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가 사진을 찍지 않을 때
케이채의 메일링 산문집
2024년 8월2일 금요일, 첫번째 이야기.
 

어떤 이의 꿈
 

아 또 이런 꿈이다. 잠에서 깨어나며 생각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다. 누구나 자주 꾸는 형태의 꿈이 있지 않을까? 남들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 같다. 재미난 것은 이게 나이에 따라, 혹은 내 삶의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또한 나만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직 나의 꿈 밖에는 알 수 없는 법이니까.


어릴 때 자주 꾸었던 꿈은 분명히, 아이들이 많이 꾸는 꿈이라고 했던 종류의 것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 절벽이라든지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몸을 들썩이며 깨어난 적이 참 많았다. 어른들은 그런 꿈을 두고 ‘키 크는 꿈’이라고 했던 것 같다. 키가 크려고 그러나보다! 할머니는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데 그 꿈, 그렇게 신통한 친구는 아니었던 모양. 절벽에서 꽤나 떨어졌던 것 같은데도 지금 나의 키는 내 나이 대 남자들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또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꿈을 이야기하기로 했으니..)


두번째로 기억에 남은 ‘자주 꾸는 꿈’은 20대 때 많이 꾸었는데 이빨이 빠지는 꿈이었다. 왜 그런 꿈을 꿨는지 아직도 미스테리다. 이빨 하나가 똑 빠지는게 아니라 여러 이빨이 흔들흔들, 그러다 다 빠지기도하는 꽤나 끔찍한 형태의 꿈이다. 20대의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고 항상 날이 서있었기에 아마 그런 이유로 꾸었던 꿈이 아닐까 짐작만 해본다. 한때는 꽤나 자주 꾸었던 꿈인데,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이 그러했듯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는 꾸지 않게 되었다.


이후 정말 오랫동안 자주 꾸었던 형태의 꿈이 하나 있다. 너무 오랫동안 내 꿈 속의 단골손님이어서 나중에는 꿈 중간에 아 이거 꿈이구나 하고 알아챌 지경이 됐다. 어떤 꿈이냐면... 내가 달릴 수가 없는 꿈이다. 무대는 항상 다르지만 꿈속의 나는 도망가야하는 상황, 혹은 급히 어딘가를 가야하는 위기 앞에 뚝 떨어지게 된다. 나는 안간힘을 써서 목적지로, 내가 가야하는 방향으로 가지만 다리가 이상하다. 무겁거나 아프거나 그런건 아니다. 오히려 흐물한 것 같달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달까. 아무리 달려보려고 해도 그저 아주 천천히, 느리게.. 나아갈 뿐이다. 결국 나는 도망치는데 실패하거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깨버리고 만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 꿈에서 달릴 수 없었다. 물론 현실에서도 딱히 빨리 달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꿈의 시기를 지나 찾아온 것이 바로 어젯밤 꾸었던 꿈의 형태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 꿈을 꾸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몇년은 되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나를 종종 찾아오는 이번 꿈의 형태는 내가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국을 하러 공항에 왔는데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든지. 공항에 나왔는데 호텔에 뭘 두고 왔다든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유난히 공항, 호텔이 많이 나온다. 어젯밤의 꿈은 가족들과 뭘 먹으러 가려고 호텔 밖으로 나왔는데 내가 이상한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팬티 바람에 가운만 걸친 모습이었다. 여러분의 비위를 위해 상상 금지) 밖에 나와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우리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를 찾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여기까지 보면 별거 아닌 꿈이다. 돌아가서 물건 찾으면 되고, 옷 갈아 입으면 되지. 그런데 이 꿈이란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분명히 (꿈속에서는)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이리 가면 다른 길이, 저리 가면 또 다른 길이. 계속 나의 의지와 달리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흐른다. 비행기 이륙 시간이 되고, 카메라를 찾을 수 없고, 호텔 방도 결국 돌아가지 못한다. 단 한번도 이런 꿈들에서 나의 목적을 달성한 적이 없다. 대부분 진짜 꿈속에서조차 지칠 정도로 한참을 돌다가 어느 순간 ‘아 이거 꿈이구나’라는 자각과 함께 잠에서 깬다. 그게 요즘 나의 꿈이다.


물론, 매일 이런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단골 소재로 등장할 뿐 무척 다양한 꿈을 꾼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을 무척 길게 꿨다. 내용도 영화 한편을 연상시킬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지닌 것도 많았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이젠 매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법 잦은 확률로 기억에 남는 꿈을 꾸고는 한다. 어떤 꿈은 너무 가슴 아파서 깨어났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을 정도다. 꿈 속에서 겪은 일의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 눈을 뜨고도 바로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 여운이 너무 깊게 남아 가슴이 시리고, 가끔은 너무 생생한 꿈이라 정말 그게 꿈이었는지조차 의심을 한다. 이런 꿈들에서 내가 깨는건 주로 ‘이렇게 멋진 일이 나에게 벌어질리가 없다. 이건 분명 꿈이구나’라고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이다. 어떻게 얘기하자면 그런 '꿈 같은' 현실은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없었다고나 할까.


