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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메일 #146 | 2023년 7월 10일 - WEEK 28
우리는 지금 잘 기록하고 있나요?
진대연
🤖 GPT 3줄 요약
  • 에버노트와 같은 노트 앱의 문제점이 아니라 기록 방법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 기록할 때 목적이 분명하게 하고, 충분히 소화해 나만의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 노트 작성의 가치를 높이려면 목적을 명확히 하고, 우리 뇌의 목적 지향성에 맞게 기록하자.
에버노트(Evernote)의 정리 해고 소식이 또다시 들려옵니다. 오랫동안 레거시 기술들을 새롭게 교체하면서 오랫동안의 어려운 과제들을 끝내 온 에버노트가 최근엔 실시간 동기화 기술과 AI 기술까지 적용하면서 부활의 시간이 다가오는가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요. 실리콘밸리의 남은 직원들을 전원 해고한다는 소식이 들려 기존 에버노트 사용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죠. 이제 더 이상 에버노트를 사용하면 안 되는가 하는 걱정에 아마 이사 갈 준비를 하거나 이미 이사 간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회사인 벤딩 스푼스(Bending Spoons)에 인수된 만큼 본사가 이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미 전 직원이 리모트로 일하고 있으며 핵심 멤버들은 이탈리아로 옮기는 조건이 제시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이탈리아로 옮기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죠.)

오히려 뛰어난 마케팅 감각으로 다수의 제품을 성공 궤도에 올렸던 벤딩 스푼스가 에버노트를 어떻게 홍보해 갈지도 기대됩니다. 다만, 이렇게 부정적인 기사가 끊임없이 나오지만 오랜 기간 제품 개선에 노력해 온 부분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 내부 마케팅 및 홍보팀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에버노트의 몰락은 어그로 끌기 정말 좋은 기사 중 하나이지만 더 좋은 제품을 아직 찾은 게 아니라면 서둘러 갈아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노트 앱 춘추전국시대인 만큼 더 좋은 제품으로 옮겨가는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겠죠. 앞으로도 다양한 노트 앱을 당근 메일을 통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왜 기록을 할까요?


사실 에버노트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우리는 왜 기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기록은 정말 유용한데요.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기록을 정말 좋아합니다. 에버노트에 한국지사가 빠르게 생기고, 또 노선(Notion)이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지원한 언어가 한국어였을 만큼 우리의 기록 사랑은 전 세계 그 어느 민족보다 뛰어납니다.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그 DNA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론 '기록의 배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기록을 잘 활용하기 위해 열심히 적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기록했다는 사실조차 잃어버릴 때도 많죠. 사실 우리는 에버노트에 실망했다기보다는 기록하고 스크랩한 노트를 재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 실망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기록하고, 녹음하고, 스크랩했지만 내 노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찾기 어렵고 세컨브레인은 커녕 쓰레기 더미로만 변해버렸으니까요.

제텔카스텐이라는 새로운 희망! 착각?


그런데도 우리는 기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노트 기록 방법이 또 다른 희망이 되었죠. 바로 제텔카스텐(Zettelkasten)입니다. 제텔카스텐은 주제별로 정리된 카드나 노트를 통해 지식을 저장하고 조직하는 시스템을 말하는데요. 머릿속 기록을 개별 카드 형태로 저장하고, 각각의 카드를 기존의 카드들과 연결하여 생각을 확장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내용을 적고, 그 내용을 기존의 다른 카드들과 연결하는 것이죠. 이러한 방법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 연결된 엄청난 다발의 생각 집합이 생기게 됩니다. 이제 이 다발들을 하나의 줄기로 잘 정리하기만 하면 책이나 논문 하나는 뚝딱 나오는 것이죠. 이 기법을 창시한 니콜라스 루만 교수는 이 방법을 통해 무려 70편의 책과 400여 편의 논문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텔카스텐 방식으로 기록을 시도해 온 분들의 이야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말하는데요. 그 이유는 정보를 수집하고 연결하는 과정이 너무 고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생각나는 정보들을 적고, 이를 기존의 노트들과 연결하고, 가공하고, 정리하는 일들이 바쁜 현대인에게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AI를 이용해 자동으로 관련 노트를 연결해 주는 mem.ai 같은 서비스들을 찾아 사용해 보곤 하지만 여전히 답을 구하는 데는 요원해 보입니다. 결국 노트 기록의 새로운 구세주가 될 것 같은 제텔카스텐 역시 생각만큼은 선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는 목적 지향적


