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혁신을 이끌지만 아직 숫자는 못 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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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의 에디터 장희수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가 모르는 새에도 일상 속 많은 물건들에 들어와 있어요. 우리는 시리를 부르고, 검색어가 자동완성되기를 기다리고, 모르는 영어 문장을 번역하면서 매일 인공지능 기술을 쓰고 있죠. 인공지능 개발자가 아닌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에 관한 얘기를 언론에서 대부분 듣게 되는데요, 많은 기사들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등 인공지능 기술을 굉장히 무섭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한겨레, 2016; ㅍㅍㅅㅅ, 2018 등).

오늘은 인공지능이 컴퓨터를 어떻게 혁신하고 있는지, 하지만 왜 이러한 변화를 아직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오늘의 에디터 : 장희수
빅테크의 권력과 욕망을 다루는 에디터입니다
오늘의 이야기

1. 인공지능 기술이 컴퓨터에 가져오는 변화
2. 컴퓨터칩이 만들어지는 방식의 변화
3. 프로그래밍 방식의 변화
4. 이래도 아직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요?

👑 인공지능 기술이 컴퓨터에 가져오는 변화

구글 텐서 디자인 (출처: 구글 블로그)
구글은 지난 10월 20일, 스마트폰 픽셀6 시리즈를 공개했는데요, 이 폰들은 인공지능 기술만을 위해 구글에서 자체 제작한 텐서(Tensor) 칩을 탑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텐서 칩을 기반으로 한 머신러닝(기계 학습) 기술로 픽셀6 사용자들은 음성 인식, 사진 사후 보정, 실시간 캡션 및 번역과 같은 다양한 기능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해요(블로터, 2021). 

아이폰의 칩 역시 애플이 “뉴럴엔진(neural engine)”이라고 부르는, 인공지능 기술을 전담합니다. 지난 9월 14일 애플이 공개한 아이폰13은 ‘AI5 바이오닉'이라는 AP칩이 탑재되어 초당 14조8000억 회의 연산량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죠(디일렉, 2021). 내가 매일 일상에서 사용하는 핸드폰에서도 사실 인공지능 기술이 다양한 기능들을 이미 관리하고 있었다니. 핸드폰을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제 핸드폰도 사실상 작은 컴퓨터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이 '컴퓨터'에 가져온 변화는 비단 속도나 모양을 넘어섭니다. 그 변화는 크게 컴퓨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와 어떻게 프로그래밍되는지에서 뚜렷이 나타나는데요, 하나씩 살펴보도록 해요.

 🧐 컴퓨터 칩이 만들어지는 방식의 변화

우선, 인공지능 기술은 컴퓨터와 이 컴퓨터를 운영하는 칩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어요. 그전에 컴퓨터의 작업수행 능력은 한 연산에서 다음 연산으로 얼마나 빨리 넘어갈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됐어요. 반도체의 집적회로 성능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도 충실하게 지켜져 왔는데요, 이제 그 법칙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테크월드, 2021). 이는 딥러닝 기술 때문인데요, 딥러닝 기술은 정확한 하나의 연산에서 정확한 다른 연산으로 넘어가는 작업이 아니라 많은 양의 덜 정확한 연산을 한 번에 처리하는 데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이런 딥러닝 기술의 특징 때문에 컴퓨터는 새로운 부류의 칩이 필요해졌어요. 정확한 연산을 순서대로 빠르게 처리하는 칩이 아닌, 덜 정확하더라도 많은 연산을 빠르게 이동시키고 필요할 때 데이터를 빠르게 불러줄 수 있는 칩이었죠. 딥러닝 기술이 산업 내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 이 역할을 맡게 된 칩이 바로 그래픽처리장치(GPU)입니다. 이미 GPU는 이미 컴퓨터 스크린을 가득 담는 많은 양의 이미지 픽셀을 이동시키고 불러들이는 데 최적화되는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었거든요.

위에서 이야기했던 구글의 픽셀6 칩은 구글의 텐서프로세스 칩 혹은 TPU라고 불리는 녀석인데요. 이 TPU가 앞서 말한 고용량 저성능의 연산을 굉장히 빠르게 처리하고 불러들여야 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최적화된 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 2-3년간 구글은 이 TPU 칩을 다른 기업에도 제공하고 있고, 어느 새 전세계 데이터 센터의 기본값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구글이 심층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이용한 새로운 종류의 TPU를 디자인해 공개한 바 있는데요(사이언스모니터, 2020). 이런 칩들이 개발되는 방향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보면, ‘컴퓨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게임의 룰이 통째로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  프로그래밍 방식의 변화

두번째는 더 잘 알려진 변화인데, 인공지능 기술이 컴퓨터를 어떻게 프로그래밍하는지의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는 점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컴퓨터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칙 안에서 작업을 수행했는데요,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컴퓨터는 규칙을 알아서 배우고 찾고 이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이 방법의 장점은 컴퓨터가 사람이 보지 못하는 많은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 n회차'라는 말을 종종 쓰잖아요. 사람이 한 일생만을 살면서 배워야 하는 규칙들을 컴퓨터는 수억만 번을 리플레이-리스타트하면서 인생 수억만 회차를 재경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많은 규칙들을 배울 수 있는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때 온 국민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모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에서 수억만 회차의 바둑을 뒀을 인공지능 모델의 위력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죠.

