며 에어컨 틀고 맥주 한 캔 따고 넷플릭스를 켠다. 캐릭터가 확실한 주연 배우들이 ‘아버지’로 나오는, 하지만 속도와 온도 차가 큰 두 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본다. 

<카고>

사는데 심통이 나거나 염증을 느낄 때면 세상이 콱 망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덕분에 종말을 테마로 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특히 좀비 아포칼립스 소설과 영화를 달고 살던 시절이 있다. 살아남은 자들이 오직 살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그 와중에 나타나는 편 가르기와 갑질, 정치질을 보면서, ‘저러느니 좀비 되는 게 낫지’와 ‘저렇게라도 살아야지’ 사이를 오갔다. 이제는 ‘물리면 별수 있나’ 정도에서 맘 놓고 좀비를 본다.

별책지기 J가 추천해준 <카고Cargo>는 2013년에 나온 7분짜리 단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장편 영화다. 영화 <월드워 Z>, <28주 후>, <부산행>, 드라마 <킹덤> 등이 삽시간에 좀비가 확산되는 속도감과 물량으로 스릴을 자아낸다면(요즘 좀비는 더럽게도 빨리 달린다), <카고>는 느리고 서정적이며 적막한 로드 무비다. 좀비가 주요한 소재로 나오지만 전형적인 좀비물은 아니다. 이 영화는 이미 황량해진 세계에서 한 아버지와 딸이 끝까지 버텨가는 과정을 촘촘히 그려낸다.

좀비물을 보는 첫 번째 즐거움은 이 가상의 감염된 세계가 어떤 곳으로 설정되어 있는지 단서를 하나씩 파악하는 데서 온다. 배경은 호주의 황무지. 배에 몸을 싣고 정처 없이 강 따라 흘러가는 부부와 갓난아기 세 식구가 나온다. 식량난에 허덕이다 버려진 배에서 통조림과 와인을 구한 기쁨도 잠시, 아내 케이가 무엇인가에 물려 좀비로 변해간다. 좀비 영화의 전형적인 딜레마가 등장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가 아닌 존재로 변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 지켜봐야만 한다.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 앤디는 설상가상 아내에게 물려서 감염된다. 좀비가 되기까지 48시간이 남았다. 그 전에 딸 로지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놓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버지는 딸을 업고 한없이 걷는다. 그러면서 더는 아버지가 아닌 좀비 곁을 지키는 호주 원주민 아이 투미, 뭔가 미심쩍은 냄새를 풍기는 빅 등등 여러 생존자를 만나고, 이들과 마음을 나누거나 사투를 벌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상황이 처절해지며 감동이 피어나는데, 아무래도 단편을 늘려 놓다보니 늘어지고 식상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이 영화가 재밌다고는 말 못 하겠다. 다만 재밌자고 만든 좀비 영화가 아니고, 울리자고 만든 슬픈 좀비 영화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아버지 앤디 역할은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호빗>, <블랙 팬서>에 출연했고 무엇보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존 왓슨으로 잘 알려진 영국 배우 마틴 프리먼이 맡았다. 모험에 휘말리는 주인공 역을 주로 해왔고 까불거리는 느낌이 제법 잘 어울리는 그가 이번에는 시종 진중한 연기를 펼친다. 계속 그의 눈빛을 바라보게 된다.

<샤프트>

<샤프트>는 2주 전에 공개된 따끈따끈한 신작으로, 홈 화면에 대문짝만하게 떠서 바로 봤다. 사립 탐정 존 샤프트 역을 MCU의 닉 퓨리, 새뮤얼 L. 잭슨이 맡았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 그 자체다. 나오는 영화마다 어머니와 하나님을 그렇게 찰지게 찾는다는,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쿠키 영상에서 “어머니...”로 극장판 한정 효자가 된 그 새뮤얼 L. 잭슨이다. (유튜브에서 ‘Samuel L. Jackson’을 검색하면 어머니 컴필레이션이 나올 정도다. 중독성 주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뉴욕 할렘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말소리와 총소리가 신명 나게 울린다. 존 샤프트는 할렘에서 거친 일을 처리하는 뉴욕 경찰인 탓에, 가족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아이와 아내를 두고 그는 집을 나간다. 남겨진 가족은 존이 가족을 버렸다며 그를 애써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대차게 뉴욕 경찰직을 그만둔 그는 사립 탐정으로 직종을 변경한다.
 
