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할 만한 게 별로 없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자랑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뭐냐고요? 제가 불광천에서 제일 빨리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짜잔- 깜짝 놀라셨죠? :)
지난겨울 추위가 한창 매서울 때, 뭐라도 운동을 해야겠기에 불광천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유행하는 수많은 운동을 제쳐두고 (고작) 걷기를 선택한 이유는,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걷기밖에 없어 보였기 때문이에요. 헬스, 필라테스, 요가, 암벽등반 등의 다른 좋은 선택지도 있지만, 운동을 위한 준비 과정이 부담스러웠어요. 대체 무슨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운동에 적당한 복장 갖추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가야 하는 일 자체가 모종의 난관이었어요. 물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숨 쉬듯 편안하게 운동이 생활의 일부인 삶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그 단계까지 못 갈 게 자명했습니다. 뭘 하더라도 분명히 귀찮아서 그만두게 될 것이라는, 그러니까 과거의 수많은 시도와 좌절로부터 학습되고 각인된 내적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걷기는, 여차하면 사무실에서 일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 곧바로 운동 모드로 전환하는 게 가능할 정도로 뭘 준비하고 자시고 할 게 없습니다. 저한테 딱 맞는 운동인 셈이죠.(달리기도 비슷하지만 그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어요..)
걷기의 목적은 건강이었습니다. 이대로는 명줄이 다하기 전에 먼저 몸이 바스러지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책을 세워야 했어요. 다행히 타고난 건강이 있어 크게 아프거나 탈 나는 데 없이 살아왔지만 몇 년 전부터 몸 곳곳에 A/S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성능의 탄탄한 몸을 바랄 일은 아니었고, 그저 인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몸 상태는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산책하듯 걷는 게 아니라 운동이 될 만큼의 강도로 걷고 있습니다. 종아리에 긴장감이 생기도록 발을 앞으로 쭉 뻗은 다음 엉덩이에 힘이 꾹 들어가도록 힘차게 뒤로 내딛습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가슴을 펴고 팔을 앞뒤로 힘차게 젓습니다. 하나둘, 하나둘. 이렇게 걸으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걷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땅을 제대로 딛는 감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숨이 차오를락 말락 한 상태로 계속 걷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뛰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정도의 속도에 다다르게 됩니다. 굳이 숫자로 환산하자면 7.6km/h 근방의 속도.
그 속도로 걸으면, 걸어서 저를 추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달리기로 추월하는 사람은 많이들 계시죠.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7.6km/h의 속도보단 빠를 테니까요. 하지만 뜀박질은 엄연히 종목이 다르니 비교할 수 없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35분의 코스로 해서 넉 달을 걸었는데 아직은 누구에게도 (걸어서) 추월당한 적이 없으니, 감히 불광천에서 가장 빨리 걷는 사람이라고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왜 이런 걸 자랑하고 앉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도 연봉이나 주식 같은 거.. 그런 거 막 자랑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언젠가부터 루틴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반복이죠. 그런데 보통은 루틴의 확립을 통해 뭔가를 더 잘, 더 효율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성취할 수 있음을 강조하곤 해요. 공부를 잘하기 위한 루틴,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루틴,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루틴 등등 말이에요. 이때 중요한 건 루틴이 아니라 성취하려는 다른 것들입니다. 루틴과 반복은 삶의 성공 또는 만족을 위한 전략적 도구가 되는 것이죠. 이런 접근 자체가 이상할 건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린 결국 성장하고 인정받고 출세(!)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뭐 하러 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뭐 하러 굳이 성장을.. 뭐 하러 굳이 인정받고.. 뭐 하러 굳이 출세까지.. 이때 루틴과 반복의 가치 역시 전복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반복하는 일 그 자체로 완결된 기쁨이 되는 것이죠. 루틴이 곧 인생이 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저한텐 걷는 일이 그렇습니다. 걷는 걸로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걷는 일 자체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파워 워킹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삶이 충만해지더라고요.
루틴과 반복, 하면 또 우리의 고양이들을 능가할 존재가 없습니다. 아주 루틴의 고갱이 같은 녀석들이죠. 집에서 여섯 고양이의 루틴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고양이들의 루틴이 대단한 건, 그 반복을 절대 지겨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늘 같은 시간에 밥 달라고 보채는 일, 아침마다 창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다가 길쭉하게 스트레칭을 하는 일, 밤만 되면 우당탕 서로 쫓고 쫓는 일, 화장실을 치우자마자 우아하게 모래 위에 앉아 볼일을 보는 일,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허리춤에 꼭 달라붙어 제자리를 요구하는 일, 밖에 나가려고만 하면 갑자기 놀아달라고 보채는 일..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일들을 어쩜 그렇게 매번, 마치 처음인 양 순박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반복하는지 감탄스러울 정도예요. 반복에도 마음이 있다면, 고양이들의 반복은 분명 다정한 마음일 거예요.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고 따스해지니까요. 더불어 제 일상도 그렇게 다정한 반복으로 채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서로의 루틴 속에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와 사람의 다정한 반복, 그 정도면 더 바랄 것도 없는 인생 아닐까요?