최근의 딥러닝 기술들이 해낼 수 있는 작업들을 보면 경이로워요. 아니, ‘아보카도 의자를 만들어줘'는 사실 사람도 처음 들으면 당황할 만한 주문 아닌가요? 이걸 인공지능 기술이 해냅니다(아래 사진). 최신의 딥러닝 기술은 이제 목소리도 구분하고요, 이미지 속에서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진짜 놀랍죠?

(출처: 오픈AI)

💊 이래도 아직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요?

인공지능 기술이 여러 가지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인간을 지배"한다는 건 거의 가망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아보카도 의자 이미지를 생성한 모델은 인공지능연구소 OpenAI에서 Dall-E(네, 그 살바도르 달리 맞습니다)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모델입니다. 텍스트 설명을 보고(예: 아보카도 모양의 의자)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모델인데, AI타임즈에서 한 IT 종사자가 이제 “창조성은 인간의 영역만이 아니”게 되는 상황에 관한 염려를 드러내기도 했을 정도로 모두에게 놀라운 모델이었죠.

그런데… 제가 최근 만난 인공지능 개발자들의 얘기에 따르면, 아직 걱정 그렇게 많이 안 해도 된다네요. 안타깝게도 인공지능의 혁신에 관한 얘기는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의 한계에 관한 얘기는 대중에게 많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위에서 아보카도 의자 그림을 멋지게 생성한 Dall-E 모델만 해도 OpenAI가 직접 공개한 하자가 있어요. 이 모델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모델 중에서는 가장 성능이 좋은 모델인데도, 숫자를 못 세요. 아래 이미지를 보시면, “세 개의 정육면체, 맨 위에 빨간 정육면체, 그 아래 초록 정육면체. 가운데에 초록 정육면체, 그 아래 파란 정육면체. 파란 정육면체가 맨 밑.”이라는 글을 보고 생성한 이미지들은 정육면체의 개수도, 순서도, 색깔도 모두 엉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사람에게 그리라고 하면 매우 쉬운 그림일 텐데, 이렇게 많은 발전을 해온 인공지능 모델에게도 이런 작업은 아직 매우 어렵습니다. 

숫자 셀 줄 모름… (출처: OpenAI 블로그)
물론, 글을 보고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것과 같이 창의적인 일을 인공지능 기술이 해낼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워요. 여러 가지 요소를 조합하고 추상적인 단계를 많이 거쳐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나무'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하면, 모델은 어떤 색의 나무를, 어떤 높이로, 어느 위치에 그릴지 등을 혼자서 다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죠. 이렇듯 Dall-E 모델이 이미지 생성으로는 당해낼 자가 없는(?) 현재 인공지능 모델 대장 모델인데도.. 이 정도 수준입니다. 그 발전이 매우 놀랍긴 하지만, 아직까지 인공지능 모델이 세계를 지배하는 일은 꽤나 먼 미래의 일이라는 믿음을 주지 않나요?

앨런인공지능연구소(AI2)에서도 조재민과 동료들(2020)이 지시문을 보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모델을 발표해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이 논문도 혁신적인 인공지능 모델로 높은 완성도로 주목을 받았는데도 모델이 생성해낸 아래의 이미지를 보시면, 이미지들이 상당히 완성도가 떨어지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연구자들이 공개한 데모에서 직접 이미지를 생성해 볼 수 있습니다. 재미로 해보세요!)

💊 결론

인공지능 기술은 한 마디로 컴퓨터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통째로 바꾸고 있어요. 굉장히 혁신적인 기술이고, 앞으로도 그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요.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산업을 완전히 뒤흔들고 있다고 해서, 인간 세계를 지배할 날이 가까워진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인공지능 기술은 그 잠재력에 관한 기대와 인공지능 관련 영화/문학작품들로 인해 현재와 괴리된 비현실적인 두려움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인공지능 기술이 구체적으로 왜 혁신적인지 그리고 현재의 실체는 무엇인지를 모두 균형있게 보여드리고 싶어 오늘 뉴스레터를 작성하게 됐습니다. 마무리는 사람도 구분하기 힘들 것 같은 트럼프 vs 닭가슴살 구분하기 이미지로 해볼게요!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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