우리의 뇌는 목적 지향적입니다. 다양한 생각들을 무작위로 이어가기보다는 하나의 목적이 있을 때 연결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오히려 목적 없이 연결하려고 하면 생각을 어디에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따라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노트에 적는다고 해서 그 생각이 사용되는 목적이 없다면 길을 잃고 헤매고 말죠. 나중에 다시 활용해야지 하고 열심히 기록을 해둔다고 하더라도 목적을 잃은 노트는 결국 또 다른 쓰레기 더미에 묻히게 됩니다. 따라서 정보를 수집하고, 노트를 작성할 때 우리는 늘 그 목적에 대해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반대로 목적이 너무 많다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너무 많은 목적은 마치 목적이 없는 것처럼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마다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사를 계속 추가해 간다면 결국 어느 하나 깊은 지식을 쌓기가 힘들어지게 되죠. 왜냐하면 우리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소화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은 그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목적을 최소화하고 해당 목적 내에서만 생각과 정보를 정리해 간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내 정보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사실 에버노트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에버노트, 옵시디언(Obsidian), 롬 리서치(Roam Research), 업노트(Up Note) 등등 노트 앱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어쩌면 그 모든 잘못은 우리가 스스로 정보를 소화할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노트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완전히 소화하고 다시 내가 이해한 나의 문장으로 작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하면 나중에 다시 보는 노트가 아닌 지금 내 머릿속에 새겨지는 노트가 되죠. 나중에 다시 볼 노트란 지금 그 노트가 내 머릿속에 새겨졌을 때만 가능하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기록할 때 아래의 3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 이 기록을 위한 목적이 분명한가?
  • 이 기록의 내용을 내가 충분히 소화해서 나만의 문장으로 요약했는가?
  • 이 기록이 이 시간을 낼 만큼 가치가 있는가?

사실 이는 우리가 한해의 목표를 세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목표가 지금 수집하고 기록하는 정보가 올해 목표를 기준으로 그 '목적'과 '가치'에 부합하는가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한 해의 목표가 오늘 기록의 의미와 연결되는 것이죠. 이렇게 목적 중심으로 기록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기록 하나하나의 가치가 살아나게 됩니다.

매일 매일 당근메일을 쓰는 저에겐 이번주 당근메일은 어떤 주제로 할까? 라는 목적을 늘 담아둡니다. 덕분에 정보의 수집에 방향성을 가지게 되고 관련 내용으로 보다 쉽게 소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목적에 맞게 나만의 생각으로 정리된 기록은 단지 기록을 너머 머릿속에 각인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또한 글을 쓰는 순간 머릿속에 한번 더 정리되기 때문에 관련된 내용이 더 오래 기억되곤 합니다.

나중을 위한 기록이 아닌 지금 각인 하는 기록


나중을 위한 기록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정말 많은 정보를 에버노트를 비롯한 정말 많은 도구에 스크랩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록하는 그 순간 머릿속에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기록'을 할 것이 아니라 그 전에 그 정보를 충분히 '소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소화'를 위한 '생각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늘 시간이 부족한 우리에게 가끔은 누군가 대신 정보를 정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AI나 신기술을 이용하여 자동으로 정보들이 정리되길 바라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동으로 정리된 정보 역시 결국엔 내가 소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머릿속에 각인되지 않습니다. 각인되지 않은 정보는 결국 재활용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을 줄이고 '목적'을 명확히 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하나둘 '목적'이 있는 정보와 지식이 채워가다 보면 그 정보의 융합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점입니다. 조금씩 하나의 글 안에 모르는 내용보다 아는 내용이 더 많아지게 되고 전체적인 내용을 다 읽지 않아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기존의 축적된 정보들이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빠르게 낚아채는 현상이 발생하는데요. 이러한 순간이 올 때까지는 정보를 급하게 먹어 치우지 말고 조금씩 이해될 때까지 생각하는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간을 빠르게 단축하는 작업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어쩌면 가장 느려 보이는 글쓰기의 과정이 가장 빠르게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되는 것이죠.

이미 우리에게는 훌륭한 연장이 정말 많습니다. 에버노트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면 어떤 도구로 갈아타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다만 연장을 바꾸더라도 앞서 이야기 나눈 기록의 목적과 소화 그리고 가치를 돌아보면 도구와 상관없이 더 좋은 기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 보고 계신 이 당근 메일의 글을 읽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글을 나만의 생각으로 소화하여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면 어떤 문장이 될까요? 그리고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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