20여 년 후, MIT를 졸업하고 뉴욕 FBI 본부에 데이터 분석가로 들어간 아들 JJ(제시 T. 어셔)는 절친 카림 하산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할렘에 제 발로 찾아간다. 혼자 힘으로 해내기 어렵다는 걸 깨닫고, 할렘을 꽉 잡고 있는 아버지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처음으로 아버지 샤프트를 찾아간다.

샤프트 부자가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서면서, 아주 선명하게 대비되고 시도 때도 없이 충돌하는 ‘샤프트들’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존 샤프트는 욕설과 음담패설, 격한 액션을 일삼고 틈만 나면 작업을 거는 데다가, 아들의 음악 취향이며 옷차림, 집 인테리어 등에 온갖 편견을 가진 문제적인 아재다. “모피어스 같은 흑인”이라는 말을 듣자 버럭 화를 낸다거나, 샤프트만의 분류 시스템으로 ‘내가 안 믿는 푸에르토리코인’ 파일이 있다거나, 아내에게는 쩔쩔매면서 허튼 수작 부리는 등 깨알 같고 뒤틀린 웃음 포인트가 숨어있다. 불편하다면 불편한데 너무 과장되고 전형적이라 우스꽝스럽다. 대화도 참 한숨 나오면서도 쓸데없이 명쾌해서 재밌다.

J(존 샤프트): “진짜 남자는 존심이 있지.”
JJ: “아뇨, 진짜 남자는 자기 일에 책임을 져요. 자신의 잘못도 인정할 줄 알고요.”
J: “진짜 남자는 화가 나면 사람 하나를 걸레로 만들 정도로 강해야 해.”
JJ: “샤프트 가문의 가훈인가요?”
J: “불문율이야.”

이후에는 할아버지까지, 3대인 존 샤프트 1세, 2세, 3세가 모여서 마약 집단을 소탕하기에 이른다. 막판까지 시원하게 욕하고 부수고 달리는 데다, 사무엘 L 잭슨 특유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영화 끝나고도 귓가에 맴돈다. 어쨌든 피는 못 속인다는 것, 가족은 다시 뭉친다는 것을 보면 의리 있는 철부지 아버지 존 샤프트를 마냥 미워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김의환 | 땀이 많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손수건을 꼭 챙겨 다닙니다.
오글리의 별책부록

👨‍👦7분짜리 좀비 영화, <카고>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 단편영화제 결선작 <카고>를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입니다. 단편과 장편 모두 벤 하울링, 욜란다 람케 감독이 함께 작업했어요. 대사 한 줄도 없는 7분짜리 영화지만, 그보다 오랜 여운을 선사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영화의 풀버전을 보실 수 있어요!)
<카고Cargo> |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 단편영화제 결선작
🕶 <샤프트>의 과거
<샤프트(2018)>의 전작들을 소개합니다.

<샤프트(1971)> | 1971년, 어니스트 타이디먼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한 첫 영화 <샤프트>가 만들어집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흑인을 주인공으로 성공한 기념비적인 영화인데요. 감독인 고든 파크스부터 대부분의 제작진도 흑인이었기에, ‘블랙스플로이테이션(흑인을 위한 영화)’의 시초로 평가된답니다. 영화 음악을 작업한 아이작 헤이스의 곡 ‘샤프트’는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샤프트(2000)> | 사무엘 L. 잭슨이 주연을 맡은 첫 번째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갱단과의 대결과 인종차별을 다루는 정통 범죄 액션물의 느낌이 강해, 2018년 리메이크된 <샤프트>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죠. 원작 영화의 주연이었던 리차트 라운트리도 찬조 출연하는데요. 이렇게 1대(리처드 라운트리)~2대(사무엘 L. 잭슨)~3대(제시 어셔)에 이은 샤프트가(家)를 완성하여, 모든 영화에서 혈육으로 설정된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 😉 별책지기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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