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깜짝 놀랄 식감과 맛의 화도(火稻, 만생종 메벼)  
제공: 우보농장 이예호  
화도는 붉은 까락이 특징인 쌀이다. 그래서 불 화(火)자 화도다. 함경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재배한 기록이 있는 전국구 인기쌀이다. 만생종인데도 불구하고 강원도 산지나 평안도에서도 재배가 되었다.
  
그런데 이 전국구 인기에는 불가사의한 면이 있다. 화도는 잘 넘어지고 수확량이 적은 편이다. 낱알 수가 많다지만 도복(倒伏)을 생각하면 전체적으로 생산량은 많지 않은 편. 밥맛은 특별난 데가 있긴 하지만 100년 전 농업의 기준은 맛보다는 수확량이었다. 농사짓기가 아주 어려운데도 전국적으로 재배했다는 것은 확실히 특이하다.

혹은 현대의 토종벼 농부들이 깨닫지 못하는 어떤 재배법이라도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쌀알은 동근한 느낌을 주고 크지도 작지도 않다. 심복백이 조금 큰가 싶은 정도 외에는 흔히 보는 개량종 쌀과 별 차이가 없다. 참고로 이 심백과 복백의 유무가 현대의 쌀 평가에서 꼽는 조건 중 하나. 심복백이 없어야 좋은 쌀이라 친단다. 어쩔...
 
화도는 밥짓기도 까다롭다. 일단 잘 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구수한 향이 있고 단맛도 은은하다. 거기에다 식감이 이세상 쌀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찰기라는 말로는 부족한 쌀알의 반발력이 있다. 쫀득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그 식감.

한국인의 밥상에서 밥은 국이나 여러가지 진반찬과 어우러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진밥, 부드러운 밥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우리가 '마른반찬'이라고 부르는 것도 자세히 보면 다 습기가 제법이다. 그러니 밥은 건조하고 꼿꼿한 것이 잘 어울리는 것이 당연(개취). 화도는 그런면에서 한국인의 밥상에서 이상적인 쌀이 아닐까 한다.
벼를 기르는 것뿐 아니라 밥짓기도 어지간히 까다롭다. 사진엔 돌솥으로 밥을 지었는데 이것은 여러가지 시도 중 하나. 아직까지 돌솥으로는 만족스런 밥을 짓는 법을 못 찾았다.
 
현재 유일한 해법은 압력솥을 이용하고 물은 최소한으로 주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물을 많이 주고 밥을 지으면 진밥보다는 오히려 푸석한 쪽의 식감이 나기 십상이다. 그리고 압력솥에 지을 때도 처음 끓어오를때까지의 시간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 미적미적 불 높이는 것을 망설이면 또 역시 어딘가 좀 부족한 식감이 나온다.

밥맛4대천왕 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는데 쌀로서도 참 만만치 않네. 하지만 제대로 나올 경우엔 한국인의(어느 나라 사람이던) 경험치를 벗어나는 밥이 된다. 특히나 그 식감은 참 익숙한 범위를 벗어나는데, 고두밥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매력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원하는 만큼의 퍼포먼스는 돌솥으론 못 냈지만 그래도 맛있는 밥이라 김치찌개 놓고 두 그릇 뚝딱이다.

만족은 아니라도 맛있는 밥을 지은 오늘의 밥짓기는 78점.

화도는 내년부터는 양을 좀 늘려보자고 주나미농장과 합의를 했다. 농사짓기도 어렵긴 하지만 몇 년간 재배하면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다고 하고, 밥도 잘만 지으면 신세계가 펼쳐지는 쌀이다. 

정말로 맛있는 그 밥이 되는 범위는 현재로선 아주 좁다. 그리고 가정에선 쓸 수 없는 기구들을 사용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전문점에 가서 먹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문요리사들도 이 쌀로 맛있는 밥을 지으려면 밥짓기에 신경을 꽤나 쓰고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식의 밥 수준도 올라갈 것이다. 어디 남의나라 밥이 맛있다고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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