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시.사 레터 9회 (2021.06.16.)
안녕하세요. 문학동네시인선을 사랑하는 독자 이예림입니다. 시집의 첫 장을 쫙- 펼치는 순간, ‘시인의 말’을 읽는 순간, 시를 읽으며 "우와-" 하고 감탄하여 심장이 콩닥콩닥 요동치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많은 분들과 제가 느꼈던 그 감정, 순간들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선택한 권민경 시인의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는 아픕니다. 몸도 마음도 아픈 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저는 아파도 아프다고 잘 이야기하지 못하거든요.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혼자 아프곤 하는데요. 이 시집에서는 아프면 그냥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읽는 내내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예림 독자가 사랑하는 첫번째 시 안락사(권민경,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커튼 뒤에서 잃어버린 어제를 찾았죠.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머리맡엔 단단한 구름과 말캉한 악몽이 쌓이고, 기억들을 팡팡 털어도 베개는 풍성해지지 않아요. 부풀어오르지 않아요. 걸어온 길들은 푹 꺼져서 다신 되돌아오지 않아요.
침대는 흰 배를 내놓고 앉아 있어요. 커튼을 치면 종기처럼 별이 돋아나고 터진 잠 속에서 깃털들이 솟구쳐요. 재채기가 나와요. 콧등은 주름지고 우리의 날들도 구겨져요. 지폐를 구기면 낯선 얼굴이 우릴 바라보는 것처럼 구겨진 삶이 우릴 바라보고 웃고 울어요. 그 새침하고 가여운 얼굴 속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눈물도 흘려요.
바뀐 요일을 입으면 기운이 새로 솟아요. 오늘 자고 일어나면 또 얼마나 열매가 많은 날이 펼쳐질까요. 얼마나 많은 잘린 머릴 목격할까요. 별들이 태어나고 숲이 타오를까요. 이 한잠만 자고 일어나면……
부러진 나무들이 일어나요. 번개가 기지개 켜요. 온 들판에 불이 일고, 우리의 수많은 잠들이, 꿈들이 하나하나 낯익은 얼굴이 되어 찾아와요. 못다 한 인사를 커튼 뒤에 감추고
나는 잠들기 전에 내가 가진 모든 하루를 생각해요. 독자의 감상💡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제가 쓰는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내고 있을까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안정감, 편안함을 느끼는 시간.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잠자리에 눕는 순간입니다. 저는 꿈을 꾸지 않아요, 아니 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베개에 머리가 닿는 순간 바로 잠에 들어버리거든요. 눕자마자 순식간에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잠에서 깨어나면 꿈을 기억하지 못해요. 가끔은 이렇게 빨리 잠에 들어버리는 것도 일종의 도피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잠이라는 건 머릿속을 잠시 쉬어가게 하는 쉼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며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잠에 들 때 만큼은 상점에 ‘오늘 영업 종료’라는 팻말을 걸어놓는 것처럼 ‘오늘 생각 종료’를 저 스스로에게 걸어놓습니다. 자는 동안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제가 쓰는 베개는 저의 어떤 꿈들을 견뎌내고 있을지. 정작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꿈들을 제 베개가 견뎌내주고 있습니다. 치열한 하루를 끝내고 오늘도 죽은듯이 잠들었다가 새로운 하루를 위해 깨어납니다. 저는 오늘도 여전히 꿈을 꿉니다. 💘 막간 우.시.사 소식: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서윤후 시인 친필 사인본 판매 카카오 메이커스에서 서윤후 시인의 네번째 시집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를 친필 사인본으로 만나보세요. (선착순) 💜 이예림 독자가 사랑하는 두번째 시 오늘의 운세(권민경,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뚝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을 숲속엔
정수리에서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
은 손바닥이 흔들린다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하나하나 떼어내며 잎사귀 점 치면
잎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
너의 처음이 몇번째인지 까먹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 알들에서
갓난 내가 기어나오고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
물방울 되어 튀어오르는 몸에 대한 예지
한날한시에 태어난 다른 운명의 손가락
눈물 흘리는 솜털들
나이테에서 태어난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를 물고 올 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 독자의 감상💡 나의 오늘의 운세는
"내가 뱉은 말에 좀더 당당하게 행동해보세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을 겁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의 운세를 찾아봅니다.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매일 궁금해요. 그 짧은 한 줄에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입니다. 마침 오늘의 운세는 내가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좋네요. 저는 과거나 미래보다 당장 오늘 마주할 현재를 사랑하고 즐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한 치 앞도 모를 오늘 하루를 오늘의 운세 한 줄로 점쳐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 라는 친구의 질문에 "그냥 똑같지 뭐-"라는 대답을 하고 싶지 않지만 매번 대답할 때마다 저는 "그냥 잘 지내지 뭐-"라고 합니다. 사실 저의 매일매일은 같지 않습니다. 다른 날들, 다른 이야기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오늘의 운세처럼요. 좋은 일이 생기면 "아- 역시 오늘의 운세가 좋더라니-" 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으- 오늘만 버티자, 견뎌내자. 내일 운세는 좋으려나보다-"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시 구절 중, "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이 제 마음에 쏙 들어와 오래 앉아 있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운세를 만나게 될까요. 오늘 나는,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 다음주 시믈리에를 소개합니다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북클럽문학동네 뭉클 함유지님 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분은 바로 북클럽문학동네를 운영하고 있는 뭉클 함유지님입니다. 그럼 모두,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오늘의 레터는 어떠셨나요? 오늘의 레터는 어땠는지, 어떻게 보완되면 좋겠는지, 여러분의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세요! 👉 피드백 보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