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46회 (2022.03.16)
▲ 서유경 마케터가 직접 찍은 사진

안녕하세요, 저는 서유경이라고 합니다. 카페꼼마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카페꼼마의 슬로건은 '일상을 여행처럼'입니다. 일상을 떠나는 걸 우린 여행이라 부릅니다. 일상은 길고, 여행은 짧습니다. 일상은 익숙하고 여행은 낯설지요. 일상은 반복적이고, 여행은 이벤트입니다. 이렇게 퍽 다른 두 단어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일상이 여행이 되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것, 이제는 흔한 슬로건이지만 실제로 이런 감동을 마주하거나 이렇게 살아내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가 애정하는 두 편의 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서유경 마케터가 사랑하는 첫번째 시💕


재경이 코딱지 엄마 코딱지 (성미정,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코딱지가 너무 맛있어

딸기 맛이 난다는 재경이에게

그럼 엄마 것도 먹을래 했더니

내 것만 먹을래 한다

 

분별이 생겼구나

다섯 살 사람 배재경

엄마 코딱지 제 코딱지

가리기 시작했구나

 

하긴 딸기 맛이 난다는 너의 코딱지

엄마도 차마 먹을 수 없으니

2002년 5월 21일 엄마로부터 나왔으나

 

너의 코딱지는 너의 코딱지

엄마 코딱지는 엄마 코딱지

 

그 코딱지만한 거리를 확인한

오늘이 대견하고 왠지 쓸쓸하구나

문학동네시인선 008 성미정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표지 뒷면에는 성미정 시인의 앞선 시집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대머리와의 사랑이라니요, 사랑은 야채 같다니요. 이렇게 직관적이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언어가 시가 되는 것을 정말이지 좋아합니다.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에는 삼선짬뽕을 먹다가 혀를 깨문 날도, 거기에 난 흰 털을 처음 발견한 날도, 아들 재경이와의 시시콜콜한 일상들도 시가 되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내 일상이 너무 평범하고 권태롭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성미정 시인의 시는 약이 됩니다. 평범한 하루가 나에게 건네는 말에 귀기울이고 싶어집니다.

 

재경이는 엄마와 동등하고 구별된 인격체, “다섯 살 사람 배재경”이자 자기 주관과 호불호가 있는 삶의 주체임을 확인하는 “대견하고 왠지 쓸쓸”한 이 과정이 코딱지로부터 시작된다는 게 정말 귀하고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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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쿠브레 & 카페꼼마 여의도 신영증권점
💛 카페꼼마는 쉼터입니다.
'카페꼼마'는 맛있는 커피☕와 빵🍞, 그리고 책📖으로 독자와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복합문화공간입니다. 2011년 홍대 앞 서교동 1호점을 시작으로 합정점과 연남점, 얀 쿠브레와 함께한 여의도점까지 전국으로 매장을 확장하며 도심 속 쉼터로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서유경 마케터가 사랑하는 두번째 시💕


오래된 기도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시인은 우리의 일상이 기도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도하기 위해 깊은 산속 기도원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물을 떠놓고 새벽마다 정성을 쏟지 않아도, 성지를 향하거나 찾아가지 않아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간다면 그 자체가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같은 곳을 쓸고 닦는 일의 중함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지, 매일매일 오가는 길의 풍경을 잘 간직해야지, 때마다 피고 지는 꽃을 한번 더 들여다봐야지, 작은 친절의 힘을 믿어야지, 그것이 기도임을 잊지 말아야지 다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쉽습니다. 매일 붕붕 떠 있을 수야 없지만 너무 무뎌지는 것은 경계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신비는 계속해서 발견됩니다. 반려견 ‘토르’의 까만 눈동자 안에서, 서로가 베푸는 뜻밖의 친절 속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나의 한계 가운데. 일상의 반복은 축복이고, 반복 가운데 일어나는 변주를 목도하는 찰나는 예술적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의 낭만과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말하다가 ‘습관에 대하여’라는 챕터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없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서로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의 크고 불그스름한 덩어리 같았던 동네 상점들에게서 건축학적인 개성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에 다시 주목해볼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우리의 일상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여러분. 저는 빵을 팔고, 커피를 팔고, 책을 팔며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카페꼼마에서 부디 ‘일상을 여행처럼’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시믈리에💛는 김소연 시인입니다. 

시집 『수학자의 아침』과 『i에게』 등으로 시적 미학을 탐구해온 김소연 시인이 고른 시 두 편을 기대해주세요.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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