기억에 남는 꿈을 꾸면 해몽을 해보려는 사람이 많다. 내 꿈들은 하도 복잡해 딱히 해몽할만큼 뭔가 뚜렷한 내용은 없다. 그러니까 말이 좋아 영화 같은 꿈이지 남들은 그냥 ‘개꿈’이라고 할만한 번잡하고 잡다한 꿈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좋은 꿈을 꿨다고 그날 하루를 기대한다든지, 나쁜 꿈을 꿨다고 미래를 걱정한다든지 그런 경우는 없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다르다. 어머니는 본인의 꿈을 굉장히 믿고 따르시는데,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나타난다든지 하면 아주 분명한 메시지라고 생각하신다.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다는 이유로 땅을 산 적도 있는 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땅을 산 것은 매우 나쁜 선택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할머니가 땅을 사라고 말씀하시려고 꿈에 나온게 아니라 사지 말라고 말리려고 나오신거라고 농담을 한다.


그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꿈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가 사진 작업을 위해 해외에서 몇 달을 머무를때면, 나에 대해 안좋은 꿈을 꾸어 걱정이 된다며 연락이 오는 적이 많았다. 어머니의 안좋은 꿈이 한번도 적중한 적은 없다. 그런 꿈을 꾸셨을 때 내가 위험 근처에 간 적도 없다. 뭐 그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른다. 나쁜 꿈은 물론이고 좋은 꿈도 한번 그 ‘신묘함’을 내게 보여준 적이 없으니, 내가 딱히 꿈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와는 또 달랐다.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아내도 꿈에 민감한 편이다. 길몽이다 싶은 꿈을 꾸면 로또를 꼭 산다. 나는 평생 로또/복권 같은 걸 한번도 사본 적이 없는데, 아내 덕분에(?) 처음 사게 되었다. 지금도 내가 사는건 아니고, 아내가 좋아하니까 사다주려고 사는 정도다. 어릴때부터 나는 딱히 ‘행운’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 집안 내력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릴때 아버지는 종종 우리 집은 ‘그냥 딱 열심히 일한만큼만 버는 팔자’라고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나도 그런 쪽인가 보다. 운이 좋아 뭐가 된 적은 잘 없다. 그래서 한번도 그런 요행수에 걸어본 적이 없다. 그 정도가 심해서 사진 관련한 공모전이라든지 그런 것에도 한번 지원해보지 않았다. 나의 운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믿음으로 살았다. 돌아보면 좀 쓸데없이 비장했던 감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로또를 사지는 않지만 아내가 하나씩 사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비는 정도는 되었다.


이렇게 꿈에 민감한 아내가 가장 꾸고 싶어하는 꿈은 그래서 바로..! ..똥 꿈이다. 똥이 나오는 꿈이야말로 재물과 복을 가져오는 꿈 오브 더 꿈임을 아내도 잘  알고 있기에. 하지만 꿀 수 있다고 꿀 수 있는게 아닌 것이 또 똥 꿈이다. 괜히 영험한 꿈이 아니다. 그렇게 꿈을 꾸지만 똥이 꿈에 나오는 일은 정말 잘 없다. 일단 꿈에 똥이 나온다는 자체가 흔치않은 일인데 똥이 나와도 거기서 끝이 아니다. 똥에서 구르든지 해야 된다는데 그게 또 어렵다. 꿈이라고는 해도 대부분 깨기 전까지는 꿈이라는 자각을 못하기 때문에, 꿈속의 나라고 똥 묻히는 것을 좋아할리가 없다. 깔끔한 아내는 나보다 더 심해서, 똥이 출연을 했지만 너무 더러워하며 피해버린 꿈이 여러번이라고 한다. 나도 똥밭을 보거나, 똥을 발견한 꿈은 몇번 꾸어봤지만 한번도 똥밭에 구르진 못했다. 깨고나서야, 아 거기 그냥 온몸을 날렸어야 되는데! 하고 후회하지만 이제와서 어쩌랴. 내가 자주 인용하는 옛 조상님들의 말대로,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에 불과할 뿐이다.


꿈이 정말 행운을, 재물을 가져다주는지는 잘 모른다. 내가 꿈에 대해 가진 망상은 조금 다른 쪽이다. 나는 우리가 꿈을 꿀 때 이 세상과 다른 어느 곳으로 가는거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게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일수도 있고, 멀티버스일수도, 혹은 몇억 광년 떨어진 우주 반대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꿈 속에서 그 세계로 가 잠깐 생활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게 아닐까? 그러니까 반대로 오히려 여기가 꿈이고, 꿈 속이 깨어있는 것이 아닐까 같은 상상 말이다. 정말 진지하게 믿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난 세상에 비현실적인 일이 좀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게 무엇이 됐든,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죽는게 당연한 거라지만 그래도. 뭐가 좀 있으면 좋겠다. 매일을 그런 엉뚱한 상상으로 머리를 가득채우곤 하루를 허투로 보낸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늘 조바심을 내면서. 하지만 어쩌면 나는 이